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바로 잠에 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겠다. 나는 아직 소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을 땐 당연하게 한 장을 더 넘기며 다음 내용을 예상해 봤다. 끝내 멈춘 이야기를 보고 있어도 소설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이것 하나는 알 것 같다. 눈앞에서 생생하게 타오르는 초록빛 불꽃들을. 그것을 보고 있는 ‘느낌’을.
영혜는 누굴까. 고기는 무엇이며, 식물은 무엇일까. 인간이 숨 쉬며 살아가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영혜의 꿈속에 발을 들이는 방법이 있다면 누군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핏물은 진하다. 그만큼 끈질기게 영혜를 괴롭힌다.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피 묻은 얼굴을 볼 때면 역겨움에 속에서 피가 끓을 것이다. 영혜의 아버지를 바라본다면, 자신을 닮은 아니, 자신이 닮은 남성의 폭력을 받아본다면. 나는 ‘피’의 거부반응을 알 수 있을까.
채식을 시작하고 평범한 인생을 버렸다. 아니, 어쩌면 그의 언니와 마찬가지로 그저 버텨온 세상을 살아본 것이 아닐까. 이상하리 만큼 무성한 풀들. 그 속에서 올라오는 초록빛은 생명을 뜻하지도, 죽음을 뜻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인생은 자신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그것을 망각하고 나에게서 앗아갈 것이다. 하나 둘 떠나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비로소 알게 되지 않을까. 평범함이라는 울타리에 숨어서 버텨왔을, 하찮게 뿌리내린 잡초를.
새가 날아가는 순간을 내 모든 힘을 실어 기억하고 싶었다. 그 찰나의 순간은 차츰 죽어 비틀어질 뿌리보다 깊게 땅속 깊이 기억될 것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