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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Apr 15. 2023

선의가 악의가 될 때

사람 잡는다

옛날에, 갑자기 온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간신히 외딴 오두막을 구해 살게 된 선비부부에게 지인이 쌀을 가져다주었다. 그 지인은 자신도 형편이 어려워 겨우 쌀 한 되 밖에 못 구했으니, 우선  갑자기 모진 일을 겪으며 시름시름 앓는 선비와 미음이든 죽이든 끓여 먹고 기운을 차리라는 말을 선비의 부인에게 남기고 떠났다. 아랫사람들 부리며 살아 집안일에 일머리가 없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고았던 그 부인은 최대한 오래 먹어볼 요량으로 물을 많이 넣고 죽이라기에는 너무 묽고, 미음이라기에는 되게 쌀을 오래 끓였다. 그리고 밥 알갱이처럼 형체가 남은 것이 그래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여 밥알 건더기는 걸러 남편에게 주고 자신은 국물을 마셨다. 그리 먹으니 꽤 오래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남편은 전보다 더 말라 피죽도 못 먹은 얼굴이 되고 부인의 얼굴은 뽀얗게 피어났다고 한다. 그 선비의 부인은 자신이 그토록 정성껏 밥알을 걸러 주는데도 남편이 왜 그리 기운을 못 차리는지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어 심난해했다고 한다.

   죽이든 미음이든 물로 영양이 다 빠져 밥 알갱이는 그야말로 형체만 남은 영양가 없는 것이라면서 예전에 어머니가 내게 해주신 얘기이다. 어릴 적 내가 감주(식혜와 맛은 비슷하나 방식에 차이가 있다하나 그것까지는 모르고 어머니는 감주를 만들었다고 하셨다)를 마시며 쌀 건더기에 집착해서였는지, 진짜 영양가 있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괜히 나서지 말라는 얘기를 하시려 했던 건지 정황은 기억에 없고 비유만 내 기억에 남았다. 아마 어머니의 얘기 끝에 "남편이 밥알갱이를 더 좋아했을 수도 있지 않아요?"라는 본질을 벗어난 내 반문에 기가 차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으셨을 수도 있고...

 가난한 선비의 아내처럼  선의를 베풀었는데 그릇된 선의로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두 번 몰라서 그랬다고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반복되면 착함을 가장한 이기주의처럼 보인다. 더욱이 사람의 생명과 관계되면 선의의 설레발은 치명적이다.

 

  오늘 이른 아침 SNS에 메시지가 정신없이 뜨길래 뭐지 하고 봤는데 마음이 내내 착잡하다. 내용은 어린 암환자에게 누군가 골수를 기증해 주겠다고 했다가 기증예정자가 이식 직전에 못하겠다고 병원에서 사라졌단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골수 이식을 위해  평균이상 최대용량의 항암제를 투여 받았다는 것이다. 기존 암을 없애면서 새로운 골수가 들어와 작용이 잘되도록 하는 아이에게 치명적이지만 필수처치였다고 하는데 , 골수 기증예정자가 기증 의사를 직전에 철회하였으니 새로운 골수가 이식되지 못하고 평균이상의 항암제가 투여된 아이는 결국 며칠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아이의 엄마가 반 미치광이처럼 울부짖는데 차마 위로도 할 수 없다며 올라온 글이었다. 골수기증을 하겠다 하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아이가 얼마간은 더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부터 온갖 원망이 기증 철회자를 향했다. 어설픈 동정으로 시작했을지라도 분명 그는 선의를 가지고 있었을 텐데, 그 선의가 두려움에 무너지고 희망을 죽이고 아이를 죽였다.

 경험상 골수채취 과정보다 전후 의사들의 부작용가능성에 대한 설명과 부산한 의료진의 움직임과 긴장감이 두려움을 가중시키긴 한다. 막상 진행하면 '이렇게 간단했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래서 이해하려는 마음도  들지만, 기증철회자가 자신의 그 행동이 불러올 파장을 생각 못했다면, 혹시라도 '어차피 오늘내일하는 시한부인데 뭐 내가 기증 한다고 완치 확률도 낮고..... 나라도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면 더 욕을 하고 싶다. 암환자가 되면 더구나 항암치료를 받고도 전이가 됐다면 다만 며칠 아니 한 시간이라도 내게 남은 시간의 가치가 뼈저리게 느껴진다. 더구나 어린 환자였는데.... 어차피 모든 사람을 죽으니 그 며칠을 더 산다고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살아있는 당신은 내일 무슨 일어날지 아냐고 되묻고 싶다.

  괜히 울컥해 두서없이 적었지만 선의가 악의가 되어 타인에게 치명타를 입히지 않으려면 착함이라는 명패에 달린 의무와 책임감도 꼭 따져 보고, 모르면 다른이에게 물어라도 봐야한다.   

  글 제목에 배경사진은 지난주 활짝 폈던 벚꽃 잎이 땅에 떨어져 , 지는 꽃이 아쉬운 마음에 찍었는데, 오늘 아침 벚나무에  푸른 잎이 무성해진 것을 보았다.  꽃은 잠깐일 뿐이고 나무 본질은 잎을 내고 열매를 맺는 것이라 생각하니...... 선의라는 허울만 보고 혹여 본질은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싶어  글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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