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지 않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
처음엔 나도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장을 정리하면서 몇 달을 하루도 쉬지 못했다.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30년을 바쳐 온 공장이었고, 나와 직원들의 밥줄이었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다. 폐업 신고를 하고 마지막으로 문을 닫을 때, 손에 묻은 기름때보다 더 씻기지 않는 묵직한 감정이 온몸을 감쌌다. 끝났다.
아내도 딸도 처음에는 내게 충분한 휴식을 권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좀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 봐요."
아내는 나를 다독였고, 딸도
"아빠,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좀 쉬어. 요즘엔 일자리도 많대."
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 말이 내게는 일종의 면죄부처럼 들렸다. 나도 쉬어도 된다고, 지금은 그냥 집에 있어도 된다고. 그런데 한 달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따뜻했던 아내의 시선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출근 준비를 하는 아내는 부엌에서 혼잣말처럼
"당신도 뭐라도 알아봐야 하는 거 아냐?"
라고 중얼거렸다. 처음엔 들은 척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반복되는 그 말에 나는 침묵으로 반응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도 아내가 퇴근할 때쯤이면 괜히 TV를 끄고 부엌을 서성였다. 마치 내가 그냥 빈둥거리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
딸도 변했다.
딸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단정한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딸을 보며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딸이 출근 준비를 하면서 내게 말했다.
"아빠, 언제까지 집에만 있을 거야?"
딸은 툭 던진 말이었겠지만, 순간적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딸이었다. 언제나 공장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일에 치여 사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을 텐데, 이제는 그런 모습이 없는 아버지를 보는 게 낯설었을 것이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고 텔레비전 볼륨을 낮췄다.
식탁 위에는 여전히 아내가 아침밥을 차려놓았고, 딸은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커피잔을 들었다 놨다 하며 시선을 피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싶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작아진 걸까.
지금껏 일을 멈춘 적이 없었다. 공장을 운영하면서, 직원들 월급을 걱정하며 한 달 한 달을 버텨왔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내가 할 일이 없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도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공허하기만 했다. 아내와 딸이 출근하고 나면 거실에 홀로 남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낮 드라마가 흘러나오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거실 한구석을 비추었다. 어쩌다 한낮에 집에 있을 일이 있었던가. 나는 한숨을 쉬며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밖으로 나가볼까,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막상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몰랐다. 특별히 갈 곳도 없고, 만나야 할 사람도 없었다. 공장을 운영할 때는 일이 많아 만나지도 못했던 동료들이 있었지만, 이제 와서 그들에게 연락하기도 어색했다. 나는 결국 다시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퇴근한 아내는 현관문을 열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 하루도 별일 없었어?"
그 말이 내게는 "또 집에만 있었어?"처럼 들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날 밤, 아내는 침대에 누워서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알고 있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뭘 해야 할지 몰랐다. 평생을 일해왔는데, 이제 와서 일을 찾으려니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공장 문을 닫고 나서는 그냥 ‘쉬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그러나 아내와 딸의 시선은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쉬어도 돼’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거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정말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