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디에즈 : RGB, 세기의 컬러들
한 분야의 장인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사물놀이의 장인도 있고, 인감 만드는 장인도 있고, 구두수선 장인도 있다. 색 만드는 장인도 있다는걸, 그 사실을 또 서울 한복판에서 알 수 있다는 건. 분명 새로운 일이고 소식이다. 색의 장인 크루즈 디에즈의 전시가 서울 한가람미술관(예술의전당)서 전시 중이다.
색채학을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전시로 소개되는, ‘크루즈 디에즈-RGB, 세기의 컬러들’은 빛과 색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이들일지라도, 온전히 빛과 색만을 바라보고 받으며 빛과 색에 대한 관심을 유도한다.
4개의 파트로 구성된 전시는 온몸으로, 눈으로, 손으로 빛과 색을 체험하고 경험하며 좋은 볼거리, 느낄거리, 소잿거리를 제공한다.
1. 색 포화
온몸으로 색을 받는 묘한 경험부터 선사하는 전시는, 잠깐의 생경함 후 반가운 마음으로 휴대폰을 꺼내 하나둘 셋 찰칵찰칵. 하나만 더, 고개 좀 틀어봐를 유도한다. 녹색이 되기도 푸른색이 되기도 붉은색이 되기도 하는 사진 속 나와 너를 보며, RGB가 뭘까 생경할지라도. R은 Red이고, G는 Green이며 B는 Blue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파트는 각각의 공간에서 새로운 색을 발견하거나, 순간 색이 사라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2. 평면 작품
RGB에 대해 알았으니, 이제 작품을 볼 시간이다. ‘빛과 색의 현상학에 관한 연구 중 3가지(색 추가/색채 유도/공간의 색)’라는 테마의 전시를 가까이서 한 번, 멀리서 한 번, 눈으로 한 번, 카메라로 한 번. 볼 때마다 달라지는 오묘함에, 매직아이 탐구하듯 뚫어져라 눈 비비고 다시. 평면 작품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색과 반가운 색을 익숙한 빛과 생경한 빛을 여기서 보면 이렇고, 저기서 보면 저렇네. 신선한 시각적 만족도가 신선한 대화거리를 만들어낸다. 단순한 색의 선들이 무수히 겹치는 가운데 화면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색을 발견한다.
3. 색 간섭 환경
앞서 본 평면작품 속에 들어온 듯한 공간에 다시금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다시 한번, 멀리서 가까이서 눈으로 카메라로. 앞서 본 신선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머리카락에 비친 패턴과 신발에 비친 패턴을 훑으며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일상에 접하기 힘든 미장센을 체험한다. 빛의 스펙트럼을 움직이는 영상이 착시 공간을 조성하고, 인공적인 환경에 색상 간섭을 체험한다.
4. 색채 경험 프로그램
크루즈 디에즈가 보여줬던 색을 나도 한 번 만들어본다. 가지각색 색과 도형을 조합하며 나의 작품을 쉽게 만들어본다. 다운로드한 나의 작품을 카톡으로, 인스타로 자랑하고. 이게 뭐야? 전시 다녀왔어? 라는 문자들에 잠시간 기세가 등등해진다. 알고 보면 나도 예술가 기질이 있지는 않을까, 싶은 나의 작품이 뿌듯하다. 1995년부터 작가가 개발한 해당 프로그램은, 수많은 관객들에 뿌듯함을 선사한다.
신기하고 반가웠고 고마웠던 전시의 끝에 크루즈 디에즈의 생애를 살펴본다. 색의 장인이라던 그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흑백사진에 새삼 그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다년간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번 전시를 잘 왔다 싶다. 아쉬운 발걸음을 휴대폰 속 사진첩으로 위안한다.
좋은 전시다. 좋은 전시는 좋은 볼거리, 느낄거리, 소잿거리가 된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