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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Nov 26. 2024

우리 가족 나무

다섯 살 손주가 그린 뿌리 깊은 우리 가족 나무

"할아버지, 제가 그린 그림 보실래요?" 다섯 살 손주는 할아버지에게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 그러면서 손바닥만 한 종이를 내미는데 얼굴 일곱 개가 나뭇잎을 대신해서 나무를 이루고 있다. "그림 제목은 우리 가족 나무예요"


손주가 그린 불후의 작품, '우리 가족 나무'


아래에 있는 얼굴 둘은 엄마 아빠, 위에 있는 얼굴 둘은 할머니 할아버지, 가운데 얼굴은 손주라고 한다. 눈코입이 없는 얼굴은 누구냐고 하니까 돌아가신 분이라며 그분들도 우리 가족이란다. 손주가 돌아가신 증조모 증조부까지 함께 가족으로 생각하다니 기특하기 이를 데가 없다.


존댓말과 우리 가족


'우리'라는 호칭은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독특한 어투이다. 영어의 our와는 쓰임새가 전혀 다르다. 친구들과 있으면서 '우리 아내'라고  영어로 'our wife'라고 말한다면 아내를 공유한다는 말이 될 것이니 큰일 날 일이다. 그렇지만 '나'라는 개인보다 가족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우리'에 익숙하게 살아온 삶의 흔적이 말로 남아 있는 것이다.


대가족 제도는 우리나라 가족 문화로 자랑거리로 삼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들이 함께 사는 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이 대학생만 되면 학교 근처 원룸으로 탈출하듯 집을 떠난다. 이제 집에는 부부만 남게 되고 각방 쓰기로 하나씩 흩어지고 만다.


김장을 담는 날은 사위가 기다리는 잔칫날이다. 김장 김치와 함께 먹는 수육과 홍어에다 탁주는 가족과 먹어야 제맛이지 않은가?


아이들이 자라면서 존댓말을 익히지 못하는 건 엄마 아빠가 서로 하대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최소한 아버지께는 존댓말을 했지만 지금은 가족 모두가 하대하며 생활한다. 조상님들은 부부 간에도 존댓말을 쓰는 게 원칙이었고 자식도 혼인을 하면 반존댓말로 하대하지 않았다. 서로를 존중하는 가정 문화가 있어서 대가족 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면서 함께 모이는 자리를 한 해를 보내면서 며칠이나 가질 수 있을까? 아마도 명절이나 가족의 생일에나 만나는 집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라는 말을 익숙하게 쓰고 있지만 정작 '우리 식구, 우리 가족'에 대한 의미는 옅어져 버리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가족'이라 여기는 손주가 얼마나 될지 모를 일이다.


조상과 제사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집도 마찬가지라서 기일을 기리면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 걸로 치부되는 세태이다. 남녀평등과 개인주의 의식이 확산되면서 며느리라는 자리를 포기하는 집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 자손들이 조상과 절연하듯 집안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니 맏아들만 억지로 의무를 다하려 하지만 부부가 합의를 이어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살아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가족의 정을 만들지 못하는데 조상을 모셔야 한다는 말이 먹혀들 여지가 없다. 요즘 세태로 보면 손주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살아 있는 조상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사람 사이에 정이 생기려면 자주 만나고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데 어쩌다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라면 남과 다를 게 없지 않을까?


손주는 차를 마실 때도 온 가족이 손을 모아야 한다고 건배 제안을 한다


우리집은 명절 차례까지 아홉 번 제사를 지냈다. 거의 삼십 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부모님 제사와 윗대를 합쳐 세 번으로 줄였다. 내년부터는 명절 차례는 모시지 않기로 했고 모든 제사를 아버님 기일에 한번 지내는 걸로 했다. 요즘 세태에 따르는 의미도 있지만 아무도 오지 않고 아내 혼자 준비하고 둘이 모시는 제사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산 조상을 잘 모셔야지 부모님 이외에는 얼굴도 모르는 조상 제사를 사십 년을 모셨으면 효도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없고 남자 조카가 셋이나 있지만 집안 사정으로 제주를 할 조카가 없으니 내가 죽고 나면 더 이상 모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손주와 자주 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즐거움을 주니 죽은 뒤에 받는 제사상은 받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은가?


돌아가신 조상까지 우리 가족 나무에 그려 넣은 손주


우리 손주는 딸이 낳았으니 부계 혈통을 우선하는 전통적인 가계로 보면 사돈이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내는 손주의 육아와 딸네 가사를 돕느라 일주일에 삼사 일을 딸네에서 머문다. 나도 이 주에 한 번은 딸네에 가고 우리집에도 한 달에 두어 번 다녀가니 매주 하룻밤을 손주와 보내고 있다.


사돈네 조상이든 우리 조상이든 돌아가신 분까지 가족으로 여기는 손주가 신통하기 이를 데 없다. 요즘 세태를 보면 대학생만 되면 집을 떠나 혼자 살기에 들어가는 아이들에게 가족 관념이 있을까? 아파트에서 살면서 아이들이 평소에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을 돌며 잠자는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오는 일상이다.


내가 마음을 다해 따르려고 하는 다우의 집 찻상, 두 딸네와 한 아파트에 살면서 손주 육아를 도우며 살면서 아이들은 등굣길에 할아버지가 우려준 차를 텀블러에 담아간다고 한다.


남자아이의 경우 중학생만 되면 덩치가 성인에 가까운데 제 방이 얼마나 갑갑할까?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잦아야 거실과 식탁을 쓸 텐데 가족 간의 대화가 없고 아침밥을 먹는 집이 드무니 아이들도 집 밖에서 방황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집이라면 아이들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이고 가족 간 대화나 아침저녁을 식구들과 함께 먹을 것이다.


우리 손주도 삼대가 자주 모이고 매주 한 집에서 같이 잠을 자다 보니 '우리 가족'이라는 정서가 분명해진 것 같다. 할머니가 일주일에 사흘 밤을 함께 보내니 유치원을 다녀오면 할머니부터 찾는다. 할머니가 정성껏 지어주는 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그 자리에 없는 할아버지를 챙기며 온 가족이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자주 한다고 한다.




부부와 아이들이 사는 가족을 핵가족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대학생만 되면 집에서 독립해 나가니 부부만 달랑 남게 된다. 아이들이 집을 나가서 방이 남으니 부부도 각방 쓰기에 돌입한다. 결국 핵분열인 듯 가족은 해체되어 각각 살아가는 일상이 되고 만다.


삼대가 한 집에 살아야만 제대로 된 가족으로 지낼 수 있다. 아파트 얼개가 삼대가 함께 살기 어렵게 되어 있으니 한 집에 살지 않아도 가까이 살면서 자주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가족이라는 말보다 함께 밥을 먹는 가족이라는 식구가 훨씬 정겨운 말이다. 손주가 그린 '우리 가족 나무'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에 조상까지 챙기다니 우리 가족은 뿌리 깊은 나무가 틀림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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