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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희 Jan 26. 2024

난초와 나

창작동화

엄마는 제가 3살 때 집을 나갔다고 해요. 엄마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후로 아버지는 매일 술만 마시는데요. 술에 너무 취할 때면 저를 때립니다.

"너. 이 새끼! 이 재수 없는 놈. 너 때문에 내 꼴이 이렇게 되었다고! 나가버려. 네 어미처럼 나가버리라고!" 이렇게 울부짖으며 저를 때리고 또 때립니다. 이제 하도 맞아서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게 맞을 수 있을지 노하우가 생길 정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아버지를 따라 예쁜 아줌마가 집에 왔어요. 저런 남자가 무슨 매력이 있다고 따라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이제 이 아줌마가 네 엄마니까. 인사하도록 해." 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줌마에게 인사를 했고, 제 방으로 쓱 들어왔습니다.


아줌마는 아버지에게 "어머, 잰 인사성이 없네. 제가 알아서 교육시킬 테니 너무 걱정 말아요. 호호." 



그날 이후로, 아줌마는 제 어머니가 되었고, 아버지는 아줌마가 친엄마처럼 나가버릴까 봐 술도 먹지 않고 아줌마 비위를 맞추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줌마의 비위를 맞추느라 너무 바빠 절 때리지 않았어요. 평화로운 시간은 얼마 가지 않았어요. 아줌마는 돈을 못 벌어오는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해대었고, 남의 자식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인지 아느냐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제 앞으로 생명보험을 들어보자며 아버지를 꿰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줌마가 떠날까 봐 아줌마의 말이라면 무조건 오케이였습니다. 



제 앞으로 10억짜리 생명보험을 든 아버지와 아줌마는 저를 볼 때마다 이상한 미소를 흘렸는데 아주 소름 끼쳤습니다. 



마음 둘 곳 없는 저에게 단 한 명의 친구가 있다면 엄마가 집을 나가기 전에 놓고 간 난초 화분입니다. 아버지가 저를 때릴 마다 혹시나 난초화분이 다칠까 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맞았습니다.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들어도 난초가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며 난초의 잎을 어루만지는 것이 저의 유일한 낛이었습니다. 


 


난초의 잎사귀에는 새벽마다 신비로운 이슬이 맺혔습니다. 제 방이 너무 추워서 그런 것 같았어요. 이상하게도 그 양이 다른 식물들에 비해 상당했습니다. 


저는 그 신기한 이슬을 커피잔에 조금씩 모아두었어요. 난초가 흘리는 한 방울, 한 방울의 이슬이 저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 같아 너무 소중했습니다. 어느덧 커피잔은 이슬방울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난초가 저를 위해 준 한 잔의 선물을 고마운 마음으로 호로록 마쳤습니다. 은은한 향과 달콤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어요. 오늘은 기억에도 없는 엄마의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아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햇볕이 거의 들지 않아 곰팡이로 얼룩 얼룩한 벽지 위로 희미한 볕이 들었습니다. 웬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있습니다. 


"수현아. 일어나!" 


'이게 무슨 소리지?' 주위를 둘러봤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너무 외로워 환청이 들리는 건가?' 혼자 생각했습니다.


"수현아. 나야. 난초. 애지중지 아껴주더니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뭐야.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난초는 "미친 거 아니고, 내가 말건 거 맞아. 어제 네가 먹은 이슬 주스. 그것이 내 말을 알아듣게 한 거야."


"그리고 내가 급히 널 깨운 건 말이지. 너의 아버지와 새엄마가 안 좋은 계획을 꾸미고 있어. 조심해야 할 것 같아서 계획보다 일찍 너에게 말을 걸었단다.


빨리, 이 집을 나가렴. 빨리."



난초의 말을 듣고, 저는 서둘러 집을 나가려고 하니 새엄마는 어디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대충 둘러대고 나가려니까 새엄마는 아침밥 먹고 나가라고 성마른 목소리로 저를 잡았습니다.


평소 밥 차려준 적 없던 지라 좀 의아했는데 식탁에는 김이 솔솔 나는 카레 덮밥과 신선한 샐러드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난초가 한 말이 좀 걸렸지만 너무 맛있어 보이기도 했고, 새엄마의 말을 어긴 후폭풍이 너무 무서워 자리에 조심히 앉았습니다. 


새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저에게 먹기를 권했습니다. 입은 미소를 짓는데, 눈은 차가웠습니다. 


"수현아, 식기 전에 어서 먹으렴." 


생전 저에게 웃어준 적 없던 새엄마의 행동이 역시나 수상했습니다. 


난초는 저에게 다시 말을 걸었습니다. 


"수현아, 저 음식은 10분 안에 죽을 수도 있는 치명적인 독이 들어있어. 하지만 내 잎사귀를 씹으면 해독할 수 있으니 꼭 10분 안에 내 잎사귀를 씹었다 뱉어. 알았지?"


저는 난초의 말을 믿고 새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먹은 따뜻한 음식이 독이 들었을지언정 너무 맛있어 눈물이 핑 돌았어요. 


잠시 후 독 기운이 몸에 퍼지는 것을 느꼈어요. 황급히 방으로 들어와 난초가 내어준 잎사귀를 천천히 씹었습니다. 심하게 울렁거리던 속은 조금씩 잦아들었습니다. 



제 방 앞을 서성이던 새엄마는 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한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보란 듯이 시원하게 트림을 꺼억했습니다. 그랬더니 새엄마의 발소리는 화가 난 것처럼 쿵쿵 대기 시작하였죠.


"이 망할 놈의 돌팔이 약사는 대체 뭘 준거야.? 10분이면 충분하다더니만... 내가 돈을 얼마나 냈는데 이런 엉터리!!"


 그러면서 솥 안에 있던 카레를 코로 큼큼거리다가 궁금한지 맛을 보았습니다. 뒷 일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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