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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K Oct 23. 2023

아빠 생각

치과 일기

어느 순간 부터인지 어르신 환자 분들을 볼때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감정이라 표현해야 할지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기 어렵지만 그리움, 아쉬움, 애틋함 과 부러움 이란 단어들이 떠오른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벌써 4달이 되간다 라고 해야 할지 이제 4 달 밖에 안됐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문득 아빠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현실감이 나지 않을 때도 있고 다시는 살아 계신 모습을 볼수 없고 아빠와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픔이 높은 파도처럼 몰려올 때도 있다. 한달정도의 시간동안 일을 쉬면서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잘 보내드린 후 다시 일 복귀하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다시 환자를 맞이하고 안부를 물어보고 대화를 하면서 일상 생활로 돌아왔다. 그런데 유독 70세, 80세 정정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분들을 볼때면 묘하게 감정적인 내 자신을 발견했다. 요즘 흔히 ‘백세 시대’ 라고 하는 시대이지만 아빠는 66세에 직장암 말기, 간암 전의로 몇 개월 후에 예정되었던 언니 결혼식도 못 보고 두달만에 가셨다. 어르신 환자분들을 볼때면 아빠도 적어도 70세 까지만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부럽고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한 70대 할아버지 환자분은 매일같이 항암제 알약을 드시면서 하루하루 살고 계셨다. 몇 년을 암과 싸우시다가 이제 조금 회복하시고 여유를 찾으셔서 치과를 찾아오셨다. 그동안 이 관리를 못하셔서 물론 입안 상태는 많이 안 좋으셨고 살아 계셨을 때의 아빠 이 상태와 비슷했다. 이 치료 관련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어떤 치료 방법은 오래갈 거라는 보장이 거의 안되지만 더 간단하고 그에 비해 다른 방법은 보장이 되지만 더 invasive 한 치료였다. 환자는 전자를 택했고 - 내가 오늘로부터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long term 치료 방법을 택할 이유가 없지 않겠냐 하시면서 모험을 하기로 결정하셨다. 맞다, 보통 환자들은 여건이 되는 한 오래가는 이 치료를 택하려고 하는데 이분은 삶에 있어서 관점부터 달랐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서 그래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아빠 이 치료할 당시에는 아빠가 이렇게 무섭고 큰 병이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고 아빠를, 아빠의 삶을, 아빠와의 시간을 이 환자분과 같은 관점으로 보지 못했다.



아직 내 혼란스러운 마음과 여러가지 감정들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마음먹고 앉아서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글로 써 내려갈 엄두도 안 났던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큰 회복의 단계라고 볼수있을 거 같다. 비록 아빠가 살아 계셨을 때 아빠 본인도, 나도, 우리 가족도 아빠 삶이 얼마 안 남았다고 인식하지 못했고 그러한 관점으로 바라보지 못했지만 이제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과 내 삶 또한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예측 불가한 미래를 가지고 있다는 관점으로 하루하루 소중하게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아끼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려 노력해야 한다는 배움을 얻었다. 사람은 언젠가 생을 마감하게 되 있고 내 가족,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 모두 떠날 시기가 온다. 단지 그 시간이 언제 인지만 각기 다를 뿐. 나는 조금 일찍 겪었을 뿐이다. 항상 마음속 한 켠에 새겨 놓아야 할 생의 이치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애써 내 마음을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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