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일기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음 환자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Receptionist 가 나한테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와 “다음 환자분이 선생님하고 따로 개인적으로 할 얘기가 있데요”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과 함께 의아하다는 생각으로 환자를 보러 방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환자가 아녔기에 더 의아했던 걸 수도 있다. 꽤 여러 차례 봐왔던 환자였고 치과 공포증이 심해서 매번 치료할 때마다 힘들게 겨우 해나가는 환자였다. 그래도 잘 이겨내고 있었고 계획데로 치료를 잘 받고 있었다.
문을 들어서자 환자는 긴장한 모습으로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불안감 가득 찬 글썽거리는 눈으로 날 보며 얘기하였다. 암 판정을 받았다고. 맞다 저번 주에 환자 봤을 때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었지. 예전에 받으려고 했던 검진이 코로나 때문에 미뤄졌었고 특별히 필요하지 않은 거 같아서 취소하려다가 이미 예약돼있는 거이기에 그냥 예정데로 하라고 의사가 권해서 하기로 했다고. 그런데 이러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 거였다. 환자는 곧 무너질 거 같아 보였고 정신없이 두려움과 불안감을 쏱아내었다. 코로나 여서 모든 게 다 미뤄지고 있는 상태이지만 수술 날짜를 꼭 빨리 받아내고 싶고, 아니, 받아내야 하고 이렇게는 기다릴 수 없다고. 너무 걱정되고 스트레스받는다며 눈물을 흘리며 얘기했다. 순간 나는 따듯하게 안아주고 싶었지만 동시에 치과의사로서 어떤 행동이 올바른지 생각하게 됐고 자제했다. 우선 환자의 입장을 공감하고 같이 안타까워하며 그래도 이렇게 스트레스받고 걱정하는 건 지금 환자 건강 상태에 해롭기만 할 뿐 도움이 안 되는 것이기에 본인 몸을 생각해서라도 희망을 가져보며 스트레스를 줄여보자고 했다. 그러고 치과의사로서 알려주어야 할 정보, 항암치료를 받게 된다면 치료 스케줄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설명하였다.
나는 계획돼있었던 치과 치료는 급한 게 아니기 때문에 환자 건강 상태가 많이 안정이 된 후에 계속하여도 된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환자가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러한 의지에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대단해 보였다. 최대한 자신의 일상, 계획이 이 험하고 외로운 암과의 싸움으로 인해 흩트러지지 않겠다는 노력.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 삶의 회오리가 휩쓸고 지나간 거 같은 얼마나 절망적인 시기일까. 그러한 상황에서 난 버틸 수 있을까. 우습게도 난 그 당시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후 폭풍을 겪으며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다. 생과사가 결정될 수도 있는 상황에 닥친 사람을 앞에 두고 나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고작 남녀 간에 흔하게 있는 헤어짐의 고통에 겨우겨우 일상생활을 버티고 아파하며 살아가고 있었다니. 하지만 인간이란 참 어리석은 건지 나는 다음날, 아니 그날 퇴근 후에도 이별 후폭풍에 힘들어했다.
이런 이야기를 15년 만에 우연히 연락이 닿은 심리학자이자 심리 상담가인 옛 친구한테 털어놓게 되었는데 내 고통이나 힘듦을 깎아내리지 말라고 하였다. 현재 내가 느끼는 고통도 보살핌이 필요하고 마땅한 것이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맞다, 제각기 다른 고충과 고통을 겪고 느끼는데 그것이 작던 크던 내가 힘들면 힘든 것이고 아프면 아픈 것이다. 물론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 괴로움에 휩싸여서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보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많은걸 남과 비교하는 요즘 세상에서 내가 겪는 아픔과 힘듦까지도 남과 비교해 내 심정을 억누르고 무시하지 말자 라는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