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둘째 주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사지 않고) 보기 위해서'입니다. 교보문고 적자를 키우는 주범인 셈이죠. "이것저것 책을 빼 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절대 눈치 주지 말라"는 신용호 교보생명보험 창업주의 운영지침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번주 광화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는 유시민 작가의 책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 책을 이번주 매일 저녁 조금씩 읽어나갔습니다. 그 책 내용을 일부 발췌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은 정치적 사고(事故)였다. 표를 준 유권자들도 그가 이토록 무지하고 무능하고 포악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회적 선과 미덕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잘못된 만남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와 인간 윤석열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대통령직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교보문고에서 집으로 퇴근하며 단 하나의 생각만 했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썼을까.
내가 아는 기존의 유시민 작가라면, 이렇게까지 쓰지는 않았을 텐데. 예를 들어 "윤석열이 임기를 채우게 허락해도 대한민국이 괜찮을지 토론하고, 탄핵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공유하며, 형편이 된다면 탄핵 요구 집회에 참여하자"(254pg)는 주장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들이죠.
유 작가가 <매불쇼>에 나가 했던 조언을 기억합니다.
상대방에게 말할 때는 3가지를 기억하라.
첫째, 옳은 말인가
둘째, 그것이 옳다면,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셋째, 그것이 옳고 필요하다면,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즉, '옳은 말을 필요한 때에 친절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정리될 수 있겠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이 책의 문장들엔 물음표가 여러 번 찍혔습니다.
1985년 전두환 정권의 학원 폭력에 맞서 써 내려간 그의 항소이유서 문장들 또한 겹쳐집니다. 그의 말처럼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가 다시 도래한 건가.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노여움이 정당화되는 애국'을 다시 시전 하시는 건가. 옹호 혹은 비난의 논리가 아닌 단순한 궁금증에 사로잡혀 버린 겁니다. '지금, 정말, 그 정도인가'하는 거죠.
이른바 해장국 언론이 필요하다고 요구받는 시대에, '해장국 서적'까지 필요해진 게 아닐까. 어쩌면 내가 써 내려가야 할 글들도 결국 독자의 심리적 해방감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왜냐하면 독자들의 기분에 초점이 맞춰진 글들은 이미 넘쳐나며, 그걸 내가 잘하지도 못할뿐더러, 애초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는 해장국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늘은 저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을 늘어놓겠습니다. Self-thinking 이랄까요.
수많은 이력서를 썼습니다. 물론 1차 서류전형에서부터 떨어집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그냥 탈락했다는 연락만 오죠. 대체로 이런 문구와 함께요.
"우수한 역량을 갖추심에도 한정된 조건으로 인하여"
"여러 제약조건으로 인해"
"아쉽게도"
"안타깝게도"
"합격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하게"
그렇게 떨어진 서류만 해도 수십 장. 그래도 단순 합/불 여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달 방식과 내용을 모두 꼼꼼히 읽어보는 편입니다. 혹시 이유라도 설명해 줬을까 하면서요. 단 한 곳도 제가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개의 회사만큼은 기억에 남습니다.
감히 어떤 말로도 위로를 드릴 수 없겠지만, 이번 결과는 결코 지원자님의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정된 인원으로 인하여 뛰어난 지원자분들을 많이 모시지 못하는 회사의 부족함 때문임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젠가부터 취업 그 자체가 목적이고 꿈이 되어버린 삭막한 취업 환경 가운데
매일을 고군분투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여러분들께
그 어떤 말로도 온전한 위로를 건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록 이번 전형을 통해 좋은 인연으로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꿈꾸는 인생은 반드시 실현되리라 믿으며 진심 어린 응원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향후 또 다른 경로로 여러분을 다시 만나 뵐 수 있기를 희망하며
앞으로 펼쳐질 삶에 성장과 행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빛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채용과정에서는 기업과 지원자의 관계가 완전한 갑-을 관계입니다. "뽑아만 주신다면.."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도록 지원자는 철저한 乙로 전락하고, 반대편에 서 있는 기업은 '아무 말하지 않아도' 철저한 甲이 되죠. 쉽게 말해, 기업은 지원자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냥 '싫어'라고 치부해도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자들을 고려하는 위로의 문장들'은 기업 인사팀의 섬세한 배려가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청년 구직 단념자가 40만 명인 상황에서,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입사하겠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세심하게 챙기는 거죠. 물론 위로의 글에서 드라나다시피, 기업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취업 자체가 꿈이 되어버린 삭막한 환경'이라는 것을요.
꽤 오랫동안 이런 거절의 문장들을 소화해 내느라 고생했습니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깊이 고민하기를 수차례. 그리곤 스스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완곡한 거절의 표현'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아Q정전의 주인공처럼 정신승리를 하기로 결심한 겁니다.
이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 걸까요. 거절에 무감각해지는 건 아닙니다. 거절의 아픔들을 감각하되, 오래 남겨두지 않도록 빨리 씻어내는 방식이죠.
오래전에 읽은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문익환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기억해 내면서요.
머리가 돌아버린 채, 역사를 산다고 생각하면서요.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중략)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