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일도, 나를 찾는 이도 없는 날

부정하면 안 되지만...

by 이서명


남편이 떠난 후, 집안은 조용했다. 익숙했던 공간이지만, 그 안에 남편이 없다는 사실이 여전히 낯설었다. 거실의 시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변함없었지만 내 안의 시간은 멈춘 듯했다. 텅 빈 식탁을 바라보며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같이 앉아 저녁을 먹던 그 자리에 이제는 아무도 없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나는 남편 덕분에 편안한 삶을 살았다. 경제적인 걱정 없이 살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했으며, 취미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할 수도 있었다. 학원을 운영한 10년 동안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일은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취미였지,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 남편이 떠난 순간, 나는 더 이상 그런 삶을 지속할 수 없었다.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아이들은 해외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고, 나는 혼자 남아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까? 취미로 하던 피아노를 다시 가르칠 수도 있었겠지만, 학원을 운영할 만한 자신이 없었다. 내가 직접 학생을 모집하고 학부모를 상대하며 다시 학원을 운영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비교적 빠르게 취업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으니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둘러 자격증을 따고 요양보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몸을 가누기 힘든 어르신을 부축하며 씻기고, 식사를 챙기고, 청소하고, 말벗이 되는 일이 반복됐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늘 감사함을 표현하는 어르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들에게 받은 서운함을 요양보호사에게 쏟아내는 경우도 있었다. 동료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다. 일은 고되고, 분위기는 날카로웠다. 육체적으로도 지쳤고, 정신적으로도 버거웠다. 내 몸이 점점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결국 2년 만에 그만두었다.


그 후로 나는 다시 빈손이 되었다.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찾아야 했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의 일자리는 없었고, 힘든 일은 도저히 할 자신이 없었다. 막일을 하기에는 몸이 따라주지 않았고, 사무직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름대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서 친구들은 가기도 힘들었던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도 이제와서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냈다.


그러던 중, 요양보호사로 일할 때 알던 원장님이 연락을 주셨다. 요양원을 새로 개원하는데, 사회복지사로 와달라는 제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요양보호사로 일 할 때 좋게 봐주셨나보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그것이 직업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렵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은 쉽지 않았다. 행정 업무와 상담, 시설 운영까지 챙겨야 할 일이 많았다. 처음에는 서류 하나를 작성하는 것도 버거웠다. 학원 다니며 배워서 어렵게 컴퓨터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여전히 익숙지 않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은 힘들었다. 실무 경험이 없던 나는 자주 실수를 했다. 하지만 점차 적응해 나갔고, 무언가에 몰두하면서 마음의 빈자리도 조금씩 채워졌다.


무엇보다, 일을 하면서 다시 사회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요양보호사로 일할 때와는 또 다른 의미였다. 나는 이제 돌봄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힘든 점도 많았지만, 내 역할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남편을 잃은 상실감은 남아 있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나름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출근길, 문득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혼자였지만, 더 이상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지는 않았다. 다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내 방식대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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