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패륜아의 표본 박한상
1994년 5월 19일 새벽 , 강남구 삼성동의 한 집에 불이나 부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부부는 고려한약유통의 사장인 박순태와 그의 부인 조순희였다. 게다가 박씨 부부의 조카인 12살 이군마저 그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화장실에 갔다가 불이 난 것을 보고 도망친 아들 박한상만이 살아남았다. 경찰은 단순 화재 사고로 생각했지만 형식적으로 부검을 의뢰했고 여기서 뜻밖의 결과가 나온다. 화재로 사망한 부부의 시신에서 흉기로 40여 차례나 난자당한 상처가 발견된 것이다.
범행이 발각되기 전 범행 현장에서 태연한 모습이 찍힌 사진(출처: 문화일보)
경찰은 현장의 정황상 면식범의 소행으로 파악했고, 마침 한 간호사가 '박한상의 머리에 피가 묻어있었다'는 진술을 하여 그를 조사하던 중 다리에 잇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를 추궁한 끝의 박한상의 자백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한다.
그는 왜 이처럼 끔찍한 존속살해를 저지르게 된 것일까?
1971년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박한상은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는 취미가 없었다. 하지만 자동차에는 관심이 많아 자동차 튜닝쪽의 진로를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동시장에서 한약방을 기업으로 일구어낸 그의 아버지 박순태가 보기엔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압구정 현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겨우 원광대학교 토목과에 입학하긴 했으나 대학 생활에는 적응하지 못한채 유흥업소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1991년 학교를 휴학하고 방위병으로 근무한 박한상은 1993년 제대 후에도 학교에 복학을 하지 않고, 부모를 졸라 미국 유학을 가게 된다.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어학원에 입학한 그는 그곳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무단 결석을 일삼다가 도박에 빠져들게 된다.
결국 자신이 가진 돈 2천만 원을 비롯해 아버지에게 얻은 차량 구입비 까지 도박으로 날린 그는 몰래 귀국(1994년 4월 20일)하여 신용카드를 만든 뒤 사채업자에게 카드깡으로 200만원을 받아 그 돈으로 나이트클럽을 돌아다니다 친척에게 발각이 된다. 이사실을 알게된 아버지는 박한상을 당장 불러들였고, "호적을 파가라!", "너 같은 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놈이다" 등의 말로 화를 내자 박한상은 여기에 격분하여 범죄를 결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100억 대에 이르는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범죄라고 보는 것이 맞다.
박한상 - 위키백과
마침내 사건 당일, 박한상은 피가 옷에 묻을 것을 우려하여 옷을 모두 벗은 뒤 나체 상태로 안방에 침입하여 아버지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고, 이 과정에서 격렬하게 반항하던 그의 아버지는 박한상의 종아리를 물기까지 했다. 박한상은 부엌으로 도망치는 어머니마저 쫓아가 살해한 뒤 집에 불을 질러 혹시 모를 증거를 인멸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 집에서 함께 살고 있던 이모 부부는 마침 수안보 여행을 간 상태였고, 혼자 잠들어 있던 사촌동생 이군마저 사망하게 된다. 즉, 박한상은 하룻밤 사이에 친족 3명을 살해한 것이다.
박한상은 학창시절부터 이른바 야타족으로 여자들과 원나잇을 즐기거나 술을 마시고 사고를 일으키는 등 문제적인 인물이었다. 고등학생 때에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싸움질과 폭력을 행사하던 그를 아버지는 더욱 강압적으로 통제하려 했지만 더 엇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에 아들을 위해 미국 유학에 차량 구입비 18000 달러를 보내주기까지 했던 그의 아버지가 그를 진심으로 미워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장남과 막내가 한의대생으로 아버지의 뒤를 착실히 잇는 것에 비해 자꾸만 엇나가는 차남에게 그만큼 더 속이 상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찌되었든 박한상은 인간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되는 범죄를 실행했으며, 그 과정이 치밀하게 계획적이기까지 했다. 만약 간호사가 상처는 없는데 머리에 피가 묻어있던 박한상을 의심하여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면 박한상은 검거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외갓쪽에서는 박한상 가족의 불화를 어느 정도 인지하여 박한상을 의심하던 상태였으나 친가쪽에서는 경찰이 박한상을 조사하려고 하자 거세게 항의할 정도로 박한상에 대하여 몰랐던 듯하다.
경찰 조사 결과 모든 범죄 사실이 발각된 박한상은 1심과 2심은 물론 1995년 8월에 이루어진 대법원 판결에서도 살인을 선고받고 현재도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사형 선고를 받은 박한상 - MBC 뉴스
박한상 사건의 이전에도 존속살해 범죄는 존재했다. 그러나 박한상의 범죄가 이슈가 되었던 이유는 부모에 대한 원한이 아닌 단순하게 금전적 이득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존속살해는 어린 시절의 학대나 극심한 가난으로 인한 갈등 등이 폭발하여 이루어진 우발적인 범죄형태였다. 그러나 박한상의 경우엔 오로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범죄를 설계하였으며, 실행하는 과정 역시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가정의 달의 어느 날, 한 가정에서는 이토록 끔찍한 일이 일어났고, 박한상은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인정하고도 다른 인물을 공범으로 지목하며 사건 수사를 방해하기까지 하였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존엄성의 바탕에는 나를 둘러싼 가족이 있다. 나가 홀로 설 수 없기에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나를 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그 울타리보다 키가 컸다고 해서 울타리를 벗어날 수는 있어도, 결코 울타리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나와 울타리는 상호간에 필수적인 보완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