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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숲 Dec 08. 2022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너의 이름처럼 살아가 주렴.

복이 넘쳐흐르는 강처럼 그렇게.

 열매가 ‘이로하:강이름로(潞), 복 받을 하(嘏)’가 되었어. 집에 돌아온 후, 외할머니가 잠깐 다녀 가시긴 했지만 대부분의 육아는 엄마 혼자서 해 나갔지. 외할머니는 4남매를 키웠지만 키울 당시에도 비위가 약해 우리의 똥기저귀도 치우기 힘들었다고 고백하셨지. 그런 할머니였기에 육아를 부탁하기도 힘들었고 엄마 역시 너의 모든 것을 엄마인 내가 해내야 ‘진짜 엄마’라는 열의에 한창 불타 있었단다.


 아빠는 조리원에서 열심히 찍은 신생아 목욕법을 몇 번이나 보고도 네가 너무 작아서 두렵다고 했어. 지금까지도 엄마가 아빠에게 핀잔 주는 몇 가지 중 하나가 바로 신생아 시절 목욕을 도와주지 않았다는(못했다는) 것이지. 너도 너무 많이 들어서 익히 알고 있지? 덧붙이자면, 로로가 7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손톱을 직접 깎아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단다.


 너를 낳던 엄마 나이 딱 30살. 네가 태어나던 그날 산부인과 전체 산모 중에서 엄마 나이가 제일 어렸다고 하더라고. 지금까지도 어느 엄마들 모임을 가던지 엄마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비슷한 또래조차 만나기 쉽지 않아. 그런 젊은 엄마의 패기였는지, 생각보다 육아는 재미있었어. 물론 원할 때, 원하는 만큼의 잠을 잘 수 없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어. 그럼에도 엄마가 육아 체질이었는지, 로로가 기질이 순한 편이라서 그랬는지, 그것도 아니면 엄마가 좋은 기억만 남겨두고 나머진 리셋시켜버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에 와서의 결과론적인 기억은 ‘행복한 시간’이었단다. 


 네가 생후 28일이 되던 날, 첫 쪽쪽이를 개시했어. 육아는 ‘템발’이라는 선배 육아맘들의 조언이 적중했지. 이유도 없이 울어 대던 로로는 쪽쪽이의 마법으로 순둥이가 되었어. (그래도 양심상 언제부터 쪽쪽이를 물려도 되는지 열심히 찾아본 결과였단다.) 다들 쪽쪽이는 시작은 좋지만 아이가 좀 더 커서는 쪽쪽이에 대한 집착 때문에 끊는 게 힘들다고 했어. 다행히 로로는 쪽쪽이 발이 오래가지 못하는 타입이었고 이내 스스로 거부했어. 딱 엄마가 원하는 만큼의 템발만 보여주고 수명을 다 한 너의 쪽쪽이. 그 외에도 로로에게 템발을 선사한 아이템들이 많았어. 수면제라고 불리는 포대기부터 엄마 뱃속의 양수 소리와 비슷한 물소리가 나는 해마 인형, 기적의 속싸개라고 불리는 스와들업 등등. 모두 다 로로가 빨리 그리고 잘 잠들 수 있는 수면 템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그리고 아이가 잠드는 순간의 자유가 얼마나 달콤했는지 추억하게 하곤 해.



 로로가 태어나고 SNS에 육아일기 계정을 만들었어. 육아를 하면서 짬짬이 무료함과 외로움을 달래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거지. 신생아 육아는 쪽잠과의 사투임과 동시에 어른 사람과의 단절이 불러오는 고독함의 시간이야. (물론 그 모든 고뇌를 상쇄시킬 만한 강력한 행복이 있지만) 긴긴 새벽 아이를 토닥이면서 핸드폰 하나로 그날의 로로를 기록하고 다음 날이면 그동안 쌓인 기록들을 보면서 나를 응원하고 너를 응원했지. 88일에 처음으로 고개를 스스로 번쩍 들었다, 108일에 스스로 뒤집기에 완벽 성공했다! 이런 기록들처럼 지금은 기억조차 아득한 로로 인생의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매일매일 빠짐없이 기록했고 지금에 와서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우리 가족의 역사가 되었단다.


 이름처럼 로로가 받은 복 중에는 ‘모유 복’이 있었는데 엄마는 보기보다(?) 상당한 양의 모유를 타고난 몸이어서 다행히 6개월까지 완모를 할 수 있었지. 후훗. 자연분만의 꿈은 못 이뤘지만 모유만큼은 잘 먹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는데 로로도 곧잘 먹어주었어. 누군가는 산고보다 모유수유를 할 때의 유방통이 더 죽을 것 같다더니 역시 순탄하지는 않았어. 빵이나 과자처럼 당이 많은 음식을 식사로 대신하면 모유가 끈적해져 유선이 잘 막히게 되는데 그걸 모르고 간단히 끼니를 빵으로 때운 날들이 많았어. 게다가 엄마의 모유 양에 비해 네가 먹는 양이 많지 않아 불어 있는 젖 때문에 늘 유방통을 달고 살아야 했던 날들이었단다. 마사지도 받고 양배추 잎을 얹어도 보고 궁극에는 주삿바늘로 막힌 유선을 셀프로 뚫기까지 하는 모성애가 생겼어. 로로가 여덟 살이 된 지금도 품에서 젖을 빨던 모습이 생생하고 그리워. 눈을 감고 새근이던 모습, 그때의 냄새, 꼬물거리던 손 그 모든 것이 가슴 벅차오르는 순간이었음을 그리고 마음속에 그 잔상이 더 흐려질까 봐 슬퍼질 때도 있단다.


 당시 엄마가 다니던 회사는 중소기업치고는 복지가 훌륭한 편이었지만 육아휴직에 대한 강제성이 없던 시기였어. 그나마 여러 상황들을 배려해 주셔서 그동안의 여직원 중에서는 제일 긴 6개월이라는 출산+육아휴직 기간을 받았어. 아이를 낳자마자 복직 후 육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는데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품에 안고도 나 아닌 다른 주 양육처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 아픈 현실이 우리의 현실이었지. 태어나기도 전에 대기를 걸어 두었던 어린이집 세 곳이 희망 1순위(그것마저 내 출퇴근 시간과 모든 것이 조화롭게 협의되어야 보낼 수 있지만)이고 어린이집이 안될 경우, 시댁이나 도우미를 생각해봐야 할 상황이었는데 후자의 선택으로 마음고생하는 맘 카페 글들을 적잖이 봐서 인지 어린이집에서 간택해주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날들이었어.


 역시 로로는 복이 넘치는 아이였어.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받은 또 하나의 복은 ‘어린이집 복’이야. 복직을 남겨두고 그중 평이 가장 좋은 가정어린이집에서 대기 1번이 되었다고 연락을 받았고 아슬아슬하게 복직 며칠을 남겨두고 로로는 만 6개월도 되지 않아 어린이집 원생이 되었지! 

 

2015.07.01 육아일기 중
딸아, 많은 사람들이 아직 너무 어린 너를 떼놓는다고 안타까워도 하고 그것도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독하다고도 하고 잘 적응할지 걱정도 많이 되지만 엄마 출근 날짜 맞춰서 어린이집 자리도 나고 그렇게 낯 가리던 너의 찡찡이도 줄어들고 6개월도 안됐는데 혼자 앉아 놀아주니 엄마는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믿을게. 엄마가 요즘 매일 밤 말하는 것처럼 어린이집에서 신나게 놀고 엄마랑 집에 오면 더 신나게 놀고 지금보다 더 많이 많이 안아 줄게. 엄마 딸은 언제나 씩씩하고 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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