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퇴직 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한때는 이름만 불려도 내가 할 일이 있었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 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젊었을 때는 일이 곧 삶이었는데, 이제는 그 일을 빼앗긴 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 고민은 단지 몇몇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마주할 현실이다.
나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그들이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직업상담사라는 길에서 처음 맡게 된 업무는 노인 일자리 상담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구직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담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취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노인 일자리 상담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부딪힌 것은 '이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받을 때 '어르신'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호칭이 그들의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사회에서, 심지어 가족에게서도 '어르신'으로 불리다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희미해지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적극적으로 "나는 어르신 아니야~"라며 항변하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상담을 할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드리기 시작했다. 그 이름에는 한 사람의 삶이 담겨 있고, 그들의 역사와 정체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하지만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당장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상담을 진행하며 나는 수많은 60대, 70대의 구직자들이 겪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평생을 몸으로 익힌 기술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쓸모없어지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막막함. 열심히 일하며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듯 밀려나는 서글픔. 어디를 가도 "나이가 많아서 어렵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돌아오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한편으로는 그들에게도 변화가 필요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일자리의 형태도 달라졌고, 젊은 시절 익숙했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었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야"라고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앉았다 일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고'라는 말이 나오는 신체 상태에서 오는 좌절과 체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체념 뒤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은 두려움.
나 역시 처음에는 단순히 취업을 돕는 상담사로서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점차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깊이 다가왔다. 내가 가진 젊음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고, 언젠가 나 또한 같은 고민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담을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적응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지금 30대, 40대라고 해도 결국 60대, 70대가 된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는 마치 나이 듦이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외면한다. 퇴직 후의 삶을 준비하기보다는 그때 가서야 허둥지둥 대책을 찾고, 결국 적응하지 못한 채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노인은 일을 하면 안 된다', '노인은 쉬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일 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자 한다. 상담실 안에만 머물던 이야기들을 사회로 꺼내고, 단순한 구직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바라보길 바란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곧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 글이 단순히 노인들의 취업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사회에 대한 기록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름이 다시금 불리는 순간들이 많아지길, 그들이 '어르신'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존중받는 날들이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