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일기
“My husband doesn’t recognize me.”
“남편은 나를 못 알아봐요.”
할머니 환자분이 치료 시작하기 직전에 대화 중에 담담하게 말하셨다. 이러한 얘기를 하시기에 조금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담담함 속에서 나 너무 많이 아프고 슬프다고, 누구든지 제발 알아줘라고 호소하는 거같이 들렸다. 남편분은 꽤 오랜 시간 치매를 앓고 있었던 거 같고 할머니는 주로 혼자 생활하시면서 나름 바쁘게 시간을 보내시는 거 같았다. 치료 다음날 친구분들 이랑 점심 약속이 있으셨고 생활 용품 재활용해서 가방 만드는 게 취미이신 거 같았다. 매우 힘든 치료를 꿋꿋이 불평불만은커녕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버티시고, 다시는 치과에 돌아오고 싶지 않으시겠지라고 걱정을 하고 있을 바로 그때 할머니는 나와 내 assistant에게 “내가 다음에 오면 줄 게 있어 – 내가 아직 안 줬지?”라고 하셨다. 나와 assistant는 놀란 눈으로 서로 쳐다보고 assistant는 할머니에게 “You still like us enough to give us something?” “저희한테 무엇을 주실 만큼 아직 저희가 괜찮으세요?” 농담하셨다. 그러고 며칠 후 할머니가 손수 만드신 가방 두 개를 들고 치과에 찾아오셨다. 알록달록 예쁘고 일상에서 쓰이는 플라스틱 용품을 재활용해서 만드신 거라 더 신기하고 새로웠다. 너무너무 예쁘다는 감탄과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할머니는 임무를 다한 듯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치과를 나가셨다.
할머니가 가신 후 나는 생각에 잠겼다. 할머니를 못 알아보는 아프신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시고 할머니 혼자 어떤 마음으로 가방을 만드시고 하루하루 살아나가고 계실까. 예전 같으면 전혀 상상도 못 했을 마음이다. 요즘엔 어렴풋이 조금은 어떤 느낌일지 알 거 같기도 하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쯤 통증이 너무 심해 통증 약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아빠는 가족한테 병간호로 인해 더 이상 피해주기 싫으셔서 인지 고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드셔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말씀으로는 고통이 너무 심하시다고 결국 MAID (medical assistance in dying) 안락사를 선택하셨다. 하지만 본인 생인데도 생을 마감하는 건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절차대로 하다 보니 1분 1초도 괴로워하시는 아빠한테는 너무나도 길게 느껴지셨다. 결국 안락사 예정일 3일 전에는 고통을 느끼시지 않게 잠들게 하려고 마취약을 놓기로 했고, 처음 하루는 간격을 두고 마취 주사를 놓다 보니 아빠가 주무시다가 중간중간 깨셨다. 깨셨을 당시에 아빠는 다시 고통스러워하셨고 우리는 아빠 의견을 물어보고 아빠 뜻대로 지속적으로 마취약을 놓고 안락사 예정일까지 깨어남 없이 주무시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영영 주무시기 전에 중간중간 잠깐이라도 깨어 있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소중했고 놓치지 않으려고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마취약에서 덜 깬 아빠의 모습은 또 다른 아픔이었고 충격이었다. 우리 가족에서 그리고 통틀어서 샤프하시고 똑똑하기로 알아주는 아빠였기에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정신없어하시는 모습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시면서 두 명의 인물이 당신한테 말을 하고 있다고 하셨고 어떤 때에는 서글픈 목소리로 아이처럼 “나 너무 힘들었어”를 여러 번 반복하셨다. 처음 보는 낯선 아빠 모습에 마음이 무너졌고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빨간 약이라도 있다면 발라보고 싶을 정도로 아프다. 단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 순간 아빠는 온 정신이 깨어있을 때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셨고 무서운 암덩어리가 당신 몸을 지배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 곁을 떠나게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셨다. 잠깐 씩 원래 아빠의 모습이 돌아오셨을 때에는 고통으로 너무나도 괴로워하셨고 우리와 같이 슬픈 눈물을 흘리셨으니 차라리 지켜보고 있는 우리 마음이 아픈 게 나은 거겠지라고 위로해본다. 치매라는 무서운 병 그리고 앓고 있는 환자의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아주 낯설지는 않은 거 같다. 그래서 더더욱 할머니 환자분 심정이 신경 쓰이고 간절히 할머니의 행복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