하고 싶지 않은 쇼핑을 계속해야만 한다
혼주의 손님으로 결혼식에 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함께 일했던 상사나 선배 중 결혼할 정도로 장성한 자녀를 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주변의 경험을 보고 들은 바, 내 또래들이 혼주의 손님으로 결혼식에 참석해야만 한다면 매끄러운 사회생활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소중한 주말을 희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코찔찔이 새끼기자와 취재원으로 처음 만난 뒤 출입처를 몇 번이고 옮기면서도 인연이 이어진 분의 자녀가 결혼한다는 소식은 마치 내 일처럼 기쁘기만 했다. 나를 포함해 옛 출입기자 중 청첩장을 받은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간 쌓아 온 유대의 두께를 증명하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을 때, 새로운 출발을 앞둔 부부를 위해 직접 써 내려갔을 담백한 축사를 들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부모로서의 모습을 보는 것은 또 처음이라 새로웠다. 공직자 재산공개 철에 자제분의 예금 내역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놈의 자식이 돈은 다 벌어서 어디다 쓰는 건지, 저축이라고는 하나도 안 하고!"라고 분통을 터뜨리시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도 났다. 우리는 웨딩로드 옆에 딱 붙어 앉아 열심히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 올리며 "그래도 비슷한 연배의 아저씨들하고 비교하면 자세도 곧고 키도 크고, 되게 훤칠하시지 않아요?" "아무래도 배가 안 나온 게 크지 않을까?" "역시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나 봐요" 따위의 농담을 나눴다.
결혼식은 군더더기 없이 짧게 끝났다. 부부가 모두 훤칠하니 멋있었고, 결혼식장은 예뻤고, 음식도 맛있었다. 그 와중에 이미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앞둔 사람들로서는 부부가 이 30분을 위해 머리를 얼마나 쥐어뜯었을지 굳이 듣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 수 있어서 마음이 짠했다. 당장 얼마 전에 겨우 본식 스냅(예식 당일 촬영) 업체를 결정해 예약하면서 업체와 고객 간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불편함으로 골머리를 썩였던 일이 떠올랐다. 여러 업체의 포트폴리오와 상품 구성, 가격을 빠르게 비교해 보고 싶어도 문의를 하지 않으면 구체적인 내용을 도무지 알 수가 없고, 답변조차도 금방 오지 않아 무의미한 시간을 흘려보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짜증스러웠다. 좀처럼 화를 내는 일이 없는 예비 배우자가 스트레스를 호소할 정도였다.
그래서 뭔가를 예약해야만 하는 시기가 되면 일주일에 두 번은 꼭 결혼식을 망치는 꿈을 꾸었다. 둘 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메이크업 샵 예약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거나, 드레스가 도착하지 않는다거나, 사진·영상 촬영 업체를 예약하지 않았다는 것을 본식 직전에야 깨닫는다거나, 사회자가 예식 시간에 맞춰 오지 않는데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거나, 결혼식장에 입장하려는데 미리 전달해 둔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거나(식중 음악을 부부가 직접 골라야 한다는 것을 결혼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다), 하여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시나리오가 꿈에 나왔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기분이 상한 채 눈을 뜨고 나서는 고작 30분이다, 중간에 삐끗해도 큰 일 안 생긴다, 결혼식이 아니라 결혼 생활이 중요하다, 어차피 밥 먹고 나가면 다들 까먹는다, 이런 말들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결혼 준비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몇 안 되는 친구 한 명에게 푸념했더니 크게 웃으며 자기가 꾸었던 악몽을 들려주었다. 머리도 안 감았는데 갑자기 1시간 뒤부터 결혼식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통보를 듣고 허둥거렸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다른 내용으로 꽤 여러 번 꿨고, 결혼을 앞둔 신부들은 마치 수능을 다시 치는 꿈을 꾸듯 일상적으로 이런 경험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둘이서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인생을 그려 나가겠다고 친지들에게 직접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다. 친구에게 한 말을 가져오자면 친한 사람들, 아는 사람들, 조금 덜 친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는 "제가 이 사람과 이인삼각을 하기로 했어요!"라고 쩌렁쩌렁 소리치는 감각이다. 공장식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결혼식을 즐거운 축제 내지 파티처럼 꾸미고 부부의 삶과 가치관, 친지들에 대한 애정까지 담아낸 사례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통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형태의 결혼식'이라는 외피를 굳이 걷어낼 만큼 자아가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들을 직접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운이 빨렸다.
하지만 아무리 '평범한 결혼식', '남들 다 하는 결혼식'을 한다고 한들, 결혼 준비란 결코 내키지 않는 쇼핑의 연속이다. 플래너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선택은 당사자가 해야만 한다. 꼭 필요한 옷을 사기 위해 무신사 앱에서 스크롤을 죽죽 내리는 것만으로도 피로해져서 옷을 분기에 한 번 살까 말까 한 사람이 할 만한 일은 아니다. 어쨌든 꼭 필요한 예약을 어찌어찌 다 마무리하기는 했어도, 이제는 또 청첩장과 혼주 한복을 골라야 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빠뜨린 것이 있을까 봐 겁이 날 때도 있는데,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다시금 되뇐다. 고작 30분이다. 중간에 삐끗해도 큰 일 안 생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결혼식이 아니라 결혼 생활이 백 배, 천 배는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