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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or review Jun 14. 2024

지진을 보며 절망한 이유

2024년 6월 둘째 주

(지진으로부터 무해하셨기를 바라며 오늘의 글을 시작합니다)


출근길 버스였습니다.

삑-삑- 삐익-


버스 안에서 단체로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다는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수 십 가지 생각을 했죠.


전쟁이군. 오물에 폭탄이 섞여있던 건가? 전쟁이 났을 때 버스 안에 있으면 살 수 있을까?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지? (핸드폰 확인) 아~ 지진이구나?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This Earthquake



출처 : 기상청

12일(수) 08시 26분 49초. 


전북 부안에서 리히터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이 아닌, 내륙(땅)에서 발생한 지진이기 때문에 벽이 갈라지는 등 재산상의 피해가 속속 발생했습니다.


출처 :  기상청

숨을 완전히 고르기도 전인 13시 55분 42초. 


또 한 차례의 지진이 발생합니다. 리히터 규모 3.1에 해당하는, 작지 않은 여진이었습니다.


첫 지진 직후에 제가 기상청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한 정보는 총 2개였습니다.


※ 금일 발생 지진은 2024년도 한반도 발생 지진 규모 1위에 해당함 

※ 금일 발생 지진은 2024년도 남한 지역 발생 지진 규모 1위에 해당함


올해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큰 지진이었단 걸 단박에 알아들었죠. 

출처 : 기상청

얼마나 큰 지진이었느냐면, '거의 모든 사람이 진동을 느낄 정도(V)'였습니다. 부안과 멀리 떨어져 계신 분들은 그 위력을 잘 모르실 수 있겠죠? 그릇이나 창문이 깨지고, 불안정한 물체는 넘어지는 정도였다는 겁니다.


(보시다시피) 공식적인 설명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일부가 잠에서 깨고 흔들리는 수준(IV)을 넘었죠. 즉, 부안에 있었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심지어 숙면자도 잠에서 깨서) 흔들림을 느꼈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기사의 제목과 내용이 다소 위협적입니다.


20240612 연합뉴스發 <한반도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4.8보다 더한 강진 언제든 가능>

20240612 연합뉴스發 <"폭탄이라도 터진 줄…" 지진에 놀란 가슴 쓸어내린 시민들>


출처 : 기상청

지진 통계를 보면 저런 제목들이 조금 더 와닿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지진 통계 집계를 시작한 게 1978년. 

1999년부터 디지털 관측이 시작된 이래, 우리는 매년 평균 70번의 크고 작은 지진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특이한 점은 2016년 이후로 우리나라는 거의 매년 '평균 이상의 지진'을 경험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횟수만큼이나 강도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고 있긴 합니다. 


지난 20년간 내륙에서 규모 4.8 이상의 지진을 경험한 적은 딱 3번입니다. 모두 2016년 이후입니다.


1. 경북 경주/ 2016년 9월 12일 19시 44분 32초/ 규모 5.1

2. 경북 경주/ 2016년 9월 12일 20시 32분 54초/ 규모 5.8

3. 경북 포항/ 2017년 11월 15일 14시 29분 31초/ 규모 5.4


같은 날에 발생한 지진인 1, 2를 하나로 본다면,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이 정도 규모의 지진을 2번밖에 못 봤습니다. 


부안 지진까지 포함해도 4/1107(기상청이 집계한 10년 간 총 지진 횟수).

상위 0.36% 안에 드는 강한 지진이었던 셈입니다.



시간을 거슬러(지진 편)



물론 이런 강한 지진은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훨씬 많았습니다. 기상청에서 공식적으로 리히터 규모 8~9에 해당하는 사례를 총 15개나 제시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지진에 대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기준, 가장 많은 지진(498회 등장)을 겪었던 중종의 사례를 한 번 보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중종에 대한 설명 잠시.


중종은 그야말로 왕위에 헐레벌떡 올랐습니다. 폭군이었던 연산군만 아니면 누가 왕이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분위기로 중종반정이 벌어졌으니, 연산군의 이복동생이었던 중종이 어부지리로 왕위에 오른 거죠. 이른바 '빽 없이' 정치에 도전한 신인 왕은 당연히 인기가 없었고, 어떻게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비전도 없었더랬죠.(출처 : <이다지 한국사 : 전근대 편> 바탕)


그런 중종이 천재지변을 맞닥뜨리고 났을 때의 반응을 한 번 보겠습니다. 



