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가장 먼저 변한 것은 '시간'이었다.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by 이서명


아침 7시, 여느 때처럼 눈이 떠졌다. 몇십 년 동안 반복했던 생활 탓이었다. 출근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몸은 기계처럼 반응했다. 시계를 보며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습관적으로 셔츠를 꺼내 입고 거울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데, 왜 이렇게 서두르고 있나 싶었다.

아내가 한마디 했다.

"당신 오늘 어디 가?"

"그냥… 밖에 좀 나갔다 올게."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내가 집에서 하루 종일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밖에 나가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문을 열고 나섰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익숙한 방향으로 향했다.


매일 지나던 신호등, 익숙한 가게들, 가끔 마주치던 행인들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횡단보도에 멈춰 섰다. 여전히 습관적으로 신호를 기다렸다. 그런데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가 어디지? 여긴 이제 나와 관계없는 곳인데, 나는 왜 여기에 서 있는 걸까?

회사 건물이 보였다. 문 앞을 오가는 사람들. 후배들이 출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몇몇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고, 몇몇은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누군가 나를 본 것만 같았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어…'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걸었다. 하지만 뒤를 한 번 더 돌아봤다. 저 안에서는 오늘도 어제처럼, 어제도 그제처럼 같은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상에서 나는 완전히 빠져나와 있었다.


되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그대로 집으로 가기엔 어쩐지 아쉬웠다. 어디라도 들러야 할 것 같았다. 근처 공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평소엔 신경 쓰지 않았던 곳이다. 그냥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벤치마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퇴직자들 모임인가?'

누군가는 스마트폰 음악을 크게 틀어서 들고 힘차게 걷고 있고, 누군가는 가만히 앉아서 먼 산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가벼운 운동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짐작건대, 이들 대부분은 나처럼 일을 그만둔 사람들이리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혼자 있고 싶었다.


길가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불었다. 출근하던 길이었지만, 그 길을 따라가도 내 자리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딱히 돌아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유시간이라는 게 이렇게 무거운 것이었나? 예전에는 그렇게 갖고 싶었던 것이, 막상 손에 쥐어지니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내가 묻는다.

"어디 다녀왔어?"

"그냥… 좀 걷다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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