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첫째 주
넌 나의 태양
네가 떠나고
내 눈엔 항상 비가 와
끝이 없는 장마의 시작이었나 봐
시간이 멈춘 것 같아
이 비가 멈추질 않아
비는 오락가락하지만, 본격적인 장마철입니다. 장마철마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가수 정인의 <장마>를 듣습니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타닥타닥 날 때마다 정인 씨의 절절한 목소리가 빗방울을 살며시 감싸는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참 어렵네요.
대충 생각해도 '장마'는 비가 길게 온다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도대체 '마'는 뭘까. 검색해보지 않고 한참 제 짱돌을 굴려봤습니다. 마귀의 마(魔)인지, 달리는 말의 마(馬)인지 도대체 알 수 없었습니다.
찾아보니 장마는 한자와 고유어의 합성어라는 설이 유력하더군요.
'길다'는 의미의 한자어 '장(長)'과 비를 의미하는 '마ㅎ'를 합성한 '댱마ㅎ'
요즘 유행하는 럭키비키(Lucky + Vicky)와 같은 느낌이랄까요. 찬찬히 뜯어보면 단어의 느낌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지난 2022년 여름을 강타했던 한 장의 사진. 바로 강남역 제네시스좌인데요. 당시 서울엔 시간당 최고 140mm가 넘는 비가 내렸습니다. 서울시 1시간 최다 강우량 공식 기록 1위였던 118.5mm를 가뿐히 경신하는 숫자였죠. 그렇게 이틀간 500mm가 넘는 비가 내렸습니다. '여름철 한 달 강수량이 하루 동안 한꺼번에 터졌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겠네요. 그 외에도 강남역 슈퍼맨, 이수역 승강장 천장 붕괴 등 수많은 일들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장마는 이렇게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무지막지하게 쏟아붓는 비'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단순히 비가 길게 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장마로 인한 피해는 막대합니다.
이건 '양질전환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데요. 일정규모 이상의 양이 충족되면 물리/화학적으로 변화가 일어난다는 이론입니다. 양을 꾸준히 누적시켜서 임계점(critical point)을 넘겨버리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이걸 장마에 적용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장마의 진짜 무서운 점은 한 번에 억수로 쏟아붓는 게 아니라, 끈질기게 쏟아붓는다는 점이죠. 차곡차곡 쌓다가 제방 시설이 견딜 수 있는 한계점을 넘겨버리는 겁니다. 피해는 바로 그때 발생합니다.
20240701 중앙일보發 <[단독] NASA 출신 새 기상청장 "100년만의 폭우, 이젠 30년에 한번꼴">
이번주 이 기사에서 장동언 신임 기상청장이 무시무시한 세 가지 말을 합니다. 이 말의 의미를 한 번 살펴보죠.
날씨와 술래잡기, 경주하는 기분이다.
한국은 기상 예측이 어려운 조건을 두루 갖고 있다.
폭염은 예년보다 심하지 않을 것이지만, 비는 어디가 최대치인지 단언할 수 없다.
첫째, 날씨와 술래잡기한다는 말은 '기상 예측'이 아니라 사실상 '기상 중계'를 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우산을 챙겨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한 말을 해주기 어렵다는 뜻이죠. 나름 국내 기후 관련 최고 두뇌집단의 수장일 텐데, 이런 말을 들으니 섬뜩했습니다.
둘째, 그럼 현재 이런 불확실한 기후가 나아질 수는 있는 거냐? 그렇지도 않다는 뜻이죠.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 국토의 70%가 산지라서 비구름의 특성이 쉽게 바뀌는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기후 예측이 어렵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 버린 꼴인데요. 실제로 20240702 SBS發 <[단독] '슈퍼컴' 예측보다 강했다…중부 폭우 원인은?> 기사를 보면, 최초로 기상청 슈퍼컴퓨터가 예측했던 것보다 북쪽에 더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셋째, 불확실한 날씨? 알겠어. 그럼 최소한 얼마나 휙휙 변하는지 알 수 있냐? 모릅니다. 그는 긍/부정이 아니라 물음표를 찍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나아질 가능성도 없고, 예측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 없이 이리저리 생각하며 광화문 교보문고를 헤집고 다니다가 책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바로 김수현 작가의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한 개인이 날씨를 바꿀 순 없습니다. 날씨에 따른 피해를 예방할 수는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호우피해를 막긴 어렵습니다(물론 피해를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겠죠).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건 개인의 감정일 겁니다. 우울하고 칙칙한 날에 감정을 상하지 않게 노력해 보면 어떨까요. 책 제목과 비슷하게 '날씨가 태도가 되지 말자'라고 생각하면서요.
당신의 감정은 당신의 것이고, 당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봐선 안 된다.
이 또한 지나갈 일임을 명심하자.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만 가슴속에 새겨두고 있다면
적어도 감정에 잡아먹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항상 맑기만 하면 사막이 된다고 했다.
비가 오는 날도 있고 바람이 부는 날도 있어야 비옥한 땅이 된다.
<장마>라는 노래처럼 시간이 멈춘 것 같고, 비가 멈추지 않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그치겠죠.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사탕발린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훗날 찾아올 희망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태도가 되지 않게 일찌감치 '감정 단속'을 하며 예방하는 겁니다. 의식적으로요.
모두가 축축 처지는 게 느껴지는 일주일이었습니다. 귀찮은 우산을 챙기고 젖은 신발과 옷을 말려야 하는 하루들이 투성이었던 여러분들의 일주일은 어떠셨나요. 부디 장마가 태도가 되진 않으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