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living things are beautiful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사람들은 아마도 엄마 아빠 언니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님 등이었을 것이다. 모두 다른 생김새와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학교에 가서는 동갑내기의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유학을 갔을 때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 살 어린 동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한 반에 학생들이 30명이라고 할 때 어림잡아 390명의 동급생과 같은 교실에서 생활했고,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더욱 다양한 만남들이 있었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 예를 들면 브런치 스토리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나 핀터레스트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서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나는 22년 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요즘 사회의 문제점이 획일화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모두 같은 길을 바라보고, 같은 생각을 하고,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는다. 세상을 더욱 일반화시키는 이 말이 나는 굉장히 편협적이라고 생각한다.
새 학기에 교실에 들어갈 때 모두 낯설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한 명 한 명 이야기해 보면 모두 다르다. 저마다의 생각이 있고 취향도 있다. 일란성쌍둥이인 친구들 조차 말이다. 처음에는 구분할 수 없었던 쌍둥이가 학기가 끝날 때에는 전혀 다르게 생긴 것처럼 보인다. 성격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얼굴에 난 점 위치도 다르고, 하다못해 지퍼 채우는 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조차 다르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 나는 이 매력들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한 사람의 성격과 취향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도,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게 되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서로를 가장 사랑하고 가깝다고 여기는 부부조차 끊임없이 배우자에 대해 공부하고 맞춰간다고 한다. 사람들 모두 우주가 있다고 한다. 우주를 알아가는 건 멋진 일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아름답다.
겉보기에는 움직이지 않지만 다양한 생존 전략을 펼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명체인 식물에 숭고함을 느껴 식물학을 전공하고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다양한 식물들이 어떻게 이렇게 설계되었을까 라는 놀라움을 느낀다. 식물병원미생물학이라는 전공에서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에 대해 공부한다. 대부분 맨 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작아, 배양 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야만 하는 생명체들이다. 이 생명체들의 생존 메커니즘을 공부하며 미물들도 살겠다고 독창적인 전략을 펼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바이러스는 스스로 영양 성분을 만들어낼 수도 없어 기주생물에 들어가 기주세포의 효소를 사용해 단백질을 합성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저렇게 작디작은 바이러스조차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바닷물 1ml당 10^8 개의 바이러스가 있다고 한다.
내가 왜 사는지 인식하지 않다가 왜 살아가는 거지라는 의문이 이따금씩 든다. 삶을 회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고, 그냥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게 신기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나타나야지라고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살기 위해 어떠한 생리적 작용들을 인식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세포분열시기부터 따지자면 약 8000일, 192,000시간, 11,520,000분, 691,200,000초 동안 살고 있다.
아직 생물학 초짜이지만 생물학을 공부하며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살아있는 것 자체로 이미 살아가는 의미를 다 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해되지 않는 생리적 작용들 모두 결과적으로는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영양소가 결핍되자 선택적으로 오래된 잎을 고사시켜 떨어트리는 식물도, 감염된 식물의 줄기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세균도, 50년 동안 감염시킬 기주를 모색하며 마른 잎에서 버티는 바이러스마저 모두 생존을 위해 그랬던 것이다. 결국 자연적으로 발생한 생명체들은 스스로 느끼지 못하더라도 모두 원자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살아가기 위해 산다. 살아가기 위해 산다는 말은 참 멋진 말이다. 나라는 사람을 꾸며줄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산다는 말. 살아가기 위해 사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자아실현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하고자 하는 행위와 해야만 하는 행위들 모두 살아가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산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사는 것이 얼마나 좋으면 자연적으로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도록 설계되었을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최선의 일이라고 설계된 생명체는 없다. 그래서 스스로 죽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무의식에 각인된 생존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산다는 건 아름답지만 벅찬 일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은 쉽게 얻어지지 않나 보다. 나는 어르신들이 어린아이들을 보고 예쁘다고 하시는데 오랜 세월을 살아낸 어르신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어쨌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아름답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세균도, 곰팡이도, 바이러스마저도.
살아간다는 건 멋진 일이다. 사는 것보다 아름다운 일들이 있을까.
하느님은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천국에 간다고 하셨고 부처님은 윤회사상을 말씀하셨다. 나는 종교 신자는 아니어서 특정한 종교의 말씀이 내 가치관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수세기동안 내려져온 말씀들을 공부하는 것은 좋아한다. 지구에서의 나의 생존이 끝난 후 나는 어떻게 될까 궁금하긴 하다. 내 몸의 대부분이 탄소, 수소, 산소, 그리고 다양한 미량원소들로 구성되어 있을 텐데 언젠간 모두 분해될 것이다. 분해되어서 흙이 될 수도 있고, 흙이 된다면 식물의 뿌리를 통해 들어가 나무가 될 수도 있고, 그러면 책상이 될 수도 있고, 만약 내가 과일이 된다면 누가 먹을 수도 있고, 몸속에서 영양분으로 저장되었다가 세포가 될 수도 있고, 공기 중으로 배출될 수도 있고 어쩌면 대기를 오염시키는 매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농법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대학생이지만 어쩌면 나의 일부가 온실 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가 될 수도 있다.
돌고 돈다. 돌고 돌아서 재밌다. 수많은 원자로, 아미노산 알갱이로, 단백질과 탄소 구조로, 조직과 기관으로 구성된 우리는 하나의 우주다. 광활한 우주 안에 매우 작은 지구에 살아가는 생명체들 각각이 특별한 우주이다. 그리고 각각의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세포는 파면 팔수록 그 구조와 메커니즘이 다양하기에 또 다른 우주이다. 우주 속에 우주가 있고 또 다른 우주가 있다. 과학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재밌다. 생물학으로 전공을 잘 선택한 것 같기도 하다. 어김없이 찾아온 시험기간에 공부를 멈추고 이런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생물학은 재밌다. 멋진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