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집사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병원으로 뛰어 들어오며 다급하게 외쳤다. 두 손에는 하얀 강아지로 추정되는 물체가 축 쳐진 채로 들려있었다.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에 병원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변했고 곧이어 수의 집사들이 대기실로 뛰어나왔다.
"바..방금 개껌을 먹고 있었는데, 방금까지 산책하면서 잘 뛰어놀고 괜찮았는데... 갑자기 기침을 하더니 쓰러져서... 선생님, 제발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
횡설수설하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여성에게서 강아지를 건네받은 수의 집사들은 강아지를 안고 수술실로 뛰어갔다.
"우리 태희 어떡해.... 안 되는데.... 제발...."
여성은 강아지를 건넨 뒤 계속 흐느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대기실을 초조하게 돌아다녔다. 아무래도 저 강아지의 이름이 태희인가 보다.
평소에도 수술방은 우리 고양이들의 출입 금지 공간이지만 특히나 이 순간에는 수의 집사들이 더욱 예민해지기에 절대 들어가선 안된다. 수술방 앞 책상에 올라 내부를 살펴보니 이미 강아지의 입과 앞 뒷다리엔 여러개의 호수와 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수의 집사들은 교대해가며 강아지의 가슴을 연신 눌러댔고 간호 집사들은 수의 집사들의 요청에 따라 바삐 움직이며 다양한 물품들을 가져다주었다.
'저렇게 무자비하게 가슴을 눌러대면 엄청 아플 텐데... '
누워있는 강아지가 안쓰러워 보였다.하지만 태희는 아프지도 않은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수술실 문이 열리며 불쾌한 냄새와 후끈한 열기가 밀려 나왔고 등이 흠뻑 젖은 수의 집사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어딜 가는지 따라가 볼까 잠시 고민하고 있는 동안 수의 집사는 강아지를 데리고 온 여성을 수술실로 데리고 다시 들어갔다.
"보호자님. 목을 막고 있던 개 껌을 제거하고 바로 심폐 소생술을 진행했지만 30분 넘게 반응이 없네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요."
"안 돼요 선생님. 무슨 방법 없나요? 진짜 안 돼요, 우리 태희... 우리 태희 어떡하지... 선생님 제발요."
안됐지만 태희는 힘들 것 같았다. 많은 아이들의 가슴이 눌리는 모습을 보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해서 걸어 나간 아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30분 넘게 심장 박동이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저희가 조금 더 노력해보겠지만, 회복된다 하더라도 심각한 뇌 손상이나 폐출혈, 허혈성 장기 손상이 올 수 있어요."
"우리 태희가... 봄이 때문에 살아요 정말... 아... 우리 태희 어떡하지, 봄이 좀 살려주세요 제발..."
'봄이? 태희?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혼란스러웠다.
잠시 뒤 젊은 여성 하나가 원집사의 안내를 받아 수술방으로 들어왔다.강아지를 안고 들어온 여성이 지금 막 들어온 젊은 여성을 보더니 얘기했다.
"태희야, 봄이가 힘들 것 같대. 어떡하니... 봄이 아까까지만 해도 산책 잘하고 들어와서 발도 씻고 기분 좋게 껌 먹고 있었는데. 우리 봄이 어떡하니..."
젊은 여성은 수의 집사들이 계속해서 가슴을 눌러대는 탓에 차마 다가서지 못한 채 한 걸음 뒤에서 큰 소리로 애타게 외쳐댔다.
"봄아! 봄아? 봄아, 일어나 봐, 응? 봄! 언니 왔어, 봄!"
그제야 이 강아지의 이름이 봄이이고 여성이 걱정하던 태희는 그 여성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쓰러진 강아지를 붙들고 멀쩡한 딸아이를 걱정한 이 여성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이 한둘이랴... 얼마 전엔 내가 봐도 곧 죽을 거 같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온 성인 남녀가 수의 집사와 이야기하면서 딸애가 지금 시험기간이라 1주일만이라도 더 살게 해달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 당시엔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봄이와 태희 그리고 태희 엄마를 보니 그때와 지금이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봄이라는 녀석은 종이 상자에 담겨 태희라는 여성의 손에 들려 병원을 나갔다.
수의 집사 녀석들의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아까 전의 난장판을 치우느라 늦게까지 바빴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공기가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일상의 아프니까 동물병원으로 돌아왔다. 수술실을 정리하며 수의 집사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태희라는 딸아이가 우울증이 심했다고 한다. 그런 우울증을 견디게 해 준 것이 봄이이기에 봄이가 쓰러지자 딸 걱정이 앞섰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이해 안 되긴 매한가지였다.
그날은 참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봄이는 과연 어디로 간 걸까... 그곳은 어떤 곳일까... 이제 곧 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