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해 집에 돌아온 첫째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
그것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늦은 저녁 아이들이 잠든 조용한 시간이었다.
회식 때문에 저녁 10시가 좀 넘는 시간에 귀가해 슬며시 방안에 누워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런 내 인기척에 아내는 슬며시 눈을 떠 일어났다.
"다녀왔어?"
"잘 다녀왔어. 그냥 더 자지."
"아니 오늘 첫째 아들이 오늘 유치원에서 밥을 먹는데 수저가 없어서 손으로 먹었대."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이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무슨 얘기냐면.."
첫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꼬마선생님이라는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꼬마선생님은 친구들 자리마다 수저를 갖다가 놓아주는데, 우리 첫째 아이의 식사자리에는 안 갖다 줘서 어쩔 수 없이 손으로 먹었다고 얘기를 하더라는 것이었다.
"아니 그게 말이 돼?"
상식적으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는커녕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식사시간에는 보통 선생님도 교실에 같이 있지 않아? 아이들 먹는 거 보고, 편식하는 것도 지도하고 할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 대체 그게 말이 되나?"
"나도 모르겠어. 나도 믿기지는 않는데 너무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니까 진짜 그랬나 싶어서 혼란스러워."
"만약에 진짜로 손으로 먹었다고 하면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 내일 바로 확인해 봐야겠는데."
누워서 곤히 자고 있는 첫째 아이얼굴을 들여다보니 더 화가 났다.
다음날 아침
등원 준비를 위해 아이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잠에서 깬 첫째 아이를 품에 안고 잘 잤는지를 묻다가 지난밤에 들었던 얘기가 맞는지 다시 한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유치원 잘 다녀왔어?"
"네, 잘 다녀왔어요. 아빠는 어제 잘 다녀왔어요?"
"아빠는 잘 다녀왔지, 너도 잘 다녀왔다니 다행이네. 근데 어제 유치원에서 점심밥 먹을 때 무슨 일 있었어?"
"음.. 어제 △△이가 꼬마선생님이었는데, 친구들은 숟가락 나눠줬는데 나는 안 줘서 그냥 손으로 먹었어요."
"진짜야? 거짓말하면 아주 혼날 거야! 아빠 거짓말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알지?"
"아니에요. 진짜예요."
몇 번이나 물어보아도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내가 선생님께 물어봐도 되겠냐고 물어도 얘기해도 된다고 까지 얘기를 했다.
이건 진짜로 뭔가 얘기를 하고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에 출근 전 아내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여보. 등원시키면서 사실인지 꼭 물어보고. 확실하게 얘기를 하고 와야 될 것 같아."
"알겠어. 나도 꼭 확인해 봐야겠어."
출근해 일을 하다 보니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선생님하고 얘기를 했고, 따지듯이 물었으면 큰일 날 뻔했단다.
"내가 가서 물어봤는데, 전혀 아니래."
"그러면 숟가락으로 먹었대?"
"물어보니까 식판에 살짝 남은 밥풀이 있어서 싹싹 긁어 먹이기까지 했대."
"어? 그러면 거짓말인 거야? 걔는 왜 거짓말했대?"
"나도 모르겠어."
사실을 알게 되니 화가 났던 마음이 가라앉으며, 생각이 차분해졌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평소 깔끔을 엄청 떠는 첫째 아이다. 수저가 없다고 해도 절대 손으로 집어먹는다는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그리고 소심한 성격인 우리 아이는 수저가 없는 상황이 온다면 울음부터 터뜨렸을 것이다.
상세한 상황설명과 우리 아이가 맨손으로 먹었다는 말에 이성이 마비되었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고, 아이의 거짓말에 나와 아내는 속아 넘어가버렸다.
저녁 무렵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우리 얘기에 그래도 혹시나 싶어 CCTV까지 돌려 확인해 봤단다. 안 그래도 부끄러웠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 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진짜 생사람을 잡을뻔했다.
거짓말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뇌발달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앞으로 더 고도로 짜 맞춰진 거짓말을 하면 진실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런 얘기를 해야할 때마다 아이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당황스럽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사실관계부터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