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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쓰리 Jul 05. 2021

#3 알로하 하라주쿠

한 치 앞을 모르는 일러스트레이터 부부의 하루 <귀여워서 그래>



•두 번째 이야기 ‘여행을 같이 가볼까’와 이어집니다


#3 알로하 하라주쿠

- 하라주쿠 분실사건 上편


  난 부서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쓰는 편이다. 왜 그럴까 생각의 끝의 끝을 물고 가다 보면 어릴 때 살던 집이 나온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특히 혼자 공상하는 것을 좋아해서 내 주변의 물건들은 대부분 이름과 성격이 있었다. 물건들에 그렇게 정을 나눠주며 살다 보니 새 물건과 헌 물건이 되어버린 내 물건 친구에게 항상 생각이 많았다.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물건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새 것에 익숙해지는 기간이 너무 길고 겁이 난다. 그리고 난 오래된 인형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태어나버려서 반짝이는 핸드폰과 조용한 자동차는 전혀 매력이 없다. 내 책상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인 <전기 테이프로 간신히 이어놓은 작은 타블렛*>은 13년을 쓰고 있다.


*전기 테이프로 간신히 이어져있는 작은 타블렛 - 아빠가 사준 타블렛. 어디서 들으셨는지, 시각디자인과 학생이면 하나쯤 있어야 한다며 사주셨다. 처음에는 손바닥 하나만한 타블렛을 골랐다가 두 손바닥만한 것으로 결정했다. 선물을 받고 나서 '10년 써야지'라며 다짐했는데 13년을 쓰게 될 줄이야. 어쩌다 우리 사이가 10년이 넘게 되었을까. 이 타블렛으로 첫 과제, 첫 포트폴리오, 첫 외주도 무사히 마쳤다. 어제도 이 타블렛으로 작업을 했는데 그리는 데는 아무 불편함이 없었다. 편하고 고마워 정말.


타블렛과 단짝인 회색 노트북은 한 살 어린 12살이다. 처음에도 빠르진 않았는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느려지고 있다. 포토샵이라도 켤라치면 20분을 기다려야 해서 그 사이에 설거지도 하고 바닥에 뒹구는 머리카락을 테이프로 쩍쩍 바닥청소를 한다. 프로그램을 하나 더 켜야 한다면 분리수거를 하고 편의점을 한번 들리면 된다. 처음엔 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화가 났지만 이제는 화도 안 난다. 정말 느리지만 언젠가는 켜진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 손 위에 있는 이 핸드폰은 6년째 쓰고 있다. 이제는 사라졌다는 동그란 홈버튼은 1년 전에 고장 났다.



2016년 11월 26일 오후. 하라주쿠 CHICAGO


  하라주쿠에 오면 꼭 가는 구제 옷가게가 몇 곳이 있는데 그중에 시카고 CHICAGO를 가장 좋아한다. 대로변에 있어서 찾기도 쉽고 편한 옷들도 많이 갖다 놓아서 생각도 없이 들어갔다가 두 세벌씩 사오는 곳이다. 이번에는 신주쿠에서 하라주쿠로 가는 지하철 속에서 무엇을 살 지 정하고 왔다. 12월과 3월 사이에 지하철에서 입고 있으면 편안해 보이는 후드 티셔츠가 갖고 싶었다. 한 겨울의 이불처럼 나를 지켜주는 커다란 후드 티셔츠. 시카고 옆에 있는 편집샵에서 새 옷을 사도 괜찮았지만 엑스라지보다 큰 사이즈에 회색, 검은색이 아닌 귀여운 색을 찾고 싶었다. 내일 도쿄 디페에 매고 갈 햄버거 가방과 잘 어울리는 색으로.

