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 뭐 있나

그루잠

by 지니샘

그루잠: 깨었다가 다시 든 잠


감았던 것만 같은 눈을 떠 떠오른 태양빛을 마주한다. 밤새 충전되던 휴대전화를 내 손에 안착시키고 거릴 것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다 시간에 가려 일어선다. 작정이라도 한 듯 이불을 다시 펼쳤다 개어내고 귀여운 곰돌이 인형에 부비를 해준다. 대뜸 댕 하는 소리를 틀어 눈을 감았다 뜨면서 몸을 푼다. 자기 공간인듯 내 머리를 헤집는 이런 저런 할 일들, 생각들을 하나 둘씩 건져올려 내 몸 여기 저기에 적용시킨다. 푸르스름한 거실빛을 지나 탁 하는 소리와 허연 빛 아래에 나를 바라본다. 안녕. 겨울 온도가 만연해도 폭닥하게 마른 빨래를 개어 넣는다. 앉아서 글을 쓸까 하다 가방에 넣기만 하고 나를 갈아입힌다. 일어서는 세상의 시작이다. 옷걸이에 가버린 저 옷을 입기 전까지 눕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서둘러 몸을 움직여 손잡이를 돌린다. 돌려진 손잡이가 건네는 인사를 뒤로 하고 다른 이의 털들로 겨우 겨우 막아놓은 추위 안에 들어간다. 오늘 떠난 장소가 나쁘지 않은 듯 부드러운 아빠 목소리에 안심하며 생각 속에 빠진다. 운동가는 길이 아니라 생각하러 가는 중인 길이다.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던 새의 죽음을 필사적으로 막아본다. 죽음을 막지 못해 죽음을 발견하는 나를 막는다. 쉽게 애도하지도, 슬퍼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어느샌가 도착해 호로록 끝나버린 운동보다 “어머 수건을 안가져 왔네” 말에 “아!” 하고 한 번 더 움직여 가져다 드린 수건이 더 기억에 남는다. 몸과 마음이 모두 상쾌하다 부르짖어 노래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른 아침, 온 세상에! 지금 내 세상이 전부인듯 유튜브까지 틀어놓고 본격적으로 노래방을 만든다. 연기도 빼먹지 않고. 재미난 세상이다. 그저 이것만으로도.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나왔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6개의 발과 함께 나왔다는 것. 걱정과 기대와 웃음 속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음식과 점심을 보낸다. 왜인지 햇살이 더 따뜻해진 것 같아, 기분이 뜨지 않을 수 없다. 누울 수 없는 나른한을 즐기며 진도 나가지 않는 일을 끄적이다 겨우 겨우 임시저장까지 하고 길을 나선다.


어떤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경험이 된다. 작동하는 나의 모든 것이, 나도 눈치 채지 못한 물질성이 어떤 일이라먄 나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하면. 경험으로 만들고 싶은 것보다 이 작동을 읽어내어 의미를 드러내주고 싶다. 살아있음을 확인시키고 싶다.


지금 내 하루 하루의 삶이, 인생이 혹시, 언젠가 깨었다 다시 잠들기 전이라면. 그루잠 이전의 상태라면. 그게 나라면. 내 세상이라면. 인생 뭐 있나. 사는거지! 다시 잠에 들기 전까지 사는거다. 사는거. 살아가는거. 깨어났음을 아는채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꺄악 오늘 수능이었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