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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Oct 31. 2022

이 아이 보호소 출신인데, 혹시 몇 살인지 아세요?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38

털북숭이를 입양하게 된 후 대개는 며칠 이내로 근처 동물 병원을 방문하게 돼요. 예방 접종을 하기 위해 혹은 어딘가 건강상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체크해 보기 위해서이죠. 가정 분양이나 분양 샵에서 털북숭이를 입양한 경우 정확한 생년월일과 대략적인 건강 상태를 들을 수 있어요. 하지만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입양하게 된 경우엔 이 아이가 과거에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접종은 했는지, 중성화 수술은 했는지, 혹시 어딘가 아픈 곳은 없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에요. 그런데 여러 질문 중에서 수의사로서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어요.


"선생님, 이 아이 보호소에서 데리고 왔는데요. 혹시 정확한 나이를 좀 알 수 있을까요?"


털북숭이의 나이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단순히 이 아이가 앞으로 남은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나이에 맞는 영양분을 공급해 주어야 하고, 조심하고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할 포인트들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게다가 어딘가 아플  나이를 알 훨씬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검사하고 치료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젊은 털북숭이에게 피부병이 반복되면 아토피나 음식 알레르기를 우선 생각하게 돼요. 하지만 나이가 많은 아이에게선 호르몬 질환을 먼저 의심해야 하죠. 호르몬 질환이 있으면 피부병이 빈번해질 수 있거든요.

강아지가 기침이 잦아질 때도 마찬가지예요. 나이가 어리면 전염병이나 단순 감기를 먼저 의심해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 기침이 잦아지면 심장 문제나 종양의 유무를 확인해야 하죠.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단순한 감기 때문에 기침을 할 수도 있지만 심장병이나 종양이 기침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털북숭이의 나이를 맞추기 위한 여러 연구가 진행되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정확하게' 나이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여러 변화를 고려하여 나이를 추정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우선 치아

치아의 가장 확연한 변화는 바로 '유치'가 있느냐 없느냐예요. 아지 고양이는 생후 3~4 주령에 유치가 나오기 시작하여 2개월령이 되면 모든 유치가 다 나와요. 그리고 생후 3개월령부터 영구치가 나오기 시작하며 유치가 하나둘씩 빠지고 생후 6개월령이 되면 모든 영구치가 나오게 되죠. 그래서 어린 털북숭이의 경우 유치와 영구치의 유무를 보고 대략적인 나이를 가늠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육안으로만 치아를 보고 나이를 가늠하긴 힘들어요. 많은 보호자분들께서 치아가 닳은 정도를 보면 나이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하지만 털북숭이가 살아온 환경과 먹는 음식, 질병 유무 등에 따라 치아의 손상 정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확도가 매우 떨어져요.


치아를 통해 나이를 가늠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치아 방사선 사진을 찍어보는 거예요. 치아 내부에는 치수강이라고 불리는 동굴 같은 구조가 있어요. 이 동굴 내부에는 혈관과 신경이 들어와 있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치수강의 크기가 줄어들게 돼요. 맨 눈으로는 치수강의 크기가 보이지 않지만 치과 방사선을 찍어보면 치아 내부 치수강의 두께를 확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나이를 가늠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방법의 단점은 전신 마취를 해야만 한다는 거예요. 정확한 평가를 위해선 '구강 방사선 사진'이 필요한데 이는 전신 마취 혹은 진정제를 투여한 상태에서만 찍을 수 있어요. 또한 나이가 들어갈수록 치수강이 좁아지는 정도가 줄어들어 주로 젊은 성견 혹은 성묘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단점도 있어요.


다음은

털북숭이의 눈에는 나이가 들면 나타나는 특징적인 변화가 있어요. 바로 핵경화라 불리는 노령성 변화예요.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14; 우리 집 강아지 눈이 하얘졌어요! 백내장인가 봐요!'편 참조)

강아지 고양이는 만 8세가 넘어가면서 눈이 뿌옇게 변하는 특징이 있어요. 한 보고에 따르면 10세가 넘어가면 모든 강아지 고양이에서 이 같은 변화가 관찰된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노령인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에 하나이죠. 게다가 이 변화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심해지기 때문에 핵경화의 심한 정도에 따라 '얼마나 늙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어요. 실제로 15세를 넘어가는 아이들의 눈은 짙은 밤안개가 낀 듯한 변화가 수정체에서 확인돼요.


어느 한 논문에서는 이 특징을 활용하여 수정체의 앞면과 뒷면에 생기는 빛 반사의 형태를 보고 대략적인 나이를 추정하는 방법을 고안해내기도 했어요. 육안으로 눈이 뿌옇게 변하는 걸 보기 위해선 적어도 8세 이상이 되어야 하지만, 빛 반사를 이용하면 조금 더 어린 나이에도 수정체 변화를 빨리 알아차려 이를 통해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의 단점은 '눈'에 다른 이상이 없어야만 활용 가능하다는 거예요. 백내장이 생겼거나 각막에 이상이 있는 경우 혹은 어떠한 이유로 수정체를 볼 수 없는 경우 이 방법을 쓸 순 없어요.


마지막은 유전자

얼마 전 미국에서 처음 상용화된 기술이라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활용 불가능한 검사 방법인데요, 동물의 DNA에는 작은 분자 구조가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해요. 이 변화를 DNA 메틸화(Methylation)라고 하는데요, 이는 아주 정상적인 반응이고 대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메틸화 정도가 감소하며 DNA의 특정 부위에서만 증가하는 패턴을 보인다고 해요. 그래서 이 DNA 메틸화의 변화 패턴을 파악하여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죠. 획기적인 방법으로 그동안 사용되어 왔던 눈과 치아를 활용한 나이 추정 방법보다 훨씬 '하이 테크놀로직'한 방법이지만 역시나 단점이 있어요. 바로 질병 상태에 따라 DNA 메틸화가 영향을 받기에 '건강한 개체'와 '질병 상태의 개체'에서 서로 다른 값이 나올 수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만성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개체에서 검사했을 때 실제 나이와 차이가 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거든요. 그래도 이와 관련된 연구가 계속 진행되면 가까운 미래엔 더 정확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정리해보면 나이가 어릴 땐 치아로, 나이가 들어서는 눈으로 아이들의 연령대를 짐작해 볼 수 있어요. 현재 기술로는 정확한 나이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략적인 연령대를 구분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죠. 게다가 기술의 발달로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DNA를 활용한 나이 추정 검사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여요. 


이처럼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털북숭이의 나이를 가늠했다면, 그저 나이를 알았다는 사실에만 만족하지 마세요. 그 나이에 맞는 영양분을 제공하고 해당 나이에 발생할 법한 질병들에 대하여 미리 예방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보살피는' 방법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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