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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Feb 20. 2022

웰컴 투 항암월드 64화

실화 소설

  다음날 아침, 새로운 주치의가 나타났다.


  방글방글 웃는 30대 남자였다. 원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제가 주치의를 맡게 됐습니다. 하양 님은 이미 골수 검사까지 끝나서 제가 특별히 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저는 골수 검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별다른 이상 없이 지내실 수 있도록 잘 살펴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옆자리에선 노부부가 항암 치료를 받기로 한 결정을 자신들의 주치의에게 말하고 있었다. 주치의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바깥노인만 데리고 나갔다.


  금희도 늦은 아침을 먹으러 나간 사이, 커튼이 스르륵 열리더니 안노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가씨, 자?”


  “아니요.”


  “항암 치료, 힘들지?”


  “…네. 괜찮으시겠어요?”


  “글쎄… 자식들 때문에. 죽은 사람의 소원도 들어 준다잖어? 내가 치료도 안 받고 가면 내 새끼들의 가슴에 한이 될까 봐… 그래서.”


  “…네.”


  “돌아보면 그렇게 착하게 살지도 못했어. 그동안 지은 죄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게… 정말 잘못 살았구나 싶기도 하고.”


  “…저도 그래요.”


  “아유, 내가 왜 쓸데없이 이런 소리를 하누. 쉬어요.”


  안노인은 눈가를 훔치며 커튼을 닫았다.


  커튼콜.


  양은 환자들끼리 커튼을 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커튼콜 같았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퇴장한 사람들이 다시 나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는 시간.


  커튼 너머, 서로의 존재가 그들에겐 자신을 부르는 관객이자 무언의 박수였다.


  사람들은 보호자가 옆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속마음을 드러냈다. 비로소 자기답다고 해야 할까? 아프게 된 원인에 대해서도, 지금의 자신에 대해서도,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도 보호자가 말하는 이야기와 스스로 삶을 돌아본 사람이 말하는 이야기는 닮았으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6인실에선 누구 하나가 커튼을 걷으면 잇따라 여기저기서 커튼이 젖혀지면서 각자가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 마치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분위기도 났지만, 2인실에선 단둘이 대화하는 느낌이라 단출했다. 


  안노인의 나이, 81세. 아마도 양이 닿을 수 없을 나이였다. 안 서러운 죽음이 어디 있겠냐만, 양은 이제 알았다. 훨씬 어린 나이에 죽어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살 만큼 산 나이였다. 


  자신이 저 할머니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양은 잠시 고민했다.     


  이날 양의 과립구는 백혈구가 1,980에 과립구는 1,010으로 둘 다 어제에 비해 500 가까이 떨어졌다. 혈색소는 8.3에 혈소판은 1만 7천. 오늘도 누군가의 노란 피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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