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통과 함께 잠에서 깼다. 전날 일하면서 먹은 음식이 문제였다. 돈 몇 푼 아끼자고 유통기한 지난 닭꼬치를 저녁거리 삼았는데, 그게 하필 상했는지 밤사이 탈이 났다. 대타를 구하기도 어려워 무리하게 나갈 채비를 마쳤다. 창백히 질린 낯으로 편의점에 들어서자 점장이 그 연유를 물었다. "속이 살짝 더부룩하네요. 하하." 나는 근무에 지장 없다는 듯 눙치며 답했다. 당장이라도 집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차마 양해를 구하지 못했다. 마치 그런 부탁이 큰 폐를 끼치는 일인 것처럼, 혹은 큰 빚을 지는 일인 것처럼. 그리고 종일 계산대에 머리를 파묻었다. 손님을 받는 둥 마는 둥 끙끙 앓던 끝에 결국 변기로 달려가 몇 차례 구토를 쏟았다. 우웩. 찬물로 입을 헹구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교대 시간이 다가오자 뒤늦게 밀린 작업을 해치웠다. 매장 바닥을 쓸고, 쓰레기 봉투를 버리고, 커피 머신을 씻고. 이제 마지막으로 시재를 확인하려던 순간 왈칵 설움이 끓었다. 방금까지 죽을상을 하다 말고 왜 그리 부지런을 떨고 있는지. 갑자기 온 세상 덤터기를 혼자 뒤집어쓴 것마냥 억울해졌는데, 정작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몰라 자책할 뿐이었다. 아까 점장이 소화제 하나를 건네며 던진 농담만 귓가에 맴돌았다. “아프면 안 돼. 여기서 네 몸은 네 거 아니야.” 와중에 십 원짜리 동전을 마저 셈하겠다고 무심히도 손가락을 놀렸다. 못다 한 일은 고스란히 다음 알바생의 몫이 되니까. 그런 부담을 주기 싫었고, 사실 그보다는 공연히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일 년 넘게 이어졌다. 특별히 고된 건 아니었지만 아주 가끔 무너질 때가 있었다. 간혹 재고를 정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 그새 방문한 손님들이 부리나케 외쳤다. “계세요!” 그 짜증 섞인 부름에 움찔거리기를 여러 번, 언제부턴가 나는 출입문 종소리를 환청처럼 들었다. 짤랑이는 기척에 뛰쳐나오면 어쩐지 아무도 없었다. 홀로 분주하던 움직임을 비웃듯 브랜드 로고송만 가득 울려 퍼졌다. 하루는 소변을 보는데 누군가 화장실 앞까지 다가와 쿵쿵 두드리기도 했다. 황급히 바지춤을 추리는 바람에 찔끔 새어 나온 오줌이 곧잘 속옷을 적셨고, 나는 그걸 느끼면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나중에는 그렇게 마음 졸이느니 차라리 참고 견디기를 택했다.
몸은 나의 뜻대로 되지 않았고, 나 역시 몸의 뜻을 거스르는 데 익숙했다. 몸의 반응은 언제나 정직했다. 상한 걸 삼키면 배가 아팠고, 긴장이 심하면 착각이 늘었고, 볼일을 서두르면 오줌을 흘렸다. 그러니 잘못이 있었다면 나의 쪽에 있지 않았을까. 편의점에서 나는 얼굴 없는 점원에 불과했다. 어제 열심히 채운 상품이 오늘 몽땅 팔려 나가기를 반복하는 권태 속에서, 중요한 건 재빠르게 진열대를 보충하는 요령이지 결코 나의 몸이 아니었다. (선입선출 잊지 마!) 그러니까 그곳에서 나의 몸은 나의 것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억지로 떼어놓을 수 없는 나의 일부라 허탈한 기억만 겹겹이 쌓였다. 비교적 한산한 틈을 타 숨을 돌리고 있으면 부쩍 괴리감이 들었다.
물론 무뎌지기도 많이 무뎌졌었다. 그럼에도 넋을 놓고 바코드를 찍다 보면 온갖 상념에 잠겼다. 어느 저녁에는 술에 취한 외국인이 내가 입은 유니폼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또박또박 크게 읽었다. “이굴굴 씨? 힘내요!” 무슨 까닭인지 깔깔거리다 동행의 팔에 붙들려 사라졌는데, 그 혀 꼬인 발음이 못내 굴욕적이었다. 길거리 여느 간판처럼 의미 없이 불리는 나의 이름, 나의 존재. 그런데 가만 보면 그 못지않게 나를 함부로 대하던 게 다름 아닌 나 자신 아니었나. 분명 흔한 진상인 줄 알면서도, 나는 쉽게 진이 빠졌다. 과연 그 모든 경험을 어떻게 소화해야 했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틈틈이 메모장을 끄적일 때나마 무언가 조금 되찾은 듯했다.
그리고 단골 라이더 한 분이 떠오른다. 그는 보통 점심 무렵 헬멧도 벗지 않은 채 들렀다. 내가 구석에서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다 헐레벌떡 응대할라치면, 그는 꼭 고르고 말할 테니 천천히 들라고 제지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해야지, 그러다 속 버린다.” 그러는 당신은 매번 똑같은 짬뽕 라면을 사 가면서. 카드를 긁기도 전에 비닐 포장부터 뜯던 그는 결제가 완료되자마자 뜨거운 물을 붓고서 용기 뚜껑을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그러고는 뭐가 그리 급한지 곧장 배달 오토바이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탈탈탈탈. 나는 유리창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는 어느새 청색 신호를 받아 저 멀리 사라졌다. 한참 뒤 불어 터진 면발을 삼켰을 그를 그리며 생각했다. 노동이 노동을 알아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