내가 후드 티셔츠에게 바라는 것이 많았을까, 햄버거 가방 때문일까, 완벽한 후드 티셔츠가 없었다. 색깔이 맘에 들면 사이즈가 안 맞고 사이즈가 맘에 들면 인쇄되어 있는 문구가 맘에 안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시카고에서 완벽한 후드 티셔츠를 찾아 헤맸다. 밖은 예보대로 비가 오기 시작했는지 토독토독 물 튀기는 소리가 시작됐다. 사지 말까 그냥. 옷 사이로 빼꼼 바라보니 포롱이도 별 소득이 없어 보였다. 내일 도쿄 디페에서 난 햄버거가 될 수 없어. 이제는 나갈까 싶어 우산을 꺼내던 중에 귀여운 청바지를 하나 발견했다. 여러 청바지 색들 중에 가장 귀엽고 푸른색이었다. 약간 펑퍼짐한 종아리까지 완벽했다.

“포롱포롱, 잠깐만! 미안한데* 나 이거 한번 입어볼게!”

“언제 찾았대, 너무 귀엽네, 여기 있을 테니까 입어보고 와요”


*학창 시절, 정말 미안해서 습관이 된 말투인데 다들 착한 척한다고 싫어했다. 포롱은 미안할 줄 안다고 좋아한다.

입고 나니 보는 것보다 편했다. 걸을 때마다 종아리 쪽이 펄럭거려서 사람이 좀 여유로워 보이고 시간이 많아 보였다. 괜히 느릿느릿 걷게 되는 편한 바지였다. 저 멀리 원피스 지역을 헤매고 있는 포롱에게 평가를 받고 싶었다. 요즘 사람들처럼 거울 샷을 찍어볼까나. 핸드폰이 없어졌다.





아니 언제 없어진 거지? 서울에서도 안 잃어버려본 핸드폰을 정신없는 도쿄 하라주쿠 한복판에서 잃어버리게 되다니,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당구공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청바지는 귀여웠다. 청바지를 입은 채로 저 멀리 포롱에게 달려가 얘기했다.


“나 핸드폰 없어졌어! 미안해!!!”


포롱의 눈이 덜덜덜 떨렸다. 정말 미안했다. 밖에 내리는 비처럼 식은땀을 흘리는 나를 보며 포롱은 들고 있던 원피스를 옷걸이에 차분히 걸어놓았다. 내가 더 놀랄까 싶어서 일부러 차분하게 하는 것 같아서 너무 고마웠다. 차분한 미소와 덜덜 떠는 눈동자의 포롱이 내게 말했다.

“선배, 1. 일단 분실신고부터 하고 2. 한번 같이 찾아보고 3. 가게에도 전화번호를 남기고 가자.”

그래, 정신 차리자. 일단 가방 속에서 로밍센터에서 받았던 종이를 찾고 포롱이 폰으로 차분하게 분실 신고를 했다. 네, 네, 분실했어요. 하라주쿠요. 옷가게에서요.


차분한 포롱 빗자루와 미안한 토마쓰 쓰레받기가 되어서 시카고의 바닥을 쓸고 다녔지만 핸드폰을 찾을 수가 없었다. 탈의실, 옷걸이 위, 옷 사이를 모두 뒤져 보았지만 보이지가 않았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직원분들을 붙잡고 ‘스미마셍..로스트..마이 셀폰..브라운 베어 셀폰’이라고 말을 해봐도 죄송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폰아, 어디 간 거니.

다시 처음부터 찾아보려는 포롱에게 가서 말했다.

“포롱, 같이 찾아봐줘서 너무 고마워!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카운터에 너 전화번호 남겨도 돼?”

“응응, 근데 더 찾아봐도 괜찮은데”

“못 찾을 거 같아, 나 로즈골드 색으로 새로 살래.”

“로즈..골드?”

“그리고 나 이거 청바지 살래”

포롱의 눈이 덜덜덜덜 떨렸다. 나중에 포롱이 말로는 그때 내가 정말 이상해 보였단다. ‘얘 뭐지? 폰 잃어버린 가게에서 옷을 사간다고?’


