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심연 Jan 04. 2023

아미노쿨

향수를 부르는 이름

대자연이 인간을 말려 죽이려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무더운 여름의 한 나날이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오후 한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이 하교를 위해 우르르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 한 아이가 학교 정문을 향해 오르막길을 쏜살같이 달린다.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에 속하지만 더 이상 담임의 통솔 하에 하교하지 않아도 되는, 이른 바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졌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상태라는 건 아이의 당당한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정문 밖으로 나와 신호등을 건너고, 이어서 내리막길을 쉴 틈 없이 달렸다. 내리막길 중간쯤에 위치한 구멍가게에서 주인이 나와 그렇게 뛰다간 넘어진다고 말해도 소용없이 아이의 뜀박질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이어지는 평탄한 대로를 얼마나 뛰었을까, 아이는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었다. 꺾자마자 보이는 작은 문방구에 난 작은 문으로 작은 아이가 쏙 들어간다. 아이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진열대를 찾아간다. 불량식품을 종류별로 늘여놓은 진열대 위에 붉은색 바구니가 있었다. 아이는 그 바구니 안에 든 것을 냉큼 집어 들었다. ‘아미노쿨’이라는 글씨가 대문짝만하게 쓰인 촌스러운 디자인의 불량식품이었다. 푸른 튜브 속에 푸른빛의 음료가 들어있는 그것은, 스포츠 음료에 물을 살짝 탄 듯 맹맹한 맛이었지만 그래도 아이는 그것을 사서 마시는 낙으로 매일을 살았다 싶을 만큼 좋아했다. 문방구에서 시원하게 얼려서 아이스크림인 것 마냥 판매하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이는 카운터에 400원을 내고 냉큼 튜브를 뜯어 입에 물었다. 꽝꽝 언 상태가 아니라 적당히 녹은 상태여서 시원한 음료와 함께 셔벗 같은 얼음이 입 안으로 스며들었다. 아이는 행복해하는 얼굴로 문방구 밖으로 나섰다. 사실 밖이 더우니 문방구 안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문방구는 사람이 세 명 들어서면 꽉 찰 만큼 협소한 공간이어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얼음을 꾹꾹 눌러 부수어가며 열심히 먹었다. 가족들이 불량식품을 사먹는 걸 반대하다보니 집에 들어가기 전에 다 먹어야만 했다. 걱정이 많은 외할머니는 특히나 아이가 하교하면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바로 집으로 오기를 바라는 분이었기에 얼른 먹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리도 남은 얼음이 잘 부수어지지 않는 건지. 아이는 이로 깨물어보기도 하고 안간힘을 쓰며 불량식품을 얼른 다 먹으려고 기를 썼다. 째깍,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흘렀다. 아이가 그렇게 불량식품을 겨우 다 먹어갈 때였다.


“유정아!”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근처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던 외할머니와 시선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불량식품을 숨기기에는 이미 늦어서, 아이는 불량식품을 황급히 입에서 떼고 쭈뼛거리며 인사했다. 외할머니는 사거리에 멈춰선 채 아이가 오기만을 기다리듯 서있었다. 역광 때문에 그녀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아, 아이는 잔뜩 긴장한 채로 외할머니에게로 다가섰다.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무슨 호통을 들을지 몰라 아이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녹아가는 불량식품을 만지작거렸다. 외할머니는 그런 아이를 잠시 바라보더니 아이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았다.


“가자. 할미가 쭈쭈바 사줄게.”

“정말요?”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일탈을 한 번은 눈감아주겠다는 듯이 외할머니는 인자하게 웃었다. 아이는 마주 환하게 웃으며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트로 갔다.


“불량식품 다시는 안 사먹을게요.”

“그래, 그래.”

“약속할게요. 정말로요!”


지킬지는 아무도 모를, 그저 말뿐인 약속이었으나 외할머니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매미는 세차게 울고 눅진한 습도가 피부를 짓누르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대자연이 인간을 말려 죽이려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무더웠지만 아이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작가의 이전글 공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