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어학원을 가다

미워해도 괜찮아

by 반딧불


나의 못 말리는 스페인 사랑은 대학교 시절 친구가 선물한 손미나 아나운서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읽고서부터다. 그때부터 스페인은 나에게 꿈이자 환상의 나라였고 언젠간 가야만 하는 곳(실제로 누가 부르는 것만 같았다)이라고 여겼기에 대학 졸업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유럽 배낭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렇게 직장에 들어가 월급의 90%를 저축해 단기간에 여행경비를 전부 마련했는데, 웬걸? 가족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 절대 혼자 보낼 수 없다! 반대하여 결국 한국에 주저앉아버렸고 그 돈을 쉬면서 야금야금 깨 씀과 동시에 첫 유럽 여행의 꿈에서도 깨어나야 했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체력이 없었던 것도 아닌.. 고작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주저앉아버렸다니.. 나란 인간이 그땐 참으로 여리고 연약했구나 싶다. 어쨌든 덕분에 스페인에 한이 맺혔던 나는 결국 30대에 사춘기 비슷한 게 찾아와서 돌연 퇴사를 하고 미친 척 짐을 싸서 홀로 스페인으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담을 글로 정리해 몇 년 전 자가 출판으로 ‘이토록 완벽한 순간 With Spain’이라는 (거의 소장용이긴 하지만) 여행 에세이집도 발간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스페인이 내 고향 같고 한국은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착각과 망상에 빠져 스페인어 공부에 박차를 가했지만 역시 독한 구석이 없어서인지 어려운 구간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중도포기.. 그러니 실력은 늘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지금도 내 깊은 한(恨)이요,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을 갑갑하게 만드는 고구마 같은 존재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도 어지간히 고정적이고 어디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 프로젝트를 이어갈까 고민하다가 번뜩 스페인-어학원을 다녀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가만.. 어학원에 등록해서 스페인어도 배우고 다양한 사람들도 사귀면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일타쌍피, 일석이조, 일거양득이 아닌가. 언젠가 독일어를 마스터한 지인이 원어민 선생님이 가르치는 독일 문화원 수업이 꽤 괜찮다 했던 기억을 되감기하며 서치 능력을 한껏 발휘해 어렵게 스페인 문화원을 발견! 냅다 등록을 해버렸다.



스페인 문화원 수업은 국내의 한 명문대학교 내에서 실시하는 강의였다. 첫 수업에 들어가니 수강생은 나를 포함한 단 8명(모두 여성), 선생님은 마드리드 출신의 열정 넘치는 남자 선생님이었다. 첫날에는 가볍게 알파벳 정도만 배우겠지 싶어 편안한 마음으로 출석을 했는데 동사까지 진도를 쭉 빼길래 솔찬히 당황했다. 동사까지가 내 밑천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기초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나이와 언어 레벨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그날 와서 알파벳을 처음 접해본 사람도 있었고 이미 짧은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모두 집중력 있게 진도를 곧잘 따라가기에 혼자 뒤처지게 될까 봐 얼마나 위기의식을 느꼈던지..



첫 수업을 정신없이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하면서 반 학생들 얼굴을 차례차례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이들과 친해질 수 있을지를 궁리했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이리저리 머리를 쥐어짰는데 두둥.. 다음 주.. 그다음 주.. 또 그다음 주가 되어도..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지만 충격적이게도 네 번째 수업을 들을 때까지 단 한 명의 학생과도 제대로 통성명을 하지 못했다.



수업이 빡셌거나 소심한 성격 탓에 먼저 다가가질 못해 이러한 결과가 나왔더라면 이해라도 할 수 있었으련만. 인사를 하고 말을 걸고 일부러 같이 음료수를 사러 가도 도무지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나와의 관계에만 무관심한 게 아니라 반 친구들끼리 서로 우연히 마주쳐도 인사나 대화 자체를 나누지 않았다. 언뜻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으려는 보이지 않는 의지 같은 것마저 보일 정도였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진실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어쩌면 모두 극 대문자 IIII라서 마음을 여는 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고, 관계보다는 공부에 좀 더 집중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군계일학으로 스페인어를 반에서 가장 뛰어나게 잘해서 그들의 마음을 사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섯 번째 수업을 앞두고 몸에 큰 탈이 나서 도저히 수업을 이어갈 수가 없어 이것도 운명이려니 받아들이고 학원을 관두게 됐다.



학원을 그만둔 다음 날 뜻밖에도 원어민 선생님께서 연락이 오셨는데, 건강 잘 챙기란 안부 인사와 함께 언제든지 다시 공부하러 오라는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 순간 나는 내 이마를 탁 치며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왜 선생님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선생님과 친해졌더라면 이 프로젝트에 새로운 방점을 찍을 수도 있었고 스페인어도 일취월장으로 늘었을 텐데..! 뒤늦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 뒤로 나는 한참 스페인 문화원에서 만난 이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이 백 명 이 백명도 아니고 단 일곱 명인데 어째서 서로 통성명조차 하지 못했을까.. 내가 너무 불손한 마음으로 접근을 하려 한 걸까.. 인연을 맺는다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나.. 한동안 이렇듯 깊은 고뇌에 감싸여있다가 이내 결론을 내리길, 별 수 없지..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을 순 없지.. 새로운 친구가 필요 없거나 사귀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지.. 그들의 생각과 태도를 존중하자고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또 이제 어디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볼까?라는 초심의 고민으로 되돌아갔다.



