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과 부정
새벽 5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오랜 습관이었다. 30년 넘게 같은 시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도시락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그리고 공장으로 향했다. 이제는 갈 곳이 없는 아침인데도, 몸은 여전히 출근을 준비했다.
커튼 틈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침대 옆 협탁에는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퇴직 기념패가 놓여 있었다. 퇴직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출근하는 꿈을 꾼다.
거실로 나왔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어났어요?" 아내가 물었다.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한 후로 아내의 하루는 나보다 먼저 시작됐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밥상을 차리고 나면, 나는 조용히 밥을 먹는다. 예전엔 출근길에 대충 때우던 식사였는데, 이제는 온전히 내 몫의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오늘 뭐 해?" 아내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이 싫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걸 확인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산책이라도 다녀와, 집에만 있지 말고." 아내가 덧붙였다.
나는 아내가 나보다 빠르게 이 변화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못마땅했다. 퇴직 전부터 자격증을 준비했고, 퇴직 후에는 곧장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삶을 찾았지만, 나는 여전히 어제와 똑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식탁을 정리하는 아내를 뒤로하고 거실로 나와 TV를 켰다. 뉴스에서는 오늘의 경제 동향을 전하고 있었다. 얼마 전 거래처의 후배에게 다시 취업할 수 있을지 알아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연세가 많으셔서 어렵습니다."였다. 몇십 년을 일한 분야였는데도, 이제는 필요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퇴직 전에는 내게도 역할이 있었다. 현장 반장으로 일하며 후배들을 이끌었고, 현장에서 직접 손을 놀려 기계를 다뤘다. 부품을 교체하고, 설비를 점검하고, 문제를 해결했다. 사람들이 나를 찾았고, 나는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TV를 끄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거실은 조용했다. 두 자녀는 이미 독립해서 나갔고, 집에는 나와 아내 둘뿐이었다.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소리만 들렸다. 거실 한쪽 벽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때는 내 역할이 분명했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 그게 내 인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역할이 사라졌다.
나는 다시 앉았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처럼.
설거지를 마친 아내는 출근 준비를 했다. "나 다녀올게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관문이 닫히고, 집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집안에 혼자 남아 있자니, 불안이 밀려왔다. 손끝이 저릿했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나는 결국 밖으로 나왔다. 집 앞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장기를 두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저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 틈에서 서성이다가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이곳이 내 자리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길을 걸으며 스마트폰을 켰다. 일자리 구인 사이트를 열었다. 경비원, 마트 배송 보조, 주차 안내원. 목록을 내려보다가 화면을 껐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만 하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아직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자 정적이 다시 나를 감쌌다. 거실을 둘러보았다. 식탁 위에는 아내가 남겨둔 메모가 있었다.
'저녁 차려 먹어요.'
그 쪽지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먹어야지.’ 하지만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숟가락을 들 힘이 없었다. 그냥, 이대로 조용히 누워 있고 싶었다.
몸을 돌려 소파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마치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내 역할이 없어진 세상에서,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눈을 감았다. 그러면 시간이 조금 빨리 지나갈까 싶어서. 하지만 잠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