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일기
어느 순간 부터인지 어르신 환자 분들을 볼때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감정이라 표현해야 할지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기 어렵지만 그리움, 아쉬움, 애틋함 과 부러움 이란 단어들이 떠오른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벌써 4달이 되간다 라고 해야 할지 이제 4 달 밖에 안됐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문득 아빠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현실감이 나지 않을 때도 있고 다시는 살아 계신 모습을 볼수 없고 아빠와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픔이 높은 파도처럼 몰려올 때도 있다. 한달정도의 시간동안 일을 쉬면서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잘 보내드린 후 다시 일 복귀하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다시 환자를 맞이하고 안부를 물어보고 대화를 하면서 일상 생활로 돌아왔다. 그런데 유독 70세, 80세 정정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분들을 볼때면 묘하게 감정적인 내 자신을 발견했다. 요즘 흔히 ‘백세 시대’ 라고 하는 시대이지만 아빠는 66세에 직장암 말기, 간암 전의로 몇 개월 후에 예정되었던 언니 결혼식도 못 보고 두달만에 가셨다. 어르신 환자분들을 볼때면 아빠도 적어도 70세 까지만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부럽고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한 70대 할아버지 환자분은 매일같이 항암제 알약을 드시면서 하루하루 살고 계셨다. 몇 년을 암과 싸우시다가 이제 조금 회복하시고 여유를 찾으셔서 치과를 찾아오셨다. 그동안 이 관리를 못하셔서 물론 입안 상태는 많이 안 좋으셨고 살아 계셨을 때의 아빠 이 상태와 비슷했다. 이 치료 관련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어떤 치료 방법은 오래갈 거라는 보장이 거의 안되지만 더 간단하고 그에 비해 다른 방법은 보장이 되지만 더 invasive 한 치료였다. 환자는 전자를 택했고 - 내가 오늘로부터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long term 치료 방법을 택할 이유가 없지 않겠냐 하시면서 모험을 하기로 결정하셨다. 맞다, 보통 환자들은 여건이 되는 한 오래가는 이 치료를 택하려고 하는데 이분은 삶에 있어서 관점부터 달랐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서 그래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아빠 이 치료할 당시에는 아빠가 이렇게 무섭고 큰 병이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고 아빠를, 아빠의 삶을, 아빠와의 시간을 이 환자분과 같은 관점으로 보지 못했다.
아직 내 혼란스러운 마음과 여러가지 감정들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마음먹고 앉아서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글로 써 내려갈 엄두도 안 났던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큰 회복의 단계라고 볼수있을 거 같다. 비록 아빠가 살아 계셨을 때 아빠 본인도, 나도, 우리 가족도 아빠 삶이 얼마 안 남았다고 인식하지 못했고 그러한 관점으로 바라보지 못했지만 이제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과 내 삶 또한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예측 불가한 미래를 가지고 있다는 관점으로 하루하루 소중하게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아끼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려 노력해야 한다는 배움을 얻었다. 사람은 언젠가 생을 마감하게 되 있고 내 가족,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 모두 떠날 시기가 온다. 단지 그 시간이 언제 인지만 각기 다를 뿐. 나는 조금 일찍 겪었을 뿐이다. 항상 마음속 한 켠에 새겨 놓아야 할 생의 이치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애써 내 마음을 다독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