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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을 타버린 지금과 10가지

나의 알고리즘

by 지니샘

새벽에 일어나 언제인지도 모른채로 구토를 하고 차가운 기운을 느끼기 싫어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추운 겨울이 오기까지 두려워 했던 이유가 있었다. 광란의 밤이 벌어진 어제를 탓하며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한참을 더 꾸였다. 따끈 따끈 일어나기 싫은 아침, 8시에 해야 하는 일을 겨우 겨우 꾸역 꾸역 해놓고 더 잠들었다. 나를 구원할 커다란 생수를 옆에 두고 어제 그대로 두고 잠들었던 컴퓨터를 켰다. 오랜만에 목요일 아침 수업에 들어가 한참을 그림만 그렸다. 끝날때쯤 이 수업이 끝나면 적막에 싸일 것 같아 일단 입이라도 열자 싶어 우울한 내 상황을 이야기했다. 바깥에는 비가 오느라 하늘이 가만 있지 않아 나가기에는 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념과 한탄을 한참을 늘어놓고 다른 이들의 현명한 이야기들을 경청하며 나도 구체적인 10가지 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누군가의 잊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게 만들며 숙제를 받았다. 약간의 동정 어린 응원과 함께 바로 눈을 뜬 아침보다 상쾌한 기분으로 짬뽕을 원했다. 나가기는 싫은데 시켜먹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익명방에 같이 먹을 사람을 구했다가,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았다가 결국은 배달의 민족에 짬뽕을 시켰다. 기다리는 동안 유튜브 알고리즘에 집에서 흐르는 냉기를 막으며 "아유 추워" 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속을 붙잡고 내리는 비와 잘 어울리는 짬뽕 국물을 후루룩 마시다 생각보다 별로인 국물 맛에 빗소리를 내고 씹히는 군만두에 더 집중했다. 잘 먹고 잘 치우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할 일을 켜두고 한참을 응시했다. "후" 배도 부르고 저절로 숨이 입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뭐 이렇게 하기가 싫으냐, 항상 하는 이야기 같지만 오늘따라 더 진지하다. 별 생각도 없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고 너무 무기력하다. 하고 싶지가 않다. 이렇게 힘이 안나지! 도대체 왜! 그래도 몇 가지를 실행하고 진짜 각 잡고 할 일을 내버려둔 채 잠시 몸을 뉘었다. 양심은 있어서 전기장판을 켜지 못하고 잠옷에 패딩을 입고 그 상태로 차가운 바닥에 뉘인 몸이었다. 30분을 아무생각 없이 눈을 감았다가 뜨고 또 다른 모임을 위해 아까 앉은 곳에 또 위치시켰다. 또 주어진 건 잘하네 혼자 감탄하는 동시에 자꾸 끊기는 인터넷 연결을 탓했다. 해가 졌다. 운동도 글렀고 마지막 하소연을 끝으로 마음을 다잡겠다 다짐했으나! 그때부터 먹지 못한 저녁에 먹방 유튜브를 시청했다. 그것도 지금까지. 한심한 하루가 간다. 한듯 안한듯 쭈글 쭈글한 풍선마냥 에너지 빠진 하루가 간다. 후우 후우 내일은 바람을 넣는 하루가 되길.


-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 쫑알쫑알 내 이야기를 잘 수용해 줄 사람

- 자기 의견이 있는 사람

- 다정하게 말하거나 행동하는 사람

- 남성적인 요소가 있는 사람

- 운동하는 사람

- 철학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 관심이 없다면 호기심이라도 가지는 사람

-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이 너무 많지 않은 사람

- 나를 귀여워해 줄 사람

- 앱이나 온라인 생활이 깔끔한 사람


생각보다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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