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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lyn Nov 15. 2022

'혼혈'이 아닌 이유, '불법체류자'가 아닌 이유

우리다문화장학재단 톡톡리포터가 되다4

면접을 보고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면접 합격 발표를 기다렸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화요일도 거의 저녁시간이 다 되어갈 때까지 아무 연락이 없었다. 

생각보다 지원자가 많았던 것 같은데, 다른 면접자들도 워낙 말씀을 잘하셔서 안될 수도 있겠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는 순간,


-띠링


와, 하고 탄성이 새어 나왔다. 

우리다문화장학재단 다문화톡톡리포터 1기에 뽑혔다! 

진짜 열심히 활동할 테다! 

역시 그 꿈은 보통 꿈이 아니었나봐! 


며칠 뒤에 톡톡 리포터 활동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한 달에 1회 기사를 작성하고, 잘 쓴 글은 우리다문화장학재단 SNS에 재가공되어서 사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저작권법에 위배되지 않게 사진이나 글씨체를 사용하는 방법 등 기술적인 내용도 알려주셨다.


그중에 눈길을 끌었던 것은 용어 사용과 관련된 안내였다.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다문화' 기사를 작성할 때 쓰면 안되는 용어들이었다. 


우리다문화장학재단 톡톡리포터 교육자료  中

 

'혼혈'이란 말은 '섞을 혼混'과 '피 혈血'의 조합어로 '섞인 피'를 말한다. 이 말에는 '순수한 피' 즉, 순혈(純血)이 아니란 속뜻이 깔려 있다. 2008년 다문화가족법이 제정되면서 '다문화'라는 용어에 의해 대체되었으나 여전히 '혼혈'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불법체류자' '불법체류이주민' 역시 차별 표현이란다. 이건 사실 나도 잘 몰랐던 거였는데, '불법' 대신에 '미등록'으로 바꿔야 한단다. '불법'이라는 것은 말 자체가 '범죄'를 의미하는 사회적 비난의 표현이기 때문에 중립적 용어인 '미등록'으로 말해야 좋다고 한다. 예를 들어, 혼인 외 관계에서 아이가 태어났다면, 그 아이를 '불법 아동'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조선족' 역시 '중국국적동포'로 표현해야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조선족'은 사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를 부르는 중국식 용어로 우리가 따라할 필요가 없다. 특히 한국에서는 '조선족'이라는 대상이 미디어에서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바람에 재외동포를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므로 자제하는 게 좋다. 


'외국인력'은 물론 '외국의 의료인력' '전문인력' 등과 같이 쓰일 때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단어이지만, 같은 글 안에서 한국인은 '사람'으로 지칭하면서 외국인에 대해서는 '인력'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외국인을 마치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이 된다니 역시 조심할 것. 


우리가 생각 없이 쓰는 단어인데,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이 말 한마디 때문에 손가락질당하는 것같이 속상해지곤 한다. 


나의 경우에도 우리 딸이나 다른 다문화 자녀를 두고 '혼혈'이라 말하는 지인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그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고, 매번 주의를 주기도 그렇고 해서 보통은 그냥 듣고만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으로서는 매우 거북한 건 사실이다. 


사실 모든 사람이 '섞인 피'지, '순수한 피'가 가능하긴 한가. 

동서고금을 통틀어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근친혼을 반복했던 왕가나 귀족은 모두 장애를 갖게 되거나 후손이 끊어졌었다. '순혈'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불가능한 건데 예전에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배타적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렇지만 나조차도 '불법체류자' 이런 용어들을 심심치 않게 썼던 터라 크게 반성이 된다. '다문화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점점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문제 전반으로 관심이 확장되게 된다. 대한민국 사회의 배타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이 중에서도 왜 '혼혈', '불법체류자', '조선족' 이런 용어들을 사용할 수 없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건, 사회적으로 늘 주류였던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해하기 어려운 이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색안경 낀 용어들이 많다는 걸, 사회적 소수가 되고 나면 하나씩 살갗으로부터 느끼게 된다. 


'혼혈', '불법체류자', '조선족'...

마치 너는 죄가 있다고 누군가 딱지를 붙인 것 같이 불쾌하고 쪼그라드는 기분,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런 것쯤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별로 예로 들고 싶지 않은 많은 단어가 떠오른다. 

그런 게 당신에게도 있다면, 이제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말을 쓰면 안 되는 이유. 



이 글을 쓰면서 국가인권위원회 '공공 홍보물의 인종·이주민 혐오차별 표현 실태 모니터링 결과보고서'를 참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불과 얼마전의 신문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한국인인데...'20년째 외국인' 한일 혼혈에 "귀화 불허""(뉴스1, 2022.10.14일자) '다문화가족'에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사례가 있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기사의 주인공 역시 그러하네요. 미등록체류자의 스펙트럼도 얼마나 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고요. '혼혈'이라는 차별적 용어를 제목에 쓰고 있기도 합니다. 여러 모로 많은 시사점이 되는 기사라 일독을 권합니다. 





'다문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랍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서로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역시 전혀 다른 존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오래된 미래인 '다문화' 이야기, 

다섯 번째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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