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케니 Nov 15. 2022

넌 왜 여기로 놀러 오는 거야?

나는 희남이로소이다 - 06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이곳 아프니까 동물병원에 들어오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처치실 안에서 수의 집사와 간호 집사가 하는 모든 행위는 그들에게 고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만지고 들춰보며 당겼다 돌렸다 심지어 뾰족한 바늘로 찔러대기까지 하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보아도 이곳 집사들이 하는 행동이 자신의 아픈 곳을 낫게 해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하긴 그 정도로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병원 바닥 여기저기 똥오줌 싸고 짖어대지 않았겠지.


그런데 아주 가끔 이곳을 놀러 오는 곳으로 착각하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도대체 왜?'

 도저히 그 이유를 모르겠다. 특히나 요새는 쪼미라는 녀석의 착각이 아주 심각하다.


처음엔 병원에 들어와 대기실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다가 다시 나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진료 기다리다 아픈 곳이 다 나았나?'

별 관심 없는 희남

그런데 이런 모습이 눈에 띄게 잦아지기 시작했다. 진료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간식이나 장난감을 사가는 것도 아니었다. 보호자는 그저 앉아만 있고 쪼미는 병원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한참을 있더니 가는 것이었다.

'뭐지? 사러 온 사료나 간식이 다 떨어진 건가?'


그러던 어느 날 밤, 병원 집사들이 모두 퇴근하고 인포 데스크에 올라앉아 명상을 하던 중 출입구에서 특유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쪼미였다. 닫힌 병원 문 앞에서 건물 밖으로 끌고 가려는 보호자를 무시한 채 꼿꼿하게 서서 이곳을 향해 짖고 있었다.


"쪼미야! 병원 문 닫았잖아. 산책 나가자, 응?"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쪼미는 이곳에 놀러 온다는 것을. 그 이후로도 쪼미의 병원 놀러 오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쪼미 보호자가 울면서 쪼미를 안고 들어왔다.


"선생님, 흑흑... 쪼미 발 좀 봐주세요. 쪼미가 방금 요 앞에서... 흑흑..."


쪼미의 발엔 피가 흥건했다. 에스컬레이터라는 것에 발이 끼었다고 한다. 그게 뭔진 잘 모르겠지만 쪼미의 발에서 나온 피의 양 만으로도 매우 위험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처치실로 통하는 문이 닫히는 바람에 미처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한 동안 쪼미의 비명 소리가 병원에 울려 퍼졌다.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한참 뒤에서야 쪼미는 네 발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나왔고 그 후로 평소보다 자주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더 이상 발에 붕대가 감기지 않고 나온 쪼미를 보며 생각했다.

'이 녀석, 이번에 호되게 당했으니 이제 이곳에 놀러 오지 않겠군.'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나의 오랜 병원 생활에서 우러나온 경험적 지식이었다. 처음엔 병원에서 꼬리 치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돌아다니던 녀석들도 처치실에서 비명 몇 번 지르고 나면 곧 태도가 달라졌다. 아무리 수의 집사와 간호 집사들이 어르고 달래며 온갖 아양을 떨어도 녀석들은 겁에 질려있었다. 꼬리를 감추고 안절부절못하며 보호자에게 빨리 나가자고 재촉하기 바빴다. 하지만 쪼미는 달랐다.


지난번의 치료를 벌써 잊었는지 쪼미는 그 이후에도 더욱 자주 앞장서서 이곳 아프니까 동물병원에 놀러 왔다.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녀석의 활동 반경은 넓어졌고 결국 나의 보금자리마저도 그 녀석에게 침범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희남이와 쪼미


하지만 괜찮다. 난 인내심 많은 고양이니까. 게다가 다행인 건 이 녀석은 다른 강아지들과 다르게 끔찍한 냄새가 나지도 않고 날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하도 자주 보아서 그런지 며칠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궁금하기까지 하다. 쪼끔 귀여워서 그런가, 오래 보아 정들어서 그런가,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작가의 이전글 두 달 전에 받은 피부 연고 있는데, 그거 써도 돼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