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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윤제 Oct 28. 2023

《생각보다 ‘유머’ 있으시네요?》

베토벤 8번째 교향곡에 덧붙임.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이 스승과 선배(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작품과 두드러지는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춤곡을 스케르초로 대체한 선택이다. 베토벤은 의도적으로 춤을 교향곡에서 제외시키는 듯 보이는데, 하물며 우리는 그가 처음으로 작곡한 교향곡의 3악장의 이름을 미뉴에트라 짓고 극단적으로 빠른 템포를 요구하는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이후 2번 교향곡부터 9번 교향곡까지 춤곡은 모두 스케르초(해학과 희롱을 의미한다)로 대체한다.


자신의 교향곡에서 춤적인 요소를 거세시키는 그의 유별난 선택은 선배 작곡가들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작품의 무게를 가중시키려는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게는 중력의 영향을 받으며, 춤의 본질은 중력을 거슬러 오르려는 움직임에 있기 때문이다. 춤을 포기한 음악은 그 무게와 깊이가 밑도 끝도 없이 심원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한다.


춤적인 요소를 벗어던지기 춤적인 요소를 벗어던지기 시작한 음악은 디오니소스적 경향에서 벗어나 오르페우스적 경향을 띄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프랑스혁명 이후 귀족들의 사적인 무도회와 연주회가 빼곡하게 앉아 있는 대중들로 채워진 공공연주회로 대체되는 시대상과 한 배를 탄다.


그러나 교향곡이라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추지 않던 베토벤이 유일하게, 그리고 아주 노골적으로 경박하게 춤을 추는 곳이 바로 8번째 교향곡이다. 이 작품에서 다른 교향곡에서 보이는 진보적인 제스처와 시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만드는 유기적인 전개 양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뉘앙스는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모양새지만 하나 같이 과장되고 왜곡되어 있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기적인 이음새는 하나 같이 반복과 점진적인 움직임으로 대체되어 삐걱거리고, 강약의 대비는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하물며 그의 유일한 미뉴에트 악장은 스텝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정도다.


그중에서도 정점은 우아한 움직임이 메트로놈에 구속되어 있는 2악장이다. 또한 베토벤은 마지막에 도중에 자리를 불쑥 떠나는 듯 곡을 황급히 매듭짓는 모양새를 취하는데, 전개와 완성에 집착했던 그의 진지함이 사라져 있고 고의적으로 작품을 완결시키지 않는 데서 관객들은 의아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령 5번 교향곡 4악장의 엔딩의 경우 베토벤은 차마 작품을 떠날 수 없는 것처럼” 수없이 많은 으뜸화음을 반복하지만, 8번 교향곡 2악장에서의 베토벤은 완성하지도 않은 음악을 돌아보지도 않고 훌쩍 떠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낭설로는 8번 교향곡이 1814년에 초연되었을 당시 평론가와 관중들의 쏟아지는 부정적인 평들에 대해 베토벤은 격노하며 화답했다고 한다. ”'이 곡은 7번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낮게 평가받고 있다” 이 말에는 자신의 ‘유머’와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하는 관객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베토벤의 안타까움이 서려있을 것이다.


페소아는 “완벽한 작품을 완성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중하게도 불완전한 작품을 창조한 예술가”를 위대한 예술가라고 부른다. 또한 니체는 이렇게 쓴다. “모든 예술가가 다 그렇듯이, 비극작가는 자신과 자신의 예술을 자기 아래로 내려다볼 줄 알 때, 자신에 대해 웃을 줄 알 때에야 비로소 위대성의 마지막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유머’란 자기 자신을 자조적으로 보는 태도를 의미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주어진 사회적 규범들로 포위된 상태에서 자신의 객관적인 지위를 즐거운 방식으로 확인하는 환상적인 에세이류의 문학 장르를 ‘유머’라고 불러왔다. 베토벤의 8번째 교향곡은 이러한 ‘유머’로 단단히 무장한 채 자신의 음악을 포함한 과거의 음악들에 조소를 보내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더 이상 올라설 곳 없는 정상에 올라 과거를 내려다보며 양껏 조롱하고 웃는다.


아마도 풍자와 조소로 가득한 8번 교향곡 이후 베토벤이 다음 교향곡을 통해 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 그 위의 장소, 즉 ‘천상 Elysium’이기 때문이다. 9번 교향곡에서 그는 실러의 가사를 빌려 이렇게 노래한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천상낙원의 딸들이여, 우리는 정열에 취하고 빛이 가득한 신의 성전으로 들어간다ǃ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Tochter aus Elysium, Wir betreten feuertrunken, Himmlische, dein Heiligtum!”


孫潤祭, 2023.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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