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아 Jul 24. 2023

모든 것은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을 붙들지 말자.


사람은 누구나 인생이란 무대의 주인공이다.

내가 주인공이기에 그 누구의 이야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는

특별하고, 서사가 완벽하며, 운명적이고 그 무엇보다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리고 이 착각의 망령들은 모두 다 과거에 머무른다.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뭘까?

과거를 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과거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정말 유럽여행 갔을 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어."


"그 남자랑은 결혼할 걸 그랬어."


"내가 진짜 한때는 월에 몇 천씩도 턱턱 벌던 사람이야!"


"나 10년 전에는 진짜 예쁘고 날씬했어."


"옛날에는 며칠을 밤새고  술을 마셔도 끄떡없었는데"


과거의 영광도, 추억도,

모든 기억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동력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은

비가 오는 날에도 우물을 판다.


이렇게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회상하는 것은

결국 현재의 불행을 뜻한다.


이 모든 것들의 교집합은 '후회'다.




.

.

.




"할아버지, 이 감들은 썩었어요?"


할아버지와 산길을 거닐다 쭈그려 앉아

땅에 마구잡이로 터진 감들을 내려다봤다.


"그래, 싹 다 썩었네. 아이고, 까치도 못 먹구로"

"감은 왜 썩어요?"

"음식은 원래 안 먹고 오래 놔두면 다 썩는기라"

"아닌데? 물은 안 썩는데"


"니 맨날 가는 계곡있제? 고건 안 썩는데이.

 집에 주전자있제? 고거 안에 물은 놔두믄 썩어삔다"


"왜요?"


"물은 안 흐르고 가마히 있으믄 썩어삔다 원래"


(고인물 밈은 우리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가르쳐 줬다.)





.

.

.





류시화 시인도 그랬더랬다.


"시를 쓴다는 것이/더구나 나를 뒤돌아 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어느 날 인터넷에서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주제의 글을 발견했다. 갈매기들은 항상 무리 지어 다니는데,

신기하게도 백사장에 쪼르르 앉아있는 갈매기들은 다 같이 한 곳을 응시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추측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갈매기는 항상 바람을 맞서서 서 있는다.'였다.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면 바람을 피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거다.

바람을 등지면 날개 사이로 바람이 불어 바람의 저항은 더욱더 강해진다.

바람을 맞서서 앉아있는 것은 날개가 있는 갈매기들의 본능이다.


바람을 맞서야 원하는 곳으로 이내 날아갈 수 있다.


축구에서도 페널티를 받으면 플레이가 소심해지듯,

과거에 붙들려 있는 사람은 미래를 지향할 수 없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지나온 길에는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들은 비록 장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을 넘어선 그 순간부터는

더이상 장애물이라 부르지 않는다.





아까 언급한 류시화 시인의 시는 이 구절로 끝이 난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 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작가의 이전글 여름에 찾아온 천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