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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Aug 31. 2022

우리 역사 속의 범죄자들.13.강호순

13. 또다른 쾌락추구형 살인마, 강호순

13. 또다른 쾌락추구형 살인마, 강호순


강호순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살인에 눈뜬 성도착증 환자라고 할 수 있다.


1969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강호순은 그곳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나왔으며, 다른 연쇄살인마(정남규, 유영철, 온보현 등)들과는 달리 어린 시절 가정학대나 불우한 가정환경을 겪지 않았다. 부잣집은 아니지만 이른바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란 강호순을 보면 사이코패스의 탄생에 가정환경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란 점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강호순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강호순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살의 어린 나이에 첫 결혼(1992년)을 하게 된다. 형과 함께 목장을 운영하며 아들도 2명을 낳았으나 2년의 별거 이후 1998년 이혼을 한다. 1999년 다시 두 번째 부인과 결혼해서는 아들을 1명 낳았고 순대집을 운영했는데 의문의 화재로 불이 났고, 두 번째 부인과도 4년 만에 이혼을 한다. 세 번째 부인은 열 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여성이었는데 만나서 동거를 하고 결혼한 뒤 이혼하기까지 1년 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네 번째 부인과는 2002년에 만나 동거를 하다가 2005년 혼인 신고를 하는 데 일주일 만에 집에 불이나며 부인과 장모가 숨져 사별을 하게 된다. 검찰은 이 네 번째 부인과 장모의 죽음도 강호순의 짓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강호순은 이 사실을 끝까지 부인하였다. 


문제는 이 결혼과 이혼, 사별 등을 거치는 동안에도 강호순은 끊임없이 새로운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는 점이다. 검거 당시 확인된 애인만 3명에 이른다고 하니 그의 엽색 행각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어찌되었든 부인과 장모의 죽음으로 거액의 보험금을 타낸 강호순은 본격적인 엽색 살인 행각을 시작한다.



2006년 9월 7일, 강원도 정선에서 출근하던 군청직원 윤모씨를 차량으로 유인해 강간한 뒤 목을 졸라 살해하고 영월의 절벽 아래로 유기


2006년 12월 14일, 경기 군포시 산본동에서 노래방 도우미 배모씨를 차량으로 유인해 넥타이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국도변에 암매장


2006년 12월 24일, 수원시 장안구 노래방에서 박모씨를 차량으로 유인해 스타킹으로 목을 졸라 살해 후 안산시 야산에 암매장


2007년 1월 3일, 화성시 신남동 버스정류장에서 박모씨를 차량으로 유인하여 강간한 뒤 스타킹으로 목졸라 살해한 뒤 화성시 야산에 암매장


2007년 1월 6일, 안양시 관양동 노래방에서 김모씨를 유인해 여관에서 성관계를 맺은 뒤 차량으로 데려가 넥타이로 목졸라 살해하고 화성시 공터에 암매장


2007년 1월 7일, 수원시 금곡동 버스정류장에서 여대생 연모씨를 차량으로 유인하여 강간한 뒤 타이즈로 목졸라 살해 후 수원시 황구지천변에 암매장


2008년 11월 9일, 수원시 당수동 버스정류장에서 김모씨를 차량으로 유인해 스타킹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고 안산시 야산에 암매장


2008년 12월 19일, 군포시 대야동 보건소 앞에서 여대생 A씨를 차량으로 유인해 스타킹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고 화성시 공터에 암매장



그러나 강호순의 이와 같은 범죄 행각은 알려지다시피 이 여대생 A씨의 카드로 돈을 빼기 위해 변장을 하고 은행에 들리면서 덜미가 잡히게 된다. 사건을 뒤쫓던 형사들이 자신에게 포위망을 좁혀옴을 느낀 강호순은 자신이 범행도구로 사용했던 에쿠스와 무쏘를 불에 태워 증거를 인멸하려 했는데, 이 행동이 오히려 경찰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결국, 경찰에 긴급 체포된 강호순은 A씨를 자신이 살해했음을 자백하지만 다른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한다. 그러다가 강호순 소유의 축사 트럭에서 강호순의 점퍼를 찾아내고 여기에 묻어있던 혈흔을 대조한 결과 7번째 피해자 김씨의 것으로 확인하여 강호순을 압박한 경찰은 마침내 7건의 살해를 추가적으로 자백받는 데에 성공한다.


이후 네 번째 부인과 장모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재수사한 경찰은 이것 역시 추가적으로 기소한다. 그러나 강호순의 곡괭이에서 추가적으로 신원미상의 DNA가 발견되었고, 이것 역시 강호순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의 것으로 추측되었으나 실종자 데이터 베이스의 DNA 중 일치하는 것이 없어서 기소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실종자의 DNA가 데이터 베이스화 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추가적인 희생자가 더 있음이 확실하다.


모든 범죄자들이 그러하듯 강호순 역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살인자다. 앞에서도 말했든 그의 어린 시절 가정환경은 특별히 불우하지도 않았으며, 트라우마를 겪을만한 아픔도 없었다. 군대도 태권도 특채로 하사관으로 복무했고, 공부도 왠만큼 하는 편이었다. 외모도 서글서글한 인상인데다 언변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아 여성들을 만나는 데 문제가 없어 수많은 여성들을 홀리고 다녔으니 여성에 대한 복수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사회에 대한 삐뚤어진 복수심이나 자신을 무시한 여성에 대한 엉뚱한 복수심처럼 트리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에 보도되었던 사진

                    (개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찍었고, 사진을 찍고나서 잡아 먹었다고 한다.)


다만 그는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자체를 즐겼던 것이다. 노래방 도우미들에게 호감을 사서 그들과 성행위를 즐기고도 그는 죽였다. 추운 겨울 길에서 떨고 있는 여성들을 호감가는 외모와 언변, 그리고 차안의 가족 사진, 개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경계심을 허물어 유인한뒤 강간하고 죽였다. 그는 그냥 그 자체를 즐겼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본인 입으로는 여자들이 자기 차에 스스로 탔으니 여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지만 그를 직접 면담했던 권일용 교수는 이렇게 얘기했다.



"강호순의 말 중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사건의 내용 뿐이다. 그는 거짓말에 무척 능숙한 사람이다. 

자신의 외모와 고급 승용차를 여자들을 자발적으로 차에 타도록 유인했다는 그의 말은 거짓에 가깝다.

피해자들의 휴대전화가 모두 꺼져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주 짧은 시간에 강력한 물리력을 사용해 피해자들을 제압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강호순 사건에 대해 갖고 있던 정보는 강호순에 의해 메이킹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의 주변인들은 물론 그와 이혼을 한 전처들까지도 강호순이 검거되었을 때, 강호순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자신을 통제하는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네 번째 부인과 장모, 그리고 그 외의 8명을 합하여 10명의 여성들을 단 2~3년 사이에 죽인 강호순은 기존의 연쇄살인마들과는 또 다른 유형의 연쇄살인마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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