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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Jan 17. 2022

웰컴 투 항암월드 56화

실화 소설

  오전 10시께, 미자가 TV를 트는 소리가 났다. 양과 금희도 하얀 커튼을 걷었다.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립대병원에 대한 국정 감사가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날의 뜨거운 감자는 대한대병원의 총파업 사태였다. 시작부터 하산낙 병원장에 대한 교문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뭇매가 쏟아졌다.


  한껏 눈을 치켜뜬 한 의원이 물었다.


  “하산낙 병원장은 눈도 없고 귀도 없습니까? 언론이고 노조고 다들 응답하라며 찾고 난린데, 애도 아니고 언제까지 한심하게 숨바꼭질만 하면 되겠어요? 내 말에도 산 낙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대답을 안 할 겁니까?”


  “안 그래도 국정 감사가 끝나는 대로 오늘 오후 1시께 노조 대표와 만나서 단체교섭 일정을 잡기로 했습니다.”


  잔뜩 인상을 쓴 다른 의원이 소리쳤다.


  “일정만 잡으면 뭐합니까. 해결을 해야지, 해결을! 문제를 이렇게 시끄럽게 키워 놓고, 나 참. 지금 대한대병원은 총체적 난국이에요! 압니까? 가짜 적자 논란에! 또….”


  “위원님, 송구하지만 가짜가 아니라 진짜로 저희 병원은 적잡니다. 제가 부임해 보니 올해 6월까지 거의 5백억이 마이너스 상태였습니다. 신뢰도 높은 외부 기관에서 임금 동결을 포함한 비상 경영이 필요하다는 자문도 받았습니다.”


  탁! 하던 말이 중간에 잘린 의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쓰고 있던 안경을 탁자로 내던졌다.


  “뭐요? 지금 내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토 다는 거요? 이 사람 이거, 혼쭐이 나야지 안 되겠구먼?”


  다른 의원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왜 병원과 상관도 없는 호텔을 사들이고 멀쩡한 병원을 확장하느라 헛돈을 쓰냐고요!”


  “위원님들, 송구하지만 제대로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오기 전에 병원이 사들인 호텔을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까지 노조의 요구대로 다시 팔아야 하는가, 이미 설계가 승인된 병원 확장 공사를 여기서 멈춰야 하는가.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럼 지금이라도 공사 설계를 바꾸던지 해서 축소를 해야지요, 축소를! 새로 넓히는 공간에는 주로 외부 음식점이나 카페를 받아서 돈벌이하려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새로 넓히는 공간의 주목적은 내과와 같은 주요 진료과의 이동입니다. 지금 본관에는 공간이 부족해서 다닥다닥 붙은 과마다 기다리는 환자들로 넘쳐납니다. 의자는 부족하고, 환자들이 시장통처럼 서서 지나다니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물론 음식점과 카페도 들어옵니다만, 그것도 환자와 의료진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현재 저희 병원에는 밥을 먹을 식당이 직원 식당과 스카이라운지, 2곳뿐입니다. 진료하기에 바쁜 의사나 간호사들은 식당에 줄서서 기다릴 시간도 없어서 매일 샌드위치로 때우고, 새벽부터 지방에서 차를 타고 올라온 아픈 환자도 검사를 하고 진료 시간까지 기다리면서 편하게 밥 먹을 곳이 하나 없습니다. 저희 병원 바깥에 있는 가장 가까운 식당도 10분은 걸어야 하지요. 암 환자들은 걸을 힘도 없어 병원 편의점에서 산 빵과 우유로 허기를 채우거나 대기실의 의자에 누워서 차라리 굶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이전 병원장과 이사회가 결정한 사안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흠흠. 그렇다고 국립 병원이, 호텔을 운영하고 건물을 키우느라 의료비를 절감하라면서 검사 실적을 5퍼센트나 올리라고 지시하고, 의료 재료를 저질로 바꾸라고 강요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런 지시를 내린 적, 없습니다.”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계속 거짓말할 거요?”


