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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윤제 Dec 13. 2023

장소의 탄생

우리는 공간과 장소를 형식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간이 세계를 대신하는 말로써 ‘물리적이고 객관적인 형식’이라면, 장소는 ‘개인의 기억과 의미, 더 나아가 집단의 역사 등이 결합된 주관적인 형식’(이장욱)이다.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장소는 한 인간이 머문 자리에 씨앗처럼 기억과 의미를 뿌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수확할 수 있는 작물 같은 것이라고. 그렇다면 공간은 이 씨앗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그러므로 집이든, 집 밖이든, 가족 · 친구 · 연인 등을 공간에서 만나 일상을 나누고, 데이트하고, 여행하는 행위들은 사실 객관적인 공간들을 주관적인 장소들로 탈바꿈하는 능동적인 활동인 셈이다.


마치 농부들이 땅에서 자신의 노고를 수확하듯, 우리는 공간들을 지나치며 장소들을 경작한다.


이것이 방문했던 장소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찾아갔을 때 문득, 예전의 기억이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다.


孫潤祭,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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