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이 계약은 이렇게 진행하면 될까요?"
"이 대표님, 이번 미팅은 몇 시로 잡을까요?"
"대표님, 결재 서류 올려두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십 번씩 내 이름이 불렸다. 이름이 불리는 건 곧 나의 역할이 있다는 뜻이었고, 나는 그 소리가 익숙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다.
얼마 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던 날, 회사 매각 계약서에도 함께 서명했다. 몇 년 동안 함께 사업을 키워온 친구들은 각자의 길을 갔고, 나는 가진 것을 정리한 채 모든 걸 내려놓았다. 집도, 돈도, 회사도. 그리고 가족도.
매각대금은 모두 아내와 아이들에게 줬다. 남은 건 몸과 이름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이름조차도 불리지 않는다.
퇴직 후에도 삶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회사가 없고, 가족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이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첫날, 평소보다 늦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 조그만 빌라의 작은 방 한 칸은 너무도 조용했다. 평소라면 아내가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겠지만, 이제는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장난치며 뛰어다니는 소리도 없었다.
혼자서 밥을 차려 먹고, 혼자서 커피를 마셨다. 전화기를 봤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거래처에서도, 직원들도, 심지어 친구들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가진 ‘관계’라는 것이 회사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음을. 그 두 가지가 사라지고 나니, 나라는 사람도 사라진 것 같았다.
마트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길, 직원이 나를 보며 말했다.
"어르신, 봉투 필요하세요?"
순간 멍해졌다. 내가 언제부터 ‘어르신’이 된 걸까. 내 나이는 아직 60대 초반이었다. 예전 같으면 노인이라 부를 나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사회는 나를 이미 ‘끝난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워졌다. 무엇보다도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가장 힘들었다.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회사도 멀쩡히 운영되고 있었고, 내가 지키려 했던 가족도 나 없이도 잘 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사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일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내게 맞는 일자리는 거의 없었다. 대표이사 경력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대기업은 나이를 보고 탈락시켰고, 중소기업들은 "사장이었던 분이 이런 일 하실 수 있겠어요?"라며 반문했다. 혹시나 싶어 동네 마트에 지원했지만,
"연세가 있으셔서 오래 서 있는 일이 힘드실 거예요"라는 말을 듣고 돌아섰다.
사무직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노동직은 몸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어디를 가도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도 답답해서 구직 상담을 받으러 찾아간 간 복지관의 일자리 상담사가 말했다.
"경비원 일은 어떠세요?"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씁쓸했다. 한때 회사를 운영하던 내가 이제 아파트에서 문을 열어주고, 출입 차량을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며칠 후 교육을 받고, 경비원으로 취업했다.
첫날부터 만만치 않았다. 24시간 맞교대 근무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고, 특히 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 업무는 예상하지 못한 고된 일이었다. 밤낮이 바뀌는 생활도 어려웠고, 더욱이 일부 주민들의 불친절한 태도는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찾아왔다.
비 오는 날, 비 맞고 가는 한 주민에게 우산을 챙겨주며 "조심히 들어가세요"라고 말하자, 무뚝뚝해 보이던 그가 다음 날 작은 박카스 한 병을 건넸다.
초등학생 한 명이 뛰어와 "이거 드세요!" 하며 봉지를 건넸다. 봉투 안에는 학교에서 만든 듯 어설픈 작은 포장 상자에 싼 작은 떡이 들어 있었다.
"이거 뭐니?" 하고 묻자, 아이는 대답했다.
"그냥… 저희를 위해 여기서 일하시잖아요!"
그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뭉클했다.
예전과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직원들에게 지시하며 역할을 수행했다면, 지금은 문을 열어주고, 출입을 관리하고, 분리수거를 정리하는 것으로 사람들과 연결되고 있었다.
물론 힘든 순간은 여전히 많다. 늦은 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순찰을 돌 때면, 따뜻한 사무실에서 일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다시 내 이름을 불리고 있다.
"경비 아저씨!"
"선생님!"
"어이, 경비원 양반!"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어주고, 누군가의 삶에 작은 도움이 되고 있다. 퇴직 후,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사라졌지만, 이제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 이름을 되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