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하진 않지만 친근하게 달콤한
나의 최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믹스커피가 자주 등장한다. 지안(아이유)이 초점 없는 눈으로 (회사에서 훔쳐 온)믹스커피 두 봉을 플라스틱 컵에 붓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끓인 물을 따른다. 허기를 채우려는 듯 벽에 기대어 한 모금씩 마시는 믹스커피는 고된 그녀의 하루의 끝에 초라한 식사이자 사소한 사치이다. 나는 그저 믹스 커피 두 봉이라는 동질감(한 봉이면 안 된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팬이 되기에 충분했다.
믹스커피 역사는 미국 남북전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지만 무엇보다 자부심이 가는 부분은 우리나라 동서식품에서 1976년 봉지 하나에 1회 분량의 커피, 프림, 설탕을 섞어 포장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1인분 포장스타일의 믹스커피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것이다. 무려 세계 최초다. 한국을 빛낸 발명품 10선 가운데 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믹스커피를 더 당당히 마셔줘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도 믹스커피는 어딘가 모르게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하기에 낯부끄러운 구석이 있다.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커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얼그레이나 보이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단정하고 자기 주관이 있어 보인다. 콜라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뭔가 쿨해 보이고 딸기우유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분이 노년의 할머니일지라도 소녀처럼 앳된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믹스커피라고 하면 자판기, 종이컵, 다방커피 이런 것들이 연상되면서 그야말로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라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아침 믹스커피 두 봉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의식이라면 의식일 수도 있겠다. 믹스커피는 꼭 빨간 봉지의 맥스*만 고집하는데 나와 우리 남편은 입맛이 저렴한지 둘 다 이 커피를 가장 선호한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노란색 이나영이(경상도는 왜 꼭 이름 세글자 뒤에 ‘이’를 더 붙이는 건지)가 그려진 커피 없냐며 늘 우리집에 올 때마다 볼멘소리를 하곤 하신다. 엄마는 아쉽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나의 입맛에는 노란색 커피믹스는 뭔가 너무 강하다. 커피맛, 프림맛, 설탕맛이 제각각 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맛이다. 그래서인지 마시고 나면 훨씬 더 입안이 텁텁하고 냄새가 난다. 맥스*은 그럴 듯한 말로는 마일드하다고 할 수 있고, 직관적으로는 그냥 좀 밍밍하다. 그런데 그게 또 매력이다.
모닝루틴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믹스커피는 캠핑 갈 때나 여행 갈 때 꼭 몇 봉씩 남편 몫까지 함께 챙겨 다닌다. 언젠가부터 나처럼 믹스커피를 즐겨 마시는 남편은 꼭 내가 타 놓은 커피를 몇 모금씩 빼앗아 먹다 핀잔을 듣기도 하고, 내색하지 않았는데 남편 커피까지 서비스할 때는 이래서 우리는 천생연분이라며 실없는 소리를 해댄다. (이렇게 적고 보니 우리 부부에게 꽤나 영향력 있는 연결고리이다) 그렇게 함께 커피를 마시고 나면 믹스커피만의 달달함 때문인지 체감상 둘 다 기분이 한껏 여유로워지는 건 사실이다.
결혼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믹스커피를 나는 언제부터 좋아했을까. 라고 기억을 더듬어 본 적이 있다. 기억을 채집하고 그 기억의 꼬리를 물고 쫓아가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나의 어린시절에 늘 존재했던 ‘다방’이다. 엄마, 아빠는 내가 대여섯살 때쯤 다방을 운영했다. 90년대 초 바닷가 마을은 특히 다방이 호황일 때라서 장사도 잘 됐다. 곧 문을 닫기는 했지만. 운영하던 다방의 부도로 집이 힘들어졌을 때 객지에서 엄마는 다방 주방 일을 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당시, 학교가 끝나고 오면 엄마가 일하던 다방 안 쪽방에서 숙제도 하고, 요구르트도 받아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우리가 10여 년 간 살았던 집도 아래층이 다방이었다. (이쯤이면 종국에는 내가 결국 다방을 차려야만 끝나는 스토리 같지만)
다방과 믹스커피의 상관관계를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방 그 특유의 냄새가 구석구석 남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고소한 프림향과 달큰한 설탕향 그리고 원두라고 부르기는 애매한 커피의 향들이 뒤섞여 코 끝에 남아 있고 달달했던 그 온기도 살갗에 남아 맴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것은 어른들의 것이었고, 그래서인지 더 달콤해 보였다. 어린시절의 향수인지, 어른에 대한 동경인지 나는 스무살 때 혼자 서울로 대학을 오고 난 이후부터 줄곧 믹스커피를 애정해 왔다. 그게 내가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나 그들을 추억하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들처럼 어른이 되었다고 증명하는 의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 읽은 책에서 술과 담배 그리고 믹스커피를 지양한다는 작가가 혐오에 가깝게 이것들을 매도했는데 결국에 자기는 하루에 1.5L의 콜라를 마시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SNS까지 혐오하는 분이었으니 인스타그램에 돌고 있는 콜라를 가열차게 끓인 후에 남은 설탕덩어리 영상을 본 적이 없으신 분임이 틀림없다. 그 영상 링크를 보내주고 싶을 만큼 억울한 기분이 스쳤다. 건강 이슈가 아니고서야 기호식품을 이렇게까지 폄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 작가를 콜라에 조예가 깊고 탄산의 농도까지 분류해서 마시는 쿨한 콜라남으로 기억할 테니 말이다.
올해부터 믹스커피를 좀 줄여볼 생각이다. (고 생각했지만 현재까지는 미라클모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절대 지원군이다) 줄임으로써 오는 신체적 안녕과 마심으로써 오는 정신적 평온 사이에서 늘 고민중이지만 건강하고 지혜로운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기에 적당한 타협점을 찾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동시에 이 글을 적고 나니 이제는 나의 애호차(茶) 믹스커피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근거없는 자신이 생긴다. 믹스커피를 마셔 온 세월들만큼 내 인생은 촌스럽지만 매력 있고, 근사하지는 않지만 친근하게 달콤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