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끝난 걸까?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 전화가 줄어든 게.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휴대폰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었다. 전날 밤에도 몇 번이고 화면을 들여다봤다. 예전엔 메일도, 메시지도 쏟아졌다.
"김 전무님, 내일 일정 조정 가능하실까요?"
"대표님, 골프 라운딩 멤버 확정됐습니다."
스케줄이 빼곡한 날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대기업에서 30년을 일했고, 말년엔 계열사 대표까지 맡았다. 그땐 내가 바빠서 사람들을 못 만나는 줄 알았다. 퇴직하면 오히려 친구들과 자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나오고 나니, 다들 바빠졌다.
처음엔 그저 시간이 필요한 거라 생각했다. 다들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하지만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연락은 뜸했다.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는데, 사람들은 서서히 멀어졌다.
한 번은 후배에게 연락했다.
"바쁘지? 언제 한 번 보자."
후배는 반갑게 맞아줬지만,
“다음에 자리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라고만 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오지 않았다.
골프 모임도 달라졌다. 예전엔 누구든 나를 끼워주려 했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연락해야 했다. 어렵사리 자리를 잡고 라운딩을 나갔더니, 후배들이 조심스레 물었다.
"김 전무님,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그 짧은 질문 속에 거리가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자연스럽게 회사 이야기, 시장 상황, 인사 개편 이야기로 넘어갔을 텐데, 그날은 그냥 날씨 얘기만 하다가 끝났다.
회사가 나를 잊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친구들도 하나둘 연락이 끊겼다. 내가 대표였을 때, 매달 골프를 함께 돌던 친구가 있었다. 퇴임 후에도 한동안 연락이 왔다. 하지만 몇 개월 전부터 답장이 늦어지더니, 이젠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웠다.
혼자 호텔 라운지에 앉아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커피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문득 예전 같았으면 이 시간이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였다. 점심 약속을 잡고, 저녁엔 회식을 했고, 주말이면 모임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혼자였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어색했다. "우리도 좀 자주 보자" 했던 말들이 얼마나 쉽게 흩어지는지도 이제는 안다. 한때는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일이 사라지고 나니, 관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회사 밖에서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회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업무와 이해관계가 없는 관계도 많다고 믿었는데, 그마저도 대부분 사라졌다. 일이 없으면 대화의 주제도 없고, 공유할 일상도 달라진다. 결국,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곳을 향한다.
이제 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혼자 익숙해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걸까?
어제 000 공원에서 행사 중에 만난 취업 상담사에라도 가볼까 싶다. 행사장에서 정신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내 얘기를 들어주고 새로운 일을 찾아보라고 권해주는 얼굴이 생각난다.
너무 늦기 전에. 찾았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도 오래 봐온 것처럼 반가웠다. 여기까지 오기도 참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