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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웨Manwe Feb 07. 2024

열나요

39.6

첫째 아이의 볼이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손으로 머리를 짚어보니 살짝 따뜻함이 느껴졌다.

서둘러 체온계를 꺼내 귓속에 꽂아 넣으니 나오는 숫자는 37.6도.


열이 시작되었다. 




미열뿐만 아니라 기침도 하며 목을 불편해했는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목이 부었단다.

요즘 독감이 유행하고 있는 시기이긴 하지만, 목이 부어있는 상태라 열이 나는 걸 수도 있으니 우선 약을 복용하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2~3일 지나도 계속 열이 나면 그때 독감검사를 하기로 하고 말이다.


낮에는 제 동생과 뛰어놀며 컨디션이 괜찮았다. 그 모습에 아내와 나는 단순한 열감기인가 보다며, 금세 괜찮아지겠다 싶었는데 문제는 해가 지면서부터였다.

저녁에 재우기 위해 눕히니 그때부터 열이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고, 해열제를 먹여도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또 1시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 열체크를 하고, 2시간에 한 번씩 해열제도 교차복용 시켰는 힘든 밤이 시작되었다.


해열제를 먹이고 30분 정도 지나 약효가 돌기 시작하면 38.3~5도 사이를 왔다 갔다 했고, 교차복용을 하기 위한 2시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열은 서서히 올라 39도를 넘어섰다.


우리 아이들만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열이 나면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새벽에 자꾸 잠을 깬다.

특히 첫째가 심하다.



A.M 05:00

알람소리에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머리맡 체온계를 잡기 위해 손을 휘적대다 보니 옆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났다. 

무슨 소리인지 머릿속으로 인지하기도 전에 눈이 번쩍 뜨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첫째 아이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게 아닌가.


이건 분명 열이 심해져서 눈이 뜨여있는 것이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내 내 심장소리는 옆에서 쳐다보는 아이에게까지 들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쿵쾅거렸다.


"아니 왜 일어나 있어? 괜찮아? 어디 아파?"


답을 바라고 물은 질문은 아니었다.

귀에 체온계를 꽂아 넣으니 39.5도. 하지만 교차복용할 수 있는 시간까지는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우선 이불부터 걷자. 너 너무 뜨거워."

"추워.. 아빠 나 추워."

"많이 춥지? 미안해. 근데 너무 뜨거워서 잠깐 이러고 있어야 될 것 같아. 잠깐만 이러고 있다가 괜찮아지면 아빠가 다시 이불 덮어줄게."


39.5도.. 39.4도.. 괜찮아지나?.. 39.5도.. 39.6도.. 

안 되겠다.


"몸이 아직도 많이 뜨거워. 아빠가 부채질해 줄게. 잠깐만."

"싫어. 추워. 아빠 싫어."

하지만 오한이 있는 건지, 너무 추워서 그런 건지 입술을 떨며 싫다고 찡찡거리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부채를 내려놓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창문이었다.

지금은 겨울이니 창문이라도 살짝 열어 냉기가 들어오게 해야겠다.


하지만 체온은 야속하게도 계속 올라가기만 했다.

39.6도.. 39.8도.. 39.9도..


혹시 열경련이 오는 건 아닐까. 아직 한 번도 열경련이 온 적은 없었는데 지난번 아내가 해준 열이 심하면 열경련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이라도 차에 태워 응급실에 가야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지금 여기에 가만히 있는 게 맞는 건가.

지금 이불도 안 덮고 창문도 열어둬서 추운데도 안 내려가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더 올라가면 어떻게 해야 하지? 우선 찬 물이라도 미리 떠놔서 여차하면 몸을 얼른 닦아줄까?

더 이상은 안되는데.



A.M 05:30

드디어 30분이 지나 해열제를 먹이고 약효가 돌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열제에도 열은 39도 초까지만 떨어지고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 곧 출근해야 되는데, 회사에 전화를 해야 할까.

병원이든 출근이든 씻고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체온을 재고, 거실로 나와 물 한 컵을 따라 마시다 보니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응? 괜찮아? 더 안 자도 돼?"

날 뒤 따라 나온 첫째 아이였다. 누워있기만 하고 잠이 들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선잠이 든 상태였는데 내가 일어나는 소리에 잠이 깬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은 말똥말똥했다.


"아빠, 나 책 읽을래."

"그래? 책 읽고 싶으면 꺼내서 읽어. 아빠는 진짜 진짜 금방 씻고 나올 테니까 책 읽으면서 기다리고 있어." 


회사에 전화해서 아예 휴가를 내야 할지, 오전 반차만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며 급하게 씻고 나왔다.


"아들! 아빠 다 씻고 나왔다. 체온 한 번만 더 재보자."


삑!... 띠!

38.0도


그렇게 내려가라고 할 때는 내려가지도 않더니 씻고 나오는 그 잠깐 새에 어떻게 이렇게 떨어질 수가 있나.

방금 전만 해도 가슴 졸이면서 응급실을 고민했던 게 무색해졌다.


아침 7시가 되어 둘째 아이와 아내가 일어나서 나왔다. 첫째 아이는 상태가 더 나아져 뛰어다닐 정도로 컨디션이 회복된 상태였다. 

불과 한두 시간 전만 해도 가슴 졸이게 해 놓고 뛰어다니는 모습이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래도 그냥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 지금은 미열 수준이긴 한데, 아까만 해도 고열이 안 떨어졌었어. 이따가 병원 한번 더 갔다 와봐야 될 것 같아."




뒤는 아내에게 맡기고 난 정상출근을 했다.

첫째 아이는 그날 병원에서는 독감진단을 받았다.


독감 약이 맛이 없다고 찡찡거리는 걸 억지로 먹이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다음날 둘째 아이와 아내가 독감 진단을 받아 온 가족이 고생한 조금은 덜 사소한 문제도 있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모두 잘 지나갔다.


아이들이 아픈 게 한두 번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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