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졸업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다. 회사에 들어갈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지, 대학원에 진학할지에 대해 생각했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학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당시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직업 안정성 때문이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가 공직을 기피하거나 이탈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직을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직업 안정성일 것이다.
직업 안정성은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공직을 선택하는 주요 동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HR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나로서는 이번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연방 정부의 인사 체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계획인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으며, 경제나 이민 정책처럼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주제는 아닌 것 같다.
이 문제를 설명하기 전에, 트럼프가 대통령이었을 당시로 돌아가 보자. 그는 대통령 임기 말에 ‘Schedule F’라는 연방 정부 내 새로운 직무 분류를 대통령령으로 발의했다. 이 대통령령의 핵심은 연방 정부의 부처 장관이나 고위 리더들이 직업 공무원들을 재량에 따라 Schedule F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대통령령은 폐기되었지만, 트럼프와 일부 공화당 인사들은 재선 시 비슷한 인사 체계를 다시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다른 많은 나라들처럼 미국 연방 정부 공무원도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공무원 시험 등을 거쳐 선발된 직업 공무원,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정치적·정책적 성향이 맞는 사람을 임명하는 임명직 공무원이다. 임명직은 직업 공무원과 달리 신분 보장(법률에서 정한 조건을 제외하고, 공무원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신분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제도)이 없으며, 임명권자의 재량에 따라 손쉽게 해고될 수 있다.
Schedule F는 이러한 임명직과 마찬가지로 직업 공무원들에게 신분 보장을 제공하지 않으며, 상위직뿐만 아니라 중간 및 하위 관리 공무원에게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원래 자격 요건을 충족해 직업 공무원이 되었더라도 Schedule F로 이동하면 신분 보장이 사라지게 된다. 더 주목할 점은 Schedule F로 이동할 수 있는 기준이 “정책 결정, 정책 형성 또는 정책 옹호에 관련된 직위”처럼 모호하고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기준은 리더의 해석에 따라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Schedule F가 남용된다면, 예를 들어, 트럼프 행정부 시절 마스크 착용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연구 자료를 만든 공무원이 있다고 하자.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이 연구 자료와 공무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적으로 임명된 기관장이 해당 공무원을 Schedule F로 전환시키고, 적당한 이유를 들어 쉽게 해고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Schedule F 도입은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 신분이 보장되지 않거나 그 보장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공무원들은 대통령이나 권력 있는 정책 입안자들의 눈치를 보며 정치적 충성 경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공무원들이 자신의 가치와 전문성에 반하는 결정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정책과 행정의 비효율성 및 부패를 초래할 수 있다.
Schedule F를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Schedule F를 통해 공직 내 성과주의를 강화하고, 신분 보장을 악용하는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를 없애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이었을 당시 보여준 그와 공무원의 관계를 보면, 이 의도가 진정한 것인지 의심이 든다. 트럼프는 자신의 의견을 따르지 않거나 다른 입장을 밝히는 정부 부처나 공무원들에게 자주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고, 공무원들을 사기업의 직원들과 같이 손쉽게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공무원들이 자신의 소신과 전문성에 따라 정책 입안자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하거나, 필요할 때는 쓴소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조건이 바로 신분 보장이다.
대통령이나 정책 입안자들에게 항상 반대만 한다면 정책 집행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미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연방 정부 임명직의 숫자가 많고, 대부분 상위 직급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정책 방향을 집행하는 데는 충분한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공직 내 무사안일주의는 문제일 수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Schedule F처럼 과도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 급진적인 접근으로 보인다. 많은 미국의 정부 연구자들과 실무자들이 Schedule F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들은 이 제도가 과거 정치적 충성도를 기준으로 공직 임명이 이루어지던 엽관제로의 회귀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