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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심연 Jan 03. 2023

떠남

외할아버지의 장례

내가 기억하는 ‘떠남’은 몇 가지 되지 않는데, 그 중 하나가 외할아버지의 사망이었다. 그렇다 해도 이제 거의 사 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다. 외할아버지란 내게 있어 이런 의미의 사람이었다. 평생 도박과 알코올에 빠져 살아 외할머니를 그리도 지독하게 괴롭히시고 우리 집 안 재산을 다 탕진하신 분.


사건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나이가 들어 치매기까지 생기는 바람에 밤만 되면 내 방문을 두드려, 출근하는 손녀딸 잠을 못 자게 만들던 외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상태가 악화되어 보라매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되었다. 그때의 내 감정은 어땠는가? 홀가분하기 그지없었다. 직장 근처의 숙소에서 묵느라 집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는, 장녀인 엄마를 대신해 장손인 내가 외할아버지를 보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수인 것도 아니었고, 엄마 외의 이모들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집에서 같이 살면서 모시고 있다는 점이 내게는 꽤나 억울하게 다가왔다. 더구나 외할아버지는 역마살이 붙은 사람처럼 밖으로 나돌아 다니셨기에, 특별히 그와의 깊은 추억이나 끈끈한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기억나는 사건이라면 어렸을 적에 나를 앞에 태우고 오토바이로 산책을 나갔던 때나-이 때는 외할머니께서 전 재산을 털어 치킨 가게를 장만해 운영하시던 때였다. 가게 소유주를 외할아버지 앞으로 해놓는 바람에 너무 당연하게도 외할아버지가 팔아먹어버렸지만-조금 컸을 때, 나를 잃어버리고 황급하게 나를 찾아 달려오시던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외에는 별달리 되새길 만한 기억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견디지 못하게 했던 것은 외할아버지의 방 가까이만 가도 느껴지는 퀴퀴한 죽음의 냄새였다. 나는 품이 넉넉한 옷 사이로 언뜻 보이는,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충분히 살필 수 있는 외할아버지의 왜소한 체구에도 눈길 하나 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곧 별세할 것이다. 그의 방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지린내와 곰팡내, 눅눅한 습기와 찐득한 누런 장판, 그 모든 것이 죽음의 냄새이자 감각이었다. 그 냄새는 그가 병원으로 실려간지 며칠이 지나도록 지워지질 않았다. 냄새를 지우고자 한겨울임에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 모든 것들에 치를 떨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외할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소식에도 나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감각이 전부였다. 오히려 원망스러웠던 것 같다. 외할머니를 그렇게 고생시켜놓고 외할머니한테 제대로 된 도움 하나 주지 않고 그대로 가버리려 하다니 이처럼 매정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곧 돌아가실 분에게 원망의 말을 할 만큼 되어먹지 못한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침묵으로 일관하기로 결심한 채 가족들과 함께 병원으로 출발했다.


가족들과 다 함께 중환자실로 입장하는데 담당의가 말했다. 숨이 붙어 있는 게 기적인 상태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하시라고. 임종을 지키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서야 외할아버지의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게 실감이 났다. 그리고, 가족들 행렬의 맨 끝을 지키며 뒤따라오던 나는 마침내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앙상한 다리를 보게 되었다. 내 시선은 반사적으로 외할아버지를 훑었다. 여러 장치들이 붙어있는 그 몸은, 사람의 것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앙상하고, 검버섯과 부스럼이 잔뜩 피어올라, 이미 죽었어야 하는 것에 생명을 억지로 불어넣어 놓은 꼴과 같았다. 느릿하게나마 Y축으로 선을 그리고 있는 심전도 그래프가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그가 이미 별세했다고 생각했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나는 죽음 그 자체와도 다름없는 그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집에 계실 때는 그 정도로 상태가 안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모들이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외할아버지에게 아버지 딸들이 왔노라고, 그렇게 말할 즈음에서야 나는 죽음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공포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의 푸석푸석한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효식 아빠, 당신이 그렇게 예뻐하던 유정이 왔소.” 하고 말할 때는 기어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외할아버지의 발을 매만지면서, 할아버지, 하고 부르는 게 전부였다. 온갖 후회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왜 이제까지 그를 그리도 귀찮고 성가시게 여겼으며 온 힘을 다 해 미워하고 원망해왔던가. 그렇게 한다고 그가 저지른 일과 이미 지나간 과거들이 만회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효도는 결국 자기 자신이 좋으라고 하는 거라던 외할머니의 말씀이 그제야 와 닿았다. 나는 그저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모들이 외할아버지에게 남기는 메시지 한 음절, 한 음절마다 세상이 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담당의가 다가와 외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조용히 모든 장치를 회수하고, 사망 선고를 내렸다. 막내이모가 오열하며 외할아버지의 눈을 감겨드리자,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나 또한 무언가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정말 다시는 만날 수 없구나. 다시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다시는 닿을 수 없구나. 현실성이 없는 감각이었다.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듯, 붕 떠버린 이질감이 나를 독차지했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은 단출했다. 장례식에 제공된 음식들이 희한할 만큼 맛있었는데, 외할머니께서 “너희 할아버지가 보살펴줘서 음식이 맛있게 되었나보다.”하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밥을 먹다가 운 기억이 있다. 장례식 이후에 외할아버지의 흔적을 모조리 정리하는 건 대부분 외할머니께서 하셨다. 나는 한 며칠 환청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자다가도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에 화들짝 깨서 문 밖으로 나가는 등의 일이었다. 외할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효도 하나 해드리지 못한 것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간혹, 외할머니가 앨범을 보면서 내가 기억하지도 못할 나의 어린 시절에 외할아버지가 얼마나 나를 예뻐했는지 이야기를 하실 때면 더더욱 나는 목구멍에 무언가가 걸린 듯 답답해졌다.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이 어쩌면 그리도 맞는지. 떠난 뒤에 후회해봤자 이렇게, 미련만 남은 글을 쓰게 될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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