<이 가게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친구 번호를 남긴다. 010-xxxx-xxxx. 찾으면 연락 주세요, 땡큐>


카운터에 영어로 적은 쪽지를 건네자 감사하게도 걱정 말라는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는지, 못 찾게 되더라도 문자로 연락을 꼭 해주겠다는 따뜻한 말도 해줘서 너무 감사했다. 따뜻한 시카고.. 땡큐. 카운터 위로 주섬주섬 청바지 하나를 내밀었다. 청바지를 본 카운터 직원의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얘 뭐지? 폰 잃어버린 가게에서 옷을 사간다고?’


시카고를 나오니 비가 내리는지 그치는지 애매하게 오고 있었다. 폰이 없어졌지만 청바지가 생긴 애매한 나 같은 비였다.

“선배~ 여기 역에도 얘기를 해두면 좋을 거 같은데.”

시카고로 올 때 지나왔던 ‘메이지진구마에’ 역이 보였다. 역 안으로 들어가니 우산을 든 사람, 우산이 없어서 젖은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다녔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유니폼을 입은 직원 분을 빠르게 발견하는 바람에 역 사무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투명 유리문을 똑똑 두드렸다. 머리가 다시 빙빙 돌고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근데 유리문 안쪽 직원 분의 표정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저분 괜찮으신 건가? 유리문을 얼굴만 지나다닐 정도로 살짝 열고는 엉성한 영어로 말했다.

“어..스미마셍. 로스트..마이 셀폰.. 브라운 베어..”

우산을 분명 쓰고 왔는데도 긴장 때문에 머리가 흠뻑 젖어갔다. 내 폰이 너무 보고 싶었다. 직원분도 비를 맞은 것처럼 식은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턱 끝으로 땀을 뚝뚝 흘리는 직원 분을 보니 어서 전화번호를 남기고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우당탕탕 건네준 종이에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고 무사히 긴장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분실물 - 갈색 곰돌이 핸드폰 / 이름 - 토마스 / 연락처 - 친구 번호 010-xxxx-xxxx / 해브어굿이브닝>


혼돈의 메이지진구마에 역을 나와 다시 하라주쿠 지상으로 올라왔다. 빗줄기는 아까보다 더 세졌고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정신없게 4시간을 보내고 나니 배가 너무 고파졌다. 포롱도 나 때문에 많이 배고파 보였다. 어서 맛있는 밥집을 찾아야혀- 비 오는 서울에서 폰을 잃어버렸다면 시끄러운 술집도 가고 노래방도 갔겠지만 오늘은 조용히 밥만 먹는 식당으로 가고 싶었다. 큰길을 벗어나 안 쪽 작은 길로 걸어 들어갔다. 얼마나 걸어 다녔을까, 머릿속이 온통 핸드폰이어서 메뉴들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날 툭툭 건드리더니 가리킨 곳은 파랗고 하얀빛으로 반짝이는 트리가 있는 가게였다. 생각해보니 곧 12월이었다.

“하와이 식당이네!”

“응! 웃기지 않아? 도쿄에서 하와이”

평소 먹지도 않던 팬케이크가 갑자기 너무 먹고 싶어 졌다. 약간의 웨이팅 후에 들어간 식당은 적당히 따뜻하고 시끄러웠고 우리 자리 테이블이 넓어서 기분이 좋았다. 탑처럼 크림이 올라가 있는 팬케이크와 기름진 갈릭쉬림프, 통통한 무스비 그리고 하와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 맥주까지 함께하니 걱정 가득했던 마음이 다 씻겨 내려갔다. 알로하를 연신 외치며 팬케이크를 자르는 포롱도 너무 고마웠다.