  “맹세코,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이 사람, 이거, 정말 안 되겠구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의원들이 한마디씩 떠들어 대며 회의장이 시끄러워졌다. 탕탕탕탕.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더니 말했다.


  “하산낙 병원장, 여기서 거짓말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신중하게 대답하세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택 진료비하고 의사 성과급제, 이건 어떡할 겁니까? 나랏돈 받는 국립 병원이 돈벌이 의료를 해서야 쓰겠어요?”


  “위원장님, 송구합니다만 선택 진료비는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발견하기 위해, 의사 성과급제는 능력 있는 의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합니다.”


  “초진 환자를 받으면 선택 진료비의 100퍼센트를 의사에게 주니 의사들이 초진 환자 예약을 우선 배치해서 재진 환자들의 치료가 뒤로 밀리고 진료 시간이 5분도 안 되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런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송구하지만 만약 위원장님께서 암이 의심된다는 말을 동네 병원에서 들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확한 확인과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서는 종합 병원에서의 진료와 검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예약이 밀려서 한 달, 두 달, 세 달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루하루 피가 마르지 않겠습니까? 중한 병도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 성과와 생존율이 높아집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진 환자에 대한 선택 진료비의 100퍼센트를 의사에게 주기로 한 겁니다. 병원으로서는 아무런 이익이 없는 제도지요. 초진 환자의 선택 진료비 100퍼센트를 의사에게 주는 건 정말로 환자들을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진심을 헤아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말은 양에게도 와닿았다. 대한대병원의 예약이 늦어졌으면, 어쩌면 나는 아마 이유도 모르고 죽었겠지.


  “흐음.”


  위원장이 공감하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내던졌던 안경을 다시 고쳐 쓴 의원이 흥분하며 따졌다.


  “그럼 성과급제는 뭐요? 국립 병원 의사들이 돈 벌려고 시작 시간만 한두 시간 정도 다르게 해서 3시간, 5시간 걸리는 수술을 3건이나 동시에 진행한다는 게 말이 돼? 돈 되는 수술하느라 응급 환자들의 수술이 밀리는 국립 병원이 어디 있어? 이 자료를 보고도 할 말이 있어? 당신이 그러고도 의사야?”


  “…위원님께서 지적하신 성과급제의 문제점은 저도 최근에 파악해서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립 병원 의사들이 근무 시간에만 일하면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개선? 폐지가 아니라 개선이라고?”


  “저보다 위원님들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연봉 수준이 낮고 일은 많은 국립 병원의 특성 상 실력 있는 의사들을 지키기란 참 어렵습니다. 경험이 많고 뛰어난 의사들에게 사명감만으로 머물라고 하기에는 다른 병원에서 제시하는 조건들이 비교도 안 되게 좋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재들은 자꾸 떠나고, 남은 인력은 출퇴근 시간에 맞춰 틀에 갇혀 움직이느라 열정적인 진료 태도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결국은 환자에게 손해로 돌아가지요. 저희 대한대병원은 단순히 값싼 공공 의료가 아니라 고품질의 공공 의료를 신속하게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택 진료비와 의사 성과급제는 실제로 의료진들을 더 열심히 움직이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의원들의 고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변명은 집어치워요! 국립 병원 중에 대한대병원의 병원 내 감염률이 제일 높아요! 그게 하산낙 병원장이 얘기하는 고품질 공공 의료의 수준이오?”


  “위원님, 송구하지만 그건 그만큼 저희 병원에 중환자가 많이 와서 그렇습니다.”


  “그럼 계속 높겠단 뜻이오? 중환자가 몰려도 감염률을 낮춰야, 그게 진짜로 실력 있는 국립 병원 아니오?”


  “송구합니다, 위원님. 저는 다만, 병원 내 감염 방지를 위한 정부의 예산 지원은 전혀 없는 실정에서, 정부에서 의료 보험 수가를 원가에도 못 미치도록 낮게 규제하는 상황이라 대한대병원의 자체적인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눈이 아팠다. 끝없는 말다툼은 보는 사람도 지치게 했다. 양은 눈을 껌벅이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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