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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웨Manwe Jan 31. 2024

기다림이 필요한 아이

느림보

첫째 아이는 항상 행동이 느리다.


이 얘기를 들으면 아이들은 보통 다들 그런다고, 우리 아이들도 많이 느리다고 혹은 느렸다고 얘기들 하겠지만 그나마 빠릿빠릿한 둘째 아이를 보면 그냥 우리 첫째 아이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느린 것 같다.


느림의 시작은 걸음마부터였다.


보통 아이들이 걸음마를 전후로 떼는데 걸음마 시작하는 것도 14개월쯤에 했고, 말문도 어린이집 또래 친구들을 보니 조금 늦게 트였다. 


걸음마와 말문이 트이는 느리더니 이제와서는 행동도 느릿느릿하다.


식사시간엔 밥을 먹는 것까지만 30분 이상 걸리고(오래 씹는 게 아니다. 그냥 입 안이 비어있고 말하는 시간이 많다.), 과일 같은 간식까지 먹으면 1시간은 그냥 소요된다.


이 닦으라고 칫솔을 손에 쥐어주기라도 하면 입에 넣고 칫솔질을 시작하기까지는 또 얼마나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이해를 넘어 신기할 정도고, 이를 닦으면서 말은 어찌나 그리 많은지 중간에 끊어주지 않으면 하루종일 닦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침 7시 반쯤 아이들을 깨워 등원준비를 시작하는데, 몇 번의 고함이 오고 가고 술래잡기를 하는 전쟁통 같은 시간을 지나 겨우 준비가 끝나면 8시 반이 되어있을 때가 다반사다.

빵 먹이고, 이 닦이고, 옷 입히고 가 다인데 그중에서 옷 입히는 건 아내와 내가 잡고 바로 입히니 그나마 5분이면 끝이지만 나머지 두 가지 일에 대략 30분씩 걸리는 셈이다.

만약 이 상태에서 아내와 내가 나서지 않고 그냥 혼자 하도록 놔두면 9시 반은 되어야 끝나지 않을까.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결국 아내와 내가 바로 옆에 붙어 빨리 하라고 닦달을 해야 겨우 끝마칠 수가 있다.


아무래도 타고난 기질은 어쩔 수가 없다고들 하던데 어르고 달래 봐도 도통 변하는 게 없다 보니 바로 이게 말로만 듣던 기질인가 보다 이해하고 있다.

아, 물론 기질이라고 이해하는 거랑은 별개로 속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어야겠다 싶다가도 열 번쯤 얘기하다 보면 결국엔 언성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좀 참을걸 반성하고 다시 기다려줘야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항상 갖고 있다.


이게 바로 부모들의 도 닦는 심정일까.




나도 걸음마부터 모든 게 좀 늦었다고 한다. 지금의 첫째 아이와 똑같이.

그리고 장모님께 여쭤보니 아내는 어렸을 적 딱히 느리진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지금 첫째 아이의 느림은 탓일 것이다. 나와 생긴 것만 똑같은 알았더니 별 걸 닮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런 나에게 부모님은 화를 낸 적이 없다. 

이제 와서 보니 기다려주고 지켜보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고, 쉬운 게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하셨나 존경심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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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오늘도 아이 덕분에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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