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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or review Jun 21. 2024

'그깟'의 무게

2024년 6월 셋째 주

출처 : DAEGUSTO

가끔 프로 야구를 봅니다. 꼬박꼬박 챙겨보긴 쉽진 않지만요.


기왕이면 야구 중계를 처음부터 보려고 합니다. 권성욱 캐스터의 경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지난달에 화제가 됐던 오프닝 멘트가 있습니다. 기억하시는 삼성팬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깟 공놀이라며 애써 외면했지만 

어김없이 다시 시작된 시즌. 

올 시즌만큼은 다르다고 믿지만, 

때로는 상처가 때로는 안도가 됩니다. 

그리고 TV 앞으로 혹은 핸드폰을 다시 켭니다. 

이제 곧 뜨거운 여름이 시작됩니다. 

뜨거움이 곧 자존심인 도시에서 실망이 희망으로 바뀌어 가는 팀과 

아직도 실망스러운 팀이 대결합니다. 

실망과 희망, 그 사이의 모든 것들이 오늘 이곳에 있습니다. 

여름이 뜨거운 도시 그리고 매일 밤 뜨거워지는 라팍의 불금매치, 지금 시작합니다. 

2024. 5. 3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 : 삼성 라이온즈]


'그깟 공놀이'라고 치부당하는 야구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구 팬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손바닥보다 작은 공 하나. 권 캐스터는 "실망과 희망 사이의 모든 것들이 야구장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까이꺼 대충...


출처 : https://blog.naver.com/galluslee19/223364707986

그깟(그까짓의 준말)의 사전적 정의는 간단합니다.


겨우 그만한 정도의.


예문도 온통 부정적인말 투성이입니다.


그까짓 일로 울다니 / 그까짓 조무래기들은 상대가 안 된다 / 그까짓 놈들 백 명이 있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어 / 겨우 그까짓 일로 화를 내니?


그깟이 붙으면 전체적인 문장이 모두 부정어로 바뀌어버립니다. 문장의 무게 추를 휙하고 돌려버리는 거죠.


그렇지만 저는 그런 단어들을 그닥 선호하지 않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의 무게가 무거운 것들, 이를테면 겨우 / 금새 / 쉬이 같은 말들이요.


직장 상사에게, 주위 사람들에게 '그깟', '까짓 거'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힘을 좀 빼고 접근하면 문제가 훨씬 수월하게 풀릴 것이라는 노하우였습니다. 힘들이지 말고, 천천히, 가볍게 대하라는 충고였죠.



이번주의 '그깟'


이번 주 뉴스에 '그깟' 혹은 '그까짓'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뉴스는 뭐가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야구 관련 내용 제외) 두 개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20240618 시사IN發 <영일만 심해, 기어이 파보겠다면 [편집국장의 편지]>

"대한민국이 산유국이 되고 전 국민이 중동 부호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에 ‘그깟 5000억원(한국석유공사 측이 밝힌 예상 사업비)’쯤 써볼 수도 있겠다. (중략) 석유가 나올 수도 있다. 나도 나오면 좋겠다. 하지만 이 정도 성공 확률의 사업에 그 정도 규모의 국민 세금을 쓰고 싶다면,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


20240617 세계일보發 <“그깟 돈 때문에” “도와주니 불만”… 전공의·의협 또 ‘내분’ [서울대 병원 집단 휴진]>

"16일 전공의·의대생들의 참여 비율이 높은 의사 커뮤니티에서는 임현택 의협 회장을 향한 비난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개원의를 향한 비난도 쏟아졌다. 한 전공의는 '우린 4개월째 월급도 못 받고 있는데 (개원의는) 그깟 돈 때문에 겨우 하루를 못 쉬냐'고 비난했다."


놀랍게도 첨예한 이슈에 '그깟'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영일만 심해에 석유가 묻혀 있을 수 있다는 대통령의 한마디로 산유국의 꿈을 지핀 '대왕 고래프로젝트'에도,

몇 달째 정부와 의사 간 숨 막히는 신경전에서도 바로 그 '그깟'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그깟이 지칭하는 말은 모두 '돈'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제시한 예시들과는 모두 괴리된 목적어 <돈>.


역설적으로 우리에겐 돈이 매우 필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어쩌면 그 중요한 돈을 경시하기 위해 일부러 집어든 단어 '그깟'. 

우리는 왜 이렇게 그깟 돈에 집착하는 걸까요. 

아니, 그렇게나 중요한 돈을 왜 그깟이라며 깔보는 것일까요. 

돈 보다 더 중요한 아니, 더 그깟 것은 없는걸까요.



그까짓 게 뭐라고


하재일 시인의 시집 <코딩>에 나오는 시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지난 주부터 '혹시나' 하는 노파심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여고생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하며 

남긴 유서에 

딱 네 글자가 살아 있었다

“이제 됐어” 

(아이는 엄마가 제시한 성적을 낸 직후였다) 

그까짓 게 뭐라고 그까짓 게 뭐라고

<그까짓 게 뭐라고> 中



P.S.


20240613 한국일보發 <"6월 모평 영어 1등급 1.3%뿐"... 이대로면 수능 최저등급 통과 '바늘구멍'>


"교사들이 이달 4일 치러진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모평) 가채점 결과를 분석해 영어 1등급 비율이 1% 초반대에 그칠 것으로 추정했다. 본수능도 이런 수준으로 출제된다면 의과대학 등 수능 최저등급 기준이 높은 학과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거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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