중종실록 14권, 중종 6년 10월 13일 경인 3번째 기사

대간이 유순정을 탄핵하니 전교(명령)하다

대간(조선시대 탄핵과 감찰을 맡음)이 아뢰기를

"금년은, 봄은 가물고 여름은 황충의 해가 있었으며, 가을은 가물고 겨울은 우레와 지진·성변이 있었으니, 재변이 많기로는 금년처럼 심한 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유순정은 재변을 그치게 할 생각은 않고 오로지 재산을 불리기에 힘썼으니, 나라 걱정하기를 집처럼 하는 뜻이 없습니다. 이 어찌 대신의 도리이겠습니까. 자고로 정승의 자리에 있는 이는, 몸에 허물이 없더라도 재변이 있으면 직위를 면하는 이가 많았거든, 하물며 재이(재앙이 되는 괴이한 일)가 잇달아 일어나는데이겠습니까. 유순정의 허물이 매우 많습니다. 속히 면직하여 하늘의 견책에 응답하소서"하니,

전교하기를

"유순정이 정승의 직에 있기는 하지만, 천변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실로 나의 부덕함에 말미암은 것이다. 나머지도 다 윤허하지 않는다"하였다.

중종반정을 이끌었던 핵심 3인방 중 1명인 유순정. 그리고 그런 유순정에게 힘없고 인기 없는 중종이 휘둘렸겠죠. 조선시대 감찰을 맡은 대간이 "유순정이 돈만 밝혀요! 쫓아내야 해요!"라고 말합니다.


핵심 근거는 '재이'. 돈을 밝힌다는 건 부수적인 이유였죠. 가뭄과 병충해, 지진이 연이어 발생하자, "금년(올해)처럼 심한 해가 없었"다고 말하며 탄핵 사유로 바로 이 '재이'를 끌어들인 겁니다. 


결국 중종은 유순정을 내칠 수가 없어 "천변(하늘에서 생기는 자연의 큰 변동)은 다 나의 부덕함(덕이 없음)" 때문이라고 둘러댑니다.



자 그리고, 시계를 30년 뒤로 돌려보겠습니다. 또다시 지진이 발생한 어느 날입니다.



중종실록 98권, 중종 37년 5월 15일 을미 2번째 기사

천재시변의 거듭됨을 들어 삼공이 체직(벼슬을 갈아버리다)을 건의하다

삼공(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아뢰기를

"근래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거듭 생겨, 겨울에 천둥이 치고 여름에 서리가 내리며 지진이 일어나고 가뭄이 심하니 재변이 이처럼 심한 때가 없었습니다. 신들이 모두 변변치 못하면서 외람되이 섭리(燮理)하는 중요한 지위에 있어서 이런 재변(재앙으로 인하여 생긴 사고)을 불러왔으니, 신들을 속히 체직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런 재변은 다 내가 덕이 없어서 일어난 것이다. 어찌 경들의 잘못이겠는가. 재변 때문에 삼공을 면직하는 것이 어찌 옳겠는가." 하였다.

다시 사직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국가권력 TOP3가 '온 나라에 천재가 발생한 탓'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나섭니다. 중종은 30년 전에 했던 말과 똑같이 답합니다. "다 내가 덕이 없어서 그런 거다. 너네는 잘못이 없다."



차라리 중종이 낫다


오늘날 중종만도 못한 리더를 많이 봅니다.

"내 부덕의 소치"라는 말은 죽어도 입밖에 내지 않는, 높으신 분들 말이죠.


"내가 잘못한 건 없고, 다 너의 잘못이고, 너가 못 알아듣는 거고, 내 탓으로 돌리지 마."라는 말들을 쉽게 쏟아내는 입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절망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지진이 발생해도 그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던, 그때의 '힘없는 꼭두각시 중종'이 더 낫지 않나.


오늘도 집에서만 연거푸 한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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