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삿밥은 귀신이 드실까?
* 참고 : 본 브러치의 글들은 <표류사회 : 한국의 가족문화와 여성 인식의 변화사>(가제) 라는 이름으로 2021년 9월 말 경에 출간되기로 하였습니다.
그럼 주자학에서는 어떤 원리로 제사에 음식을 올리는 것인지, 그리고 제사의 본질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제사 때 돌아가신 귀신이 와서 음식을 드시는가?’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미풍양속으로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교 종파도 있다. 고인의 신주를 만들고 거기다 절을 해대니 혼란스러운 것도 당연하다. 과연 주자학에서는 제사를 받는 귀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주자가 말했다. “지금 세속에서 말하는 귀신이란 (세상에) 없다.”
“귀(鬼)와 신(神)은 다만 기(氣)일 뿐이다. 움츠림과 펴짐, 감과 옴이 기이다. 천지간에는 기 아닌 것이 없다. …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본래 절반은 신이고 절반은 귀이다. 그러나 죽기 전에는 신이 위주가 되고 죽은 뒤에는 귀가 위주가 된다.”(성리대전, [28-1-10] [28-2-16].)
이 세상에 가득 찬 만물의 근원 재료가 바로 기(氣)이다. 기가 펼쳐지는 양(陽)의 상태를 신(神; 申)이라 하고, 본원으로 되돌아가는 음(陰)의 상태를 귀(鬼; 屈)라고 한다. 즉, 기의 음과 양이라는 두 상태를 합쳐 ‘귀신’이라 부른다. 유교에서는 죽음을 기운의 흩어짐으로 본다. 즉, 혼(魂)과 백(魄)이라는 육신의 음양 두 기운이 본래 온 자연으로 ‘돌아가신 것’이 죽음이다. 곧, 양에 속하는 혼(얼)의 기운은 본래 비롯한 하늘로 돌아가고, 음에 속하는 백(넋)의 기운은 땅으로 돌아간다. 제대로 잘 돌아가시면 혼백이 깨끗하게 흩어진다. 그리고 자손들의 기원으로 인해 올바른 ‘조상신’으로 여겨져 자손들 마음에 자리 잡는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될 것은, 유교의 신(神)과 일반적인 신(神) 개념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보통 하느님이라고 말하는 최고신을 유교에서는 ‘제(帝)·천제(天帝)·상제(上帝)·천신(天神)·지기(地祇)’라 표현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신(神)이란 종교에서 말하는 그런 하느님의 개념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를 지내면 죽은 선조의 귀신이 정말 돌아오는 것일까?
앞에서 귀신이란 기의 양면성이라고 했다. 기(氣)의 기본 원리는 ‘마음과 의지가 가는 곳에 기운도 따라간다’라는 것이다. 한쪽 검지손가락에 계속 의식을 집중하면 검지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의식이 검지에 모이면 기도 모이기 때문이다. 기는 의지를 따라 이동한다. 이런 이치를 몸으로 응용하는 것이 도교 수련, 기체조, 단학, 무공, 한방 등이고, 의례에 이용하는 것이 유교의 예(禮)와 악(樂)이다.
제사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마음이 모인 곳에는 기(氣)가 모인다. 기가 모이면 이치[理]는 자연히 그곳에 내재한다. 선조가 세상에 남긴 기운과 이치(정신)는 바로 자손이다. 때문에 자손들은 선조와 같은 종류의 기운과 정신을 갖고 있다. 소리굽쇠를 치면 같은 주파수의 쇠가 자연히 공명하듯, 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한다. 이 같은 원리로 돌아가신 부모를 추모하는 자손의 마음이 모이면 흩어져 버린 기운이 일시적으로 공명한다. 기(氣)가 공명해 모이면 리(理)는 자연히 그곳에 내재하기에 흩어진 혼(정신)도 잠시 감응한다. 잠시 모인 기를 의지시키고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생기(生氣)가 도는 것을 제사상에 올린다. 그리고 살아계실 때를 추모하기 위해 즐겨 드시던 음식도 올린다. 이러한 원리를 의례로 구현해낸 것이 제사다. 즉, 제사는 단지 자손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낸 기억의 공명 같은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모든 강물에 똑같이 비치듯, 모든 이치[理]는 이미 마음[萬物]에 비치고 있다. 즉 모든 답도, 모든 존재도 마음의 문을 통해 드나든다. 제사의 감응은 자손의 마음 안에 살아 있는 고인의 자취를 추모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주자 왈, “결국 자손은 조종(祖宗)의 기이다. 그의 기가 비록 흩어졌지만, 그의 근본은 도리어 여기에 있으니, 그 정성과 공경을 다하면 또한 그의 기를 불러서 여기에 모을 수 있다. 예컨대 파도가 출렁이는 것에서 나중의 물은 이전의 물이 아니고 나중의 물결은 이전의 물결이 아니지만, 또한 통틀어서 다만 하나의 파도일 뿐인 것과 같다. 자손의 기와 조상의 기도 역시 이와 같다. 그의 혼백은 죽은 그때 바로 흩어지나 그의 근본은 도리어 여기에 있다. 근본이 이미 여기에 있으니, 또한 그의 기를 여기에 끌어 모을 수 있다. 이 일은 설명하기 어려우니 다만 사람들이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성리대전)
"귀신의 이치는 곧 마음의 이치이다. … 어떤 것이 허공에 쌓여 있다가 자손이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제사를 주관하는 자는 이미 조상의 기가 전해진 것이니, 그가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조상의 기를 감동시켰을 때 이 기가 본디 여기에 깃드는 것이다." (성리대전)
"조상의 정신은 곧 자기정신이다. 사람이 신이라고 여기면 곧 신이고, 신으로 여기지 아니하면 곧 신이 아니다. 죽은 줄 알면서 산 것으로 여기는 것은 지혜롭지 못함이요, 죽은 줄 알았다고 죽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함이다. 성인은 그래서 신명(神明)으로 여긴다. 조종(祖宗)의 기운은 단지 자손의 몸에 전해져 있다. 제사 때는 이 기운이 곧 자연스레 또 펴진다. 스스로 정성과 공경을 지극히 하여 엄숙하게 그 위에 계신 듯이 하면, 그게 무슨 물건이든지 어찌 펴지지 않겠는가? 이것이 곧 귀신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주자가례』 「제사」.
때문에 제사 전 삼 일간 재계(齊戒)라는 것을 한다. 마음속 사심과 번잡함을 벗어 버리고 밝고 깨끗하게 하려는 것이다. 더불어 전날 하루는 돌아가신 부모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 채운다. “돌아가신 어버이의 거처를 생각하고, 그분의 웃음과 말소리를 생각하면서 돌아가신 분께 의식을 집중한다.” 재계하는 삼 일간 마늘 등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문상을 가지 않고, 음악을 듣거나 음주하지 않으며, 흉하고 더러운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같이 심신을 가다듬으며 삼 일 내내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는데, 어떻게 제사 때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