“포롱, 난 핸드폰 잃어버리면 세상이 망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안 망했네~ 다행이야.”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해외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내가 상상한 끔찍한 사건 5위 안에 드는 큰 일이었다. 그런 큰 일을 별 일이 아니게 만들어 준 건 포롱 덕분이었다. 혼자 왔다면 내일 열릴 도쿄 디페도 가지 않았겠지, 아마 핸드폰을 찾아 울면서 하라주쿠 길바닥을 쓸고 다녔을 것이다. 무스비까지 다 먹었을 땐 핸드폰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팬케이크에 마법이 깃든 것이던지 아님 포롱이가 마법사이던지 둘 중 하나였다.

그날 포롱과 난 하와이 음식점을 나와 영어도 쓰여있지 않은 오래된 꼬치집에서 새벽까지 떠들었다. 메뉴는 느낌 가는 대로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주문을 했다. 아는 맛이 나오기도 했고 웃기고 당황스런 맛이 나오기도 했다. 당황스러운 꼬치는 키득키득 웃으며 씹어 넘겼다. 이번 도쿄 여행 전의 나였다면 필기체로 써진 일본어 메뉴판을 보자마자 겁을 먹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낯설고 불편한 걱정을 안주삼아 떠들 수 있게 되었다.


epilogue


다음 날, 도쿄 디페에 가선 꿈에 그리던 일본 작가님의 인형 하나와 키링 하나, 가방 하나를 무사히 구매했다. 넓은 행사장을 각자 구경하기 위해 500엔짜리 장난감 시계를 손목에 차고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오후 2시가 되면 1층 중앙에서 만나 3층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낮 1시가 조금 안되었을 때, 2층에서 날 찾고 있는 포롱을 만났다. 시카고였다. 오늘 오픈 청소 중에 브라운 베어 핸드폰을 발견했고 매장 닫는 시간 전까지 오라는 메시지였다. 글 끝에 남긴 ‘Congraturation’까지 완벽했다. 지금 하라주쿠로 가봐도 좋다는 포롱에게 아니라고, 다섯 시에 가자고 했다. 포롱과 한바탕 축하의 춤을 추고 3층으로 올라가 트럭에서 산 카레를 먹었다. 카레의 힘으로 다섯 시까지 3000개 부스를 모두 본 후, 마음 편히 하라주쿠 시카고로 향했다. 메이지진구마에 역을 나오자 어제처럼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시카고에 도착해 카운터로 가자 어제 청바지를 계산해준 직원 분이 계셨다. 어제 산 청바지를 입은 날 보더니 누군지 기억났다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100% 충전까지 되어 있는 내 폰이었다. 감사한 마음은 돈으로 표현하라는 만국공통법칙을 따라 긴팔 티셔츠와 셔츠를 하나씩 구매하고 나왔다. 티셔츠는 문구가 맘에 안 들었지만 포롱이 찾아준 커다란 자수 패치 2개로 글씨를 가리니 어느 티셔츠보다 맘에 들게 되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두 달 뒤, 우린 사귀게 되었고 아직도 가끔 그때 도쿄 여행을 얘기한다. 힘든 일, 기쁜 일, 웃긴 일을 다 겪고 나니 같이 살고 싶어 졌다고.


**그때 잃어버렸던 핸드폰은 그 이후로 별 일없이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주위에 후면 렌즈 1개에 홈버튼 있는 폰은 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부끄럽고 불편했던 적은 없다. 우리 둘 또한 이 핸드폰처럼 큰 일도 별 일없이 지나치며 오래 함께했으면 좋겠다.

알로하~하라주쿠. 힘내라며 포롱이가 몰래 계산을 했다. 깜찍이.
열대지방 꽃으로 장식한 트리가 너무 귀여웠다.크리스마스에 더운 나라에 가게 된다면 해봐야지
문제의 청바지. 그리고 500엔짜리 시계를 보는 핸드폰 없는 토마쓰
원하는 인형을 얻었고 다음 도쿄 디페에도 같이 갔다


토마쓰리의 그림

전포롱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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