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것을 붙들지 말자.
사람은 누구나 인생이란 무대의 주인공이다.
내가 주인공이기에 그 누구의 이야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는
특별하고, 서사가 완벽하며, 운명적이고 그 무엇보다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리고 이 착각의 망령들은 모두 다 과거에 머무른다.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뭘까?
과거를 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과거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정말 유럽여행 갔을 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어."
"그 남자랑은 결혼할 걸 그랬어."
"내가 진짜 한때는 월에 몇 천씩도 턱턱 벌던 사람이야!"
"나 10년 전에는 진짜 예쁘고 날씬했어."
"옛날에는 며칠을 밤새고 술을 마셔도 끄떡없었는데"
과거의 영광도, 추억도,
그 모든 기억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동력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은
비가 오는 날에도 우물을 판다.
이렇게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회상하는 것은
결국 현재의 불행을 뜻한다.
이 모든 것들의 교집합은 '후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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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이 감들은 썩었어요?"
할아버지와 산길을 거닐다 쭈그려 앉아
땅에 마구잡이로 터진 감들을 내려다봤다.
"그래, 싹 다 썩었네. 아이고, 까치도 못 먹구로"
"감은 왜 썩어요?"
"음식은 원래 안 먹고 오래 놔두면 다 썩는기라"
"아닌데? 물은 안 썩는데"
"니 맨날 가는 계곡있제? 고건 안 썩는데이.
집에 주전자있제? 고거 안에 물은 놔두믄 썩어삔다"
"왜요?"
"물은 안 흐르고 가마히 있으믄 썩어삔다 원래"
(고인물 밈은 우리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가르쳐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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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시인도 그랬더랬다.
"시를 쓴다는 것이/더구나 나를 뒤돌아 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어느 날 인터넷에서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주제의 글을 발견했다. 갈매기들은 항상 무리 지어 다니는데,
신기하게도 백사장에 쪼르르 앉아있는 갈매기들은 다 같이 한 곳을 응시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추측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갈매기는 항상 바람을 맞서서 서 있는다.'였다.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면 바람을 피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거다.
바람을 등지면 날개 사이로 바람이 불어 바람의 저항은 더욱더 강해진다.
바람을 맞서서 앉아있는 것은 날개가 있는 갈매기들의 본능이다.
바람을 맞서야 원하는 곳으로 이내 날아갈 수 있다.
축구에서도 페널티를 받으면 플레이가 소심해지듯,
과거에 붙들려 있는 사람은 미래를 지향할 수 없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지나온 길에는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들은 비록 장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을 넘어선 그 순간부터는
더이상 장애물이라 부르지 않는다.
아까 언급한 류시화 시인의 시는 이 구절로 끝이 난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 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