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현 Oct 11. 2024

권위에 판단을 위탁하는 태도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습관을 기릅시다

    정말 좋아하는 시리즈의 속편이 나오지 않은 이상에야 영화 개봉 전, 혹은 직후에 예매를 하는 일은 드문데, 〈조커: 폴리 아 되〉를 그렇게 예매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어 전작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상영 시간 내내 은막을 가득 채우는 자기 연민에 질식할 것 같아 오만상을 찌푸리고 나왔던 터였다. 그런데도 한없이 음의 방향으로 향하는 관람평들을 보니 도리어 호기심이 생겼다. 직접 보니 관람에서 오는 재미를 얻을 수는 없었고, 여전히 이 시리즈를 좋아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해체해서 뜯어보는 맛이 있는 영화였다.


    이동진 평론가가 이 영화에 별점 4개를 주며 호평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모양이다. '기생충 한줄평 논란'도 그렇고, 아무래도 평론가 중에서는 인지도가 있어서인지, 이 아저씨는 주기적으로 이런 고초를 겪는다. "남들이 다 별로라고 하는 영화를 혼자 고평가하면 좋냐?"는 식의 욕설 어린 비난들이 주를 이루었던가 본데, 당사자가 아닌 내가 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동진 평론가의 영화 취향이나 평론이 늘 내 구미에 맞지는 않지만,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평론이나 감상을 듬성듬성 접해 온 바에 따르면, 이동진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다. 뼈와 살을 집요하게 발라내어 탐구한 뒤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을 수 있는 영화일수록 더 좋아한다. 납작하지 않고,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던져 주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영화를 감상한 뒤 돌아보는 모든 시간을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영화들의 별점이 대체로 높았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내가 뭘 본 거지……."였고,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알겠으나 여전히 동의할 수 없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별점 2.5개를 주었지만, 이동진 평론가는 좋아할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감상을 궁금해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지루하게 본 영화를 달리 본 사람들의 해석이나 감상을 듣는 것은 관람 후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동진이라는 권위만 필요한 치들이, '이 영화는 해악이다' 혹은 '졸작이다'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 줄 권위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화가 나서 이동진 평론가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몇 년 전의 '명징과 직조' 사태가 재현된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어처구니가 없다. 이동진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평론을 제대로 보고 듣기는 한 것인지. 예나 지금이나 나는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이 참 싫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