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라

2026년 4월 둘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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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334887584_3_0.jpg @청와대

12년입니다. 2014년 4월 16일로부터 12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고1이었던 학생들. 지금 우리 곁에 있었다면 벌써 서른 살입니다.


그 아이들을 보며 사회는 다짐했습니다. 잊지 않을게. 미안해. 어른들이 미안해.



8년 전, '이제 그만하자'고 했던 언론


8e535cba8065de269450029ee877e703.jpg @조선일보

2018년으로 시계를 돌려보겠습니다.


참사 4주기, 조선일보는 사설에 이렇게 썼습니다.


20180416 <[사설]세월호 4주기, '정치 이용'은 할 만큼 하지 않았나>. "현(당시 문재인) 정권은 세월호 사고 4년이 지난 지금도 붙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세월호에 대한 정치적 이용은 할 만큼 하지 않았냐"는 지적입니다.

문 대통령은 "촛불도, 새로운 대한민국의 다짐도 세월호로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도 대통령 잘못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왜 취임 후 일어난 많은 떼죽음 사건의 희생자들을 구하지 못했나.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아직도 횡행하고 있다.

첫째, 재난 컨틀롤타워인 대통령일 일을 똑바로 했더라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한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어차피 구할 수 없었다(x)? 한명이라도 더 살렸어야 한다(o)여야죠. 참사 발생 이후 7시간동안 청와대에서 여유를 부리지 않았어야 한다는 겁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은 왜 다른 사건의 희생자들을 못 구했냐는 지적은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입니다. 전혀 다른 사건을 똑같은 맥락으로 억지 연결하려는 논리구조입니다. 구구절절 반박하진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여타의 사건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사회적 재난과 발생사건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입니까?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 그렇게 구명쪼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재난 컨트롤 타워로서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방증이죠. 대통령은 국정 총책임자로서 신속한 상황 인식 및 판단을 해야 합니다. 정확하고 재빠른 구조 대책을 내놨어야 합니다. 피해자를 향한 위로와 피해 대책을 마련했어야 합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재발하지 않는 정책까지 세워야 합니다.


그게 다 안 됐습니다. 이걸 제 때, 제대로 못했으니까 실패했단 평가를 받는 겁니다.



4년 전에도 부재했던 컨트롤타워


fae0338e9178e7.jpg @대통령실

실패한 대통령. 기시감이 듭니다. 4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죠.


2022년 11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10.29 이태원참사 현장을 찾았습니다. 해밀턴 호텔 옆 골목을 걸어 오르며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

"아, 그럼 여기에 인원이 얼마나 있었던 거야?

"압사? 뇌진탕, 이런 게 있었겠지"


윤석열 대통령이 현장을 찾아서 해야 하는 건 고작 '상황 파악'이 아닙니다. 사고 원인 등 상황 파악은 참모들이 다 해줬어야 합니다. 그 대신 상황을 숙지한 뒤, 현장을 찾아 피해 대책을 내놨어야 합니다. 유가족을 위로하고 상황을 수습하는 데 힘썼어야 합니다.


그걸 못한 겁니다. 이걸 제대로 못했으니까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 겁니다.



'입꾹닫'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mathew-schwartz-QWnu-U1TdZc-unsplash.jpg @Unsplash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는 '세월호 참사' 기사를 지면에 단 한 줄도 쓰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기사를 쓰지 않으면 보수다? 아닙니다. 세월호 기사를 쓰면 진보다? 가당치도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언론의 정파성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아니,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들은 그러고 있습니다. 마치 세월호 기사를 정치적 구호로 받아들입니다.


세월호 참사 기사를 쓰는 게 그대들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당시 사건 현장에 갔던 기자들이 지금 언론사 요직에 가 있습니다. 차장, 부장이 됐을 겁니다. 당시 팽목항의 생생한 현장과 울음 소리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대거리를 벌이는 겁니까?


2026년 4월 16일 경향신문, 한겨레, 세계일보, 한국일보는 신문 1면에 세월호 참사를 다뤘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사설로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했습니다.


먼저, 20260416 경향신문 <[사설]세월호 12주기, 잊지 않겠다는 약속 지키고 있나>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2년이 됐다. 강산도 변할 만큼 세월이 지났지만 그날을 기리며 팽목항과 안산, 광화문 거리로 향하는 유족들의 발걸음은 변함이 없다.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차가운 바닷속에 잠기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그날의 비극을 결코 잊지 않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몇번이나 다짐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이건 세월호 참사를 경시한 언론을 향한 훈계와도 같습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똑바로 보라고 쓴 글 같습니다.


20260414 한겨레 <[사설] 세월호 12주기, 잊지 말아야 안전해진다>도 비슷합니다.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이었던 ‘돈이 먼저고 안전은 뒷전인’ 사회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과연 얼마나 안전해졌는지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중략) 세월호 참사의 고통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참사를 기억하고 유족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아야 우리 사회가 좀더 안전해질 수 있다.

참사를 기억하고 유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언론은 '세월호 참사 책임 범위'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한놈만이라도 미안하다고 해라"


화면 캡처 2026-04-16 214228.jpg @4.16재단

20210415 오마이뉴스 <"한 놈만 미안하다고 해라" 아수라장 된 청문회장> 기사입니다.

청문회 자리에 앉아있는데 옆에 앉아있는 동수씨가 "변명하지 말고 미안하다고 해라. 한 놈만 미안하다고 해라" 하며 혼잣말을 계속 하는 거예요. 청문회가 잠시 휴정되었다가 다시 시작되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작은 면도칼을 가지고 자해를 했어요.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나중에 동수씨에게 들어보니 이미 집에서부터 챙겨가지고 왔더라고요. 그때 백 몇 바늘 꿰맸던 거 같아요. 나는 너무 놀라서 그만하라고 소리치다가 정신을 잃었어요.

세월호 참사 생존자인 화물기사 동수 씨는 청문회에서 면도칼로 자해를 시도했습니다. 동수 씨가 자해하기 전까지 되뇌던 말은 "한 놈만 미안하다고 해라"였습니다.


전 이번 주 동수 씨를 머릿속에 계속 떠올렸습니다. 정말, 여전히,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구나.


대관절 언론이 참으로 뻔뻔하구나.


쇠락하던 로마의 장군 베게티우스는 말했습니다.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십시오. 그게 안전한 사회로의 지름길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십시오. 그게 언론의 추모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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