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책에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사 지내는 날, 사당에 들어가면 흡사 그곳에 보이는 듯하고, 돌아서 나오면 숙연히 음성이 들리는 것 같고, 문을 나가면 ‘휴~’하고 탄식하심이 들리는 것 같다. 이런 까닭에 선왕의 효는 얼굴빛이 눈에서 잊히지 않고, 음성이 귀에서 끊이지 않으며 그 뜻과 즐겨하시던 일이 마음에서 잊히지 않으셨다. 사랑을 극진히 하면 존재하고, 정성을 극진히 하면 드러난다. 드러나고 존재함이 마음에 잊히지 않으니 어찌 공경하지 않으랴. 군자는 살아계시면 공경하여 봉양하고, 돌아가시면 공경하여 제사지내며, 죽을 때까지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을 생각한다. 『예기』 「제의」
오늘날 차례상이라 하면 설날 떡국, 추석 송편만 더 올라갈 뿐 나머지는 제사나 차례나 매양 똑같다. 삼색 나물과 수북이 쌓인 전이 차례와 제사의 대표 음식이다. 차례상 쌓으려다 명절 스트레스만 쌓여 간다. 그런데 이런 것은 본래 우리 풍속이나 『주자가례』 어디서도 권하지 않던 해괴한 모습이다.
그뿐인가? 명절이 다가오면 ‘홍동백서, 어동육서, 두동미서, 좌포우혜, 조율이시’ 등 사자성어 같은 제수(祭需) 나열 공식이 오랜 정석인 듯 회자된다. 지역에 따라 ‘문어, 서대, 상어, 굴비’ 등 제사상엔 반드시 올려야 한다는 희귀 식재료도 있다. 때문에 명절만 되면 희귀 어종의 가격이 하늘을 찔러댄다. 하지만 정작 『주자가례』는 ‘구이류[炙], 고기류[肉], 생선류[魚], 채소류[菜], 과일류[果]’ 등 모호한 분류로 안내할 뿐이다. 구하기 쉬운 제철 음식이면 된다는 의도 때문이다.
일례로 『주자가례』에는 봄철 시제(時祭)에 부추와 알(달걀, 오리알 등)을 올리라고 돼 있다. 당시 주자가 살던 곳에는 부추가 구하기 쉬운 제철 채소였기 때문이다. 또한 선비[士]는 개고기를 올리라고 되어 있는데, 역시 사족의 재력으로는 소고기보다 개고기가 더 적당했기 때문이다. 만약 송나라 환경에 맞춰진 『주자가례』에서 개고기를 사용했으니 지금도 그것을 고수하려 한다면 그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 마찬가지이다.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는 이유와 원리를 알고 현재에 맞게 변용해야 올바른 제사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사(士)족인 양반은 부모의 신주만 모시고 제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대부들이 차리는 제사상을 흉내 내기 어려웠다. 이에 주자가 제수의 종류를 정해 주었다. “나물[熟菜], 채소절임[沈菜, 우리나라에선 김치], 생채[醋菜] 한 접시씩, 포, 육장(젓갈, 삭힌 생선 식해, 혹은 식혜), 청장(간장, 초간장), 만두, 떡, 밥, 간, 고기”였다. ‘육장, 만두, 간’ 등 생소한 음식들이 보이는 이유는 주자가 살던 송나라 풍속에 맞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사 음식의 본의는 충분히 드러난다.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제철 음식을 간단하게 올리는 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워지면 제사를 번잡스럽게 여기게 되고, 그런 불경한 마음이 들면 차라리 안 지내는 게 낫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본래의 제사상은 생기를 취하고자 날것을 으뜸으로 여기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제철 음식만 간단히 올리게 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익히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과 문어, 상어 등 구하기 힘든 음식을 많이 올리는 쪽으로 변질돼 갔다. 특히 주변이 지저분해진다는 이유로 기름에 지지고 튀긴 음식 올리는 것을 절대 금했지만, 점차 전과 튀긴 음식은 제사의 대표음식이 되어 갔다.
제사상에 기름에 튀긴 음식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이유는 대략 이러했다.
기름은 귀한 식재료이지만 튀기고 지지면서 음식은 생기를 잃고 주변은 지저분해진다. 또한 번잡한 음식은 준비하는 사람들을 피로하게 하여 제사의 본질인 공경심을 불평으로 변질시킨다. 때문에 약과, 산자 등의 튀긴 음식을 제사상에 올려도 되느냐는 조선 후기 중요한 논란거리였다. 『주자가례』 또한 “살아 있는 자는 설미(褻味: 손이 많이 간 맛있는 맛)를 숭상한다. 하지만 신에게 제사할 때는 설미를 숭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때문에 살아 있는 자를 대접하는 음식으로 제사상을 차리는 것에 많은 의혹이 뒤따랐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까지도 퇴계 이황과 명재 윤증의 종가는 선조의 유지를 지켜 전과 유과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제사’ 하면 ‘전과 약과’가 떠오를 정도로 대표적인 제사 음식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본래 제사 음식은 귀신을 산사람으로 대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생기가 있는 과일들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몇 가지 음식이면 족하다. 제사의 본질은 마음을 모아 자신의 뿌리를 추모하는 것이지 음식을 차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사는 자주 지내지 않아야 한다. 자주 지내면 번거롭고, 번거로우며 공경하지 않는다” 『예기』
“(제례에는) 공경함이 부족한데 예가 과한 것보다는 부족할지언정 공경함이 남아도는 게 낫다” 『논어』
“후세에 대성인이 태어나 그가 한 차례 예를 정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깨우치게 한다면, 필시 일일이 옛사람이 한 것처럼 번거롭게 하지는 않고 다만 옛사람의 글 뜻을 본떠 간단하면서도 행하기 쉽게 할 것이다.” 『주자가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