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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Sep 07. 2022

아프니까 동물병원 이희남 씨

나는 희남이로소이다 - 01

나는, 

아프니까 동물병원의 이희남이다. 올해로 근속 연수 14년 차인 나는 이곳 원장 집사를 제외하곤 가장 오랜 기간 근무한 직원이다. 14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수의 집사와 간호 집사가 이곳을 거쳐갔지만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지켜온 것이 바로 나다. 

[사진 01-1 : 14년 차의 위엄이 돋보이는 희남]

이곳 아프니까 동물병원은 24시간 병원이 아니기에 밤에는 고양이 직원들끼리만 이곳을 지킨다. 간혹 입원해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기는 하나 그들은 입원장 안에 갇혀서 다리에 얇은 호수로 물을 공급받으며 있을 뿐이다. 이들은 대개 불 꺼진 병원이 낯설어 처음엔 시끄럽게 굴지만 이내 곧 따뜻한 입원장에서 집에 있을 엄마 아빠를 꿈꾸며 잠이 든다. 밖에서 이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러게 평소에 몸 관리 좀 잘하지 왜 아파서 고생을 하는지 원… 




오랜 기간 근무한 우수 직원답게 나는 이곳 아프니까 동물병원의 많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동물 병원의 마스코트로서 여러 손님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아야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을 돌아다니며 집사들의 근무 태도를 살핀다. 드물지만 신입 고양이가 채용되면 병원 냥이로서의 지켜야 할 마음 가짐과 태도 등을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노랭이 녀석은 참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이 녀석 덕분에 한 동안 밤중의 자유를 빼앗겼으나 후임 교육을 똑바로 시키지 못 한 나에게도 일말의 책임은 있노라 처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밥이나 물이 떨어지면 주변의 집사에게 채우라고 명령도 내리고 가끔 오는 어린이 보호자에겐 고양이란 이렇게 순하고 아름다운 동물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 외에도 수많은 업무가 있지만 그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관심 끌기이다. 


이곳 동물 병원엔 그 흔한 TV가 없다. 예전엔 있었으나 무슨 이유론가 원장 집사가 TV를 치워버리는 바람에 손님들은 대기하며 매우 심심해한다. 수의 집사 녀석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진료를 보지만 가끔 손님이 몰릴 때면 대기실에 장사진을 이룬다. 이런 순간에 꼭 참견쟁이 손님은 원집사를 괴롭힌다. (원집사 : 리셉션을 담당하는 간호 집사)  


원집사는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지만 손님이 말을 걸면 꼬박꼬박 대답을 해준다. 나처럼 들어도 못 들은 척 그냥 제 할 일 하면 될 텐데, 참 어리석기 짝이 없다. 어쨌든 이런 수다에 힘들어할 때 나는 옆에서 조용히 타이밍을 본다. 이 때다 싶은 순간이 오면 나는 천천히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손님에게 다가가 나의 페로몬을 묻힌다. 열에 아홉은 나의 이런 매혹적인 돌발 행동에 무장 해제되며 자신이 하던 이야기를 잊고 나에게 말을 걸게 되고, 이때 원집사는 처치실에 잠시 볼일이 있다며 자연스레 자리를 비운다.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 원집사는 한가해지면 잊지 않고 따뜻한 손길과 간식을 챙겨준다. 기지개 한 번 켜고 페로몬 묻히는 걸로 츄르를 먹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훌륭한 거래인가. 이렇게 손발이 잘 맞는 집사는 처음이라 참 놓치고 싶지 않다. 

[사진 01-2 : 리셉에서 타이밍을 엿보고 있는 희남]


원래 나는 내 이야기를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말 많은 사람이 얼마나 병원 집사들을 힘들게 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입원 환자처럼 호수로 물을 공급받으며 따뜻한 입원장 안에 엎드려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하고,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이다. 




얼마 전부터 따스한 햇살 아래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농땡이 피우는 게 아니라 힘들어서였다. 병원 순찰이 더 힘들어지고 입맛도 떨어지고, 속도 메슥 거리는 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직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기에 설마 하며 며칠 쉬면 괜찮아지겠지 했으나 직원들이 나를 가만히 쉬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러고는 며칠 뒤 병원 집사들이 나를 여기저기 찔러대며 조물딱 거리더니 그 이후 나를 보는 모두의 시선이 달라졌다. 나의 불길한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염성 복막염이라나? 어쨌든 그 후로 나는 입원실에 갇혀 지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점차 몽롱해지고 무언가 내 몸을 밑으로 한 없이 잡아당기는 느낌으로 나의 병이 악화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나를 쳐다보는 직원들의 표정으로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드디어 이곳 아프니까 동물병원을 퇴근할 수 있을 것 같고 그 시간이 정말 얼마 안 남았음을 예감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4살 먹은 노인네의 이야기가 지루할 수 있으니 쉬엄쉬엄 듣기 바란다. 


[사진 01-3 : 대기실에서 쉬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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