보통 우리는 학교나 모임에 나가면 당연히 새로운 친구나 인연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친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와는 반대로 나는 어딜 가나 무리에서 혼자 거나 외톨이가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내가 어학원에서 맞닥뜨린 일은 이것이 얼마나 큰 편견이고 생각의 고립이며 판단의 착오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가끔은 모인 사람들의 성향과 분위기 그리고 모임의 특수성에 따라 혼자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재밌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에겐 독서모임과 어학원의 생태계가 이렇듯 서로 극명하게 달랐다. 내가 하나의 집단에서 겪은 일들이 또 다른 집단에서도 당연히 연속적으로 일어날 거란 관점이 그때서야 비로소 무너졌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내가 느끼는 인간에 대한 환멸감 역시, 사람들은 언제나 마음에 딴 주머니를 차고 있고 앞뒤가 다르며 가식적이고 이기적이다. '언제나 늘 그렇듯이'라고 하는 전제가 항상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걸 생각의 일반화라 해야 하나.. 덕분에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듯이 '늘 그렇듯'이라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걸 조금은 인정하게 됐다.



최근 앨릭스 코브라는 뇌과학자가 쓴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엔 '불행히도 사람의 뇌는 부정적인 일에 더 강렬하게 반응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는 행복하게 일상을 살아가려면 '부정성에 대한 긍정성의 비율이 그만큼 높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작가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상당량의 연구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비율은 3대 1이다. 친구에게 부정적인 평을 하나 들었다면 긍정적인 평을 세 가지는 들어야 하고, 일을 하다가 한 가지 손실을 보았다면 세 번은 이득을 보아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똑같지는 않다. 3대 1의 비율은 평균치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2대 1로 충분하지만, 상실과 실망을 더 절절히 느끼는 사람은 긍정성의 비율이 더 높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자기에게 일어난 긍정적인 일을 뇌가 깡그리 무시해 버린다면(우울증일 때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 비율은 더욱 높아야 한다.]라고 썼다.

그러니 나쁜 일을 연속해서 경험하게 되면 인생 전체에 늘 나쁜 일만 일어난다고 믿는 일반화가 뇌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이다. 이 뇌적 일반화를 극복하고자 인간 환멸 극복 프로젝트를 계획한 내 저항 역시 매우 정당하고 타당하며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보겠다며 그럴수록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겠다는 이 허무맹랑한 방법이 좀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억지가 아닌 과학적인 방법임이 증명된 셈이다.



언제 한 번은 모임의 뒤풀이 자리에서 한 남자분이 이제 더는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게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던 사람들이 일제히 얼굴을 돌려 이쪽을 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분의 말에 격하게 공감을 표했다. 사람을 만날수록 실망과 상처가 크다 보니 이제는 사람을 만나기도 두렵고 그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기한 건 이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모두 한 입으로 내린 결론 역시 그럴수록 사람을 더 많이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외로 인간은 매우 통찰력있고 뛰어난 영감을 가진 동물인 것 같다. 어쩌면 이 영감을 증명하기 위해 과학이 발전한 것일지도..



요즘 세상에서 가장 자주 들려오는 말이 바로 '고립'이라는 단어다. 청년 100명 중 5명이 고립이나 은둔을 자처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청년들을 생각하면 솔직히 나는 가슴이 찢어지듯 슬프고 아프다. 왜냐하면 나 역시 늘 고립의 문 앞을 서성이던 한 사람이었고 고립될 용기조차 없어서 죽음을 택하려고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결심하고 세상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느낀 점은 이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1평짜리 침대에 내 인생과 청춘을 가뒀더라면 너무 억울하고 분했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럴 바엔 아프고 고통스럽더라도 여기저기 부딪히고 깨지는 게 오히려 더 가성비 넘치는 삶이 아닌가 하고. 여기엔 작게나마 자기 성장과 성취감이라는 가능성이 동반되기에..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병에 걸리기도 하고.. 인간 관계에 괴로울 때가 있다. 하지만 세상이 나를 어떻게 억까하고 평가하더라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부모님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고 존재라는 사실이다.

내가 요즘 즐겨 쓰는 말이 "사람 일 모른다."이다. 불혹을 목전에 두니 이 말의 진짜 힘을 새삼 실감한다. 이 나이에 갑자기 실직할 줄 몰랐고 결혼을 못할 줄도 몰랐으며 내 명의로 된 집이 없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발상을 뒤집어보면 앞으로 내 앞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 기대와 희망을 안고 오늘도 사부작사부작 열심히 뭔가를 하며 즐